봄이 오면 하굣길 학생들의 코끝을 잡아끄는 향기가 있다. 노란 프리지어다. 봄날의 프리지어는 늘 그렇게 여학교 정문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화사하게 빛나는 프리지어 앞에 선 여학생들은 이유 없이 화기애애했다. 프리지어가 실어 나른 무해한 웃음이 교문 앞에 한창 넘실거린 후, 프리지어는 각자의 손에 들려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러면 은은하고도 기분 좋은 향이 꽤 오랫동안 집 안 가득 번졌다.
어쩌면 그 시절 매년 봄, 여학교 앞에서 치러지던 관례 같은 풍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학교 앞 풍경도 바뀌었겠지만, 여전히 봄바람이 일면 ‘빛나는 프리지어의 계절이 왔구나’ 생각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에 ‘후리지아’라고 불렀던 이 꽃을, 자꾸만 그때의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진다. 그래서 ‘프리지어’보단 ‘후리지아’라는 이름에 마음이 먼저 간다."
후리지아가 남긴 노란색의 인상은 노란 병아리와 유치원복, 해바라기, 우산, 그리고 바나나 같은 여러 기억을 소환한다. 노랑은 항상 온몸에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는 듯한 온기를 전해왔는데, 이토록 포근하고 다정한 노란색이 정작 서양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했던 적이 있다.
본래 노랑은 태양처럼 성스러운 색이었다. 하지만 금욕을 중시하던 중세 유럽에서 노랑은 점차 타락의 상징으로 변질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성경 속 배신의 순간이다.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넘긴 제자 유다가 받은 부정한 돈의 빛깔이 곧 그의 상징색이 된 것이다. 이후 14세기 초, 중세 거장 조토(Giotto)의 프레스코화 '유다의 입맞춤'에서 유다가 걸친 노란색 로브는 대중의 머릿속에 배제와 낙인, 그리고 소외의 색으로 노랑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결국 중세 이후 노랑은 기만, 시기, 위선, 질투, 배반 등의 색으로 인식되며 '배신과 탐욕'의 상징이 되었다.
가장 성스러운 존재를 나타내는 신성한 빛이, 순식간에 가장 추악한 배신자의 낙인으로 뒤바뀐 순간이다.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미지 속에서 부정적인 의미가 짙게 내려앉게 된 노랑은 프랑스에서는 연인, 남편과 아내 관계에서는 '질투', 혹은 '이별의 요구'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 때문에 노란 꽃은 선물용으로 금기시하는 암묵적인 룰까지 생겨났다. 그래서 어머니날 Fête des Mères이나 발렌타인 데이에는 노란 장미 선물을 선호하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가 남긴 얼룩이 어떠하든, 미모사, 수선화, 유채꽃, 배추꽃 그리고 노란 꽃이 비처럼 쏟아지는 골든 샤워 트리를 생각하면 노랑에서는 어떤 오염된 이미지도 떠올릴 수 없다. 내게 노랑은 무해한 다정함만 깃든 색이다.
나에게는 독이 있어요!
아직 언 땅이 풀리지 않은 시린 들판, 차가운 바람 속에서 독말풀 열매를 만난다. 겨울인데도 “난 전혀 춥지 않아”라고 웅변하듯 특유의 뾰족한 가시를 바짝 세우고 있다. 꼭 철갑을 두른 장군 같다. 독말풀은 개항 이후 약용으로 재배되다가 야생으로 퍼져 나간 귀화식물이다. 열매는 익으면서 껍질이 말라 쪼개지는 ‘삭과’로, 딱 손에 쥘 만한 크기의 달걀 모양이다. 벌어진 틈 사이로 거뭇한 씨앗들이 보여서 열매를 잡고 흔드니, 어릴 적 운동회 때 던지던 오재미를 흔드는 기분이다.
보드라운 감촉, 램스이어
런던 오발 역 인근의 주택가에서 단단히 뿌리내린 램스이어와 만났다. 다섯 살 아이의 손을 잡고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크리켓 경기가 한창인 때였다. 꽃 학교에서 실습 때 나눠주었던 램스이어의 감촉에 반해 땅 위에서 자라는 램스이어를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길가에서 조우하게 될 줄이야…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같이 쪼그려 앉아 램스이어를 만졌다. 세상에서 가장 보드라운 잎. 반색하여 만지는 엄마의 모습에 아이도 덩달아 꽃잎을 만졌다. 보드라웠는지 아이도 빙그레 웃는다.
‘램스이어(Lamb's-ears)’는 이름 그대로 양의 귀를 만지는 듯한 보드라운 감촉에서 온 이름이다. 학명Stachys byzantina에서 출생지를 더듬어 올라가면 과거 동로마 제국의 수도 비잔티움, 즉 지금의 튀르키예 이스탄불 주변이 이 식물의 고향이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여정을 거치면서도 램스이어가 지지 않고 살아남은 비결은 솜털, ‘모용’에 있다. 잎과 줄기를 빽빽하게 뒤덮은 은백색의 잔털들이 매서운 서리와 더위를 이겨내고 볕을 차단해 주는 방패가 되어 주었다. 모용은 초식 동물의 입을 피하게 해주는 다부진 방어막이기도 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의 흔적이 이토록 포근할 수 있을까. 모진 계절을 견디려 두른 은백색 방패가, 어떤 이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촉감을 건넨다. 램스이어 잎을 보고 있으면, 문득 넓게 펼쳐 이불처럼 덮고 잠들고 싶다는 엉뚱한 마음마저 일었다. 눈썰미 좋은 벌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는지 이 부드러운 솜털을 모아 벌집의 안감으로 삼았다. 자연과 인간을 모두 매료시키는 특유의 뭉클한 온기. 겨울이 저물어 갈 때면 어김없이 손끝이 램스이어를 향하는 이유다.
후리지아의 단단한 초록 줄기와 노란 빛깔이 품은 생명력, 그리고 곧 '툭' 하고 터질 듯 탐스럽고 통통한 봉오리는 웃음 많던 여학생들을 닮아 있다. 세상이라는 무대에 첫 꽃망울을 터뜨릴 아이들에게, 후리지아는 새 학기에 건네는 희망이었다. 독말풀의 계절이 지나가고 완고한 석고 같던 대지 위로 뱀밥이 돋아나는 봄. 대지의 깊은 어둠을 뚫고 찾아오는 이 봄의 기척을, 후리지아의 다정한 향기와 램스이어의 포근한 부드러움으로 마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