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진실은 왜 가장 늦게 들리는가

by운조


세상에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 더 외로운 사람이 있다.

진실을 말하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사람이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카산드라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공주였다.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딸이자 헥토르와 파리스의 누이였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누구보다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언의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그 능력은 축복이 아니라 비극의 시작이었다.

아폴론은 그녀를 사랑했다.

사랑을 받아들이면 예언의 능력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카산드라는 그 선물을 받았지만 끝내 그의 사랑을 거절했다.

분노한 아폴론은 예언의 능력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더 잔인한 저주를 내렸다.

"너의 예언은 모두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너를 믿지 않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저주다.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끝내 외면당하는 운명.

그보다 더 깊은 외로움이 있을까.

『일리아스』에서 카산드라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품의 마지막, 가장 슬픈 장면에서 그녀는 우리 앞에 선다.

프리아모스 왕이 아킬레우스에게서 헥토르의 시신을 되찾아 돌아오는 새벽.

성벽 위에 서 있던 카산드라는 가장 먼저 그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트로이 사람들에게 외친다.

왕이 돌아왔다고.

헥토르가 돌아왔다고.

그러나 살아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고.

그녀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성문으로 달려간다.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붙들고 울고,

어머니는 하늘을 향해 통곡하고,

아내 안드로마케는 쓰러진다.

그 한 장면 속에는 트로이의 마지막 희망이 무너지는 소리가 담겨 있다.

카산드라는 누구보다 먼저 그 끝을 보았던 사람이었다.

『일리아스』 밖의 이야기에서도 그녀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는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왔을 때도,

트로이를 멸망시킬 거대한 목마가 성문 앞에 놓였을 때도,

그녀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렸다.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예언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틀린 것은 예언이 아니라,

진실을 외면한 사람들이었다.

그 대목을 읽으며 문득 우리 시대가 떠올랐다.

세상에는 아직도 카산드라가 있다.

위험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

모두가 기뻐할 때 홀로 "잠깐만"이라고 말하는 사람.

사람들은 그런 목소리를 쉽게 불안하다고 말하고,

비관적이라고 말하며,

괜한 걱정을 한다고 웃어넘긴다.

그러나 진실은 늘 듣기 좋은 얼굴로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불편한 목소리로 우리 앞에 서는 경우가 더 많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카산드라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위험을 정확히 예측했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상황.

생각해 보면 카산드라는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온라인카지노를 쓰는 사람도,

기자도,

과학자도,

내 가족을 걱정하며 조용히 경고하는 사람도,

때로는 모두 카산드라가 된다.

카산드라를 읽으며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만큼이나,

그 진실에 귀 기울이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듣고 싶은 말만 믿으며 살아가는가.

얼마나 자주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가.

『일리아스』는 영웅들의 용맹을 노래한 서사시이지만,

내게 카산드라는 가장 용감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등을 돌려도,

아무도 믿지 않아도,

끝내 진실을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리아스』를 덮은 뒤에도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그녀의 예언이 아니었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세상에서도 끝까지 진실을 말했던 한 여인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