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여신도 아들을 살릴 수 없었다

사랑은 운명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by운조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같은 소원을 품고 산다.

내 아이보다 내가 먼저 떠나는 것.

『일리아스』를 읽으며 테티스를 만났을 때,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그녀가 ‘여신’이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여신조차 아들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는 무력함이었다.

테티스는 바다의 여신이었다. 인간보다 강한 존재였고, 신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권능을 가졌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은 죽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인간이었다.

"아킬레우스"

그리스 최고의 영웅.

태어날 때부터 그에겐 두 개의 갈림길이 놓여 있었다.

평범하지만 오래 살 것인가, 아니면 짧은 생을 살더라도 영원한 명예를 얻을 것인가.

아킬레우스는 영원한 명예를 선택했다.

영웅은 이름을 남겼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다.

테티스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들이 다시 전쟁터로 발을 들이는 순간, 두 번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말렸다.

울고, 기도하고, 제우스와 다른 신들을 찾아가 간청했다.

그러나 운명은 그 어떤 여신의 눈물도 들어주지 않았다.

테티스는 아들을 위해 헤파이스토스를 찾아가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새로운 갑옷을 만들어다 주었다.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끝내 해 줄 수 없는 일이 딱 하나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대신 살아 주는 일.

그것만큼은 그 어떤 신도, 어머니도 대신할 수 없었다.

그 장면을 읽으며 문득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넘어질까 손을 잡아 주고,

아프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앓아 주고 싶고,

힘든 일이 생기면 전부 대신 견뎌 주고 싶어진다.

그러나 아이가 자랄수록 부모는 잔인한 진실을 알게 된다.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이 있고,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상처가 있다는 것을.


사랑은 모든 불행을 막아주지 못한다.

하지만 사랑은, 그 비극의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곁을 떠나지 않는다.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대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의 곁을 지켰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독한 운명이 찾아와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일.


트로이의 왕비 헤카베를 읽으며 적국의 어머니를 만났고,

테티스를 읽으며 그리스의 어머니를 만났다.

한 사람은 헥토르를 잃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킬레우스를 잃었다.

적과 아군의 편은 갈렸지만, 두 어머니가 흘린 눈물의 무게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사람을 편으로 가른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편을 가르지 않는다.

아들을 먼저 보내는 절망적인 슬픔 앞에는 국경도, 언어도, 승리의 환호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리아스』는 칼과 창이 부딪히는 영웅들의 전쟁을 노래한 서사시다.

그러나 내가 읽어낸 『일리아스』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영웅의 위대한 이름을 기억하겠지만,

나는 그 영웅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어머니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내 마음에 오래도록 울려 퍼진 것은 승리의 함성이 아니었다.아들의 뒷모습을 끝내 놓지 못했던, 두 어머니의 조용한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