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녀를 물건이라 불렀다

전리품에도 이름은 있었다

by운조


사람의 이름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은 물건이 된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인물은 브리세이스였다.


사람들은 그녀를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전쟁이 그녀에게서 빼앗은 것은 자유만이 아니었다.


이름이었다.


삶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으로 살아갈 권리였다.


브리세이스는 원래 리르네소스의 왕비였다.


하지만 전쟁은 그녀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남편과 세 형제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었고, 그녀는 승자의 전리품이 되었다.


왕비는 포로가 되었고, 한 사람의 삶은 영웅의 명예를 증명하는 물건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녀를 전쟁의 희생자가 아니라 전리품으로 기억한다.


『일리아스』의 거대한 갈등도 그녀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아킬레우스에게서 빼앗고, 두 영웅은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맞선다.


그러나 그 싸움의 한가운데 있는 브리세이스의 뜻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두려운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녀는 한 사람이 아니라 소유물이었다.


그 대목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세상은 얼마나 자주 사람보다 지위를 먼저 바라보는가.


직함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국적으로 사람을 계산하며,


숫자로 사람을 증명한다.


이름은 사라지고 역할만 남는다.


브리세이스 역시 그렇게 존재를 빼앗겼다.


그러나 『일리아스』 제19권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신 앞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던 그녀는 뜻밖의 고백을 한다.


파트로클로스는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 준 사람이었고, 언젠가는 아킬레우스와 정식으로 혼인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사람이었다고.


그 짧은 고백 속에서 나는 브리세이스의 깊은 외로움을 보았다.


남편을 잃고,


가족을 잃고,


고향을 잃고,


원수의 진영에서 살아야 했던 시간.


그녀는 누군가의 전리품으로 불리면서도 끝내 사람답게 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은 그녀의 자유를 빼앗았지만, 인간다운 삶을 향한 희망만은 끝내 빼앗지 못했다.


3화에서 나는 헬레네를 통해 한 사람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는 세상을 보았다.


이번에는 브리세이스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을 물건처럼 대하는 세상은 과연 전쟁터에만 존재하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름이 아닌 직함으로, 국적으로, 직업으로 기억하며 살아가는가.


브리세이스를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사람의 존엄은 높은 자리에 있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을 끝까지 불러 주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어쩌면 『일리아스』는 영웅들의 이름을 기록한 서사시가 아니라, 잊혀진 이름들을 다시 불러 주는 바카라인지도 모른다.


브리세이스는 전리품이 아니었다.


그녀는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아내였으며,


끝까지 자신의 삶을 잃지 않으려 했던 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일리아스』를 덮은 뒤에도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끝내 잃지 않으려 했던 브리세이스의 침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