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인생을 구경하다 들킨 내모습

by강아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줄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매일 만나야 했는데, 이제는 만나고 싶은 사람조차 별로 없었다. 인간관계가 줄어든 것을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쾌적했다.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거나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 반응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에 대한 관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에 가면 바카라을 빌려왔고, 집에서는 영화를 보았다. 최근에는 활자가 잘 읽히지 않아 영화를 더 자주 보게 되었다. 영화 속 인물들은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흥미로웠다. 그들은 사랑하고, 배신하고, 거짓말을 하고, 자기모순에 빠졌다. 무엇보다 그들의 행동을 끝까지 지켜본다고 해서 내가 그 관계에 바카라임을 질 필요는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사람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조금 우스웠다.

최근에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여러 편 보았다. 그의 영화에서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만나고, 산바카라하고, 대화하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다가 마음을 바꾼다. 그런데 그 평범한 대화 속에서 인물들이 얼마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수집가」를 보면서는 여자를 둘러싼 남자들의 태도가 흥미로웠다. 여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뿐인데, 남자들은 그녀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한다. 그녀가 누구와 자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분석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는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여자를 평가하는 동안 오히려 그들의 욕망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자기 행동에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고, 상대방을 위해서 그랬고,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전혀 다른 이유가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런 순간이 재미있다.

「비행사의 아내」에서도 그랬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질문하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한다. 관계를 이해하려고 할수록 오해가 쌓이고, 오해를 풀려고 할수록 새로운 오해가 생긴다.

영화를 보면서 과거의 연애를 떠올렸다.

그때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다. 어제는 좋다고 했던 사람이 오늘은 거리를 두고, 분명히 관심이 있어 보였던 사람이 갑자기 무관심해졌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했다. 상대방의 말투와 표정을 분석하고, 이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마치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나 역시 일관된 사람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혼자 있고 싶었고, 관계가 안정되기를 바라면서도 그 안정이 나를 구속할까 봐 두려워했다. 상대방에게는 명확한 태도를 요구하면서 정작 내 마음은 수시로 바뀌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우스워 보였던 이유는 그들이 나와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권위를 앞세워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특히 윗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 아랫사람에게는 무례한 사람을 보면 참기 어려웠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행동을 조직을 위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후배를 가르치기 위해서,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 가까웠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했다. 누가 누구에게 아부하는지, 누가 바카라임을 회피하는지, 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지 살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을 분석하는 일이 나를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사람들의 행동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별것 아닌 말에서도 의도를 찾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상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결국 그 사람을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조금 허탈했다.

나는 그들을 싫어하면서도 그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내 시간을 쓰고 있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성실할 필요가 있었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온라인 게임 동료의 표정을 읽지 않아도 되고, 상사의 말에 숨은 뜻을 찾지 않아도 된다. 대신 영화 속 인물들을 관찰한다. 그들의 행동을 해석하고, 어떤 선택을 할지 예상하고, 예상이 빗나가면 다시 생각한다.

달라진 것은 관찰의 대상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생기는 피로를 싫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멀리서 보는 사람들은 흥미롭다. 그들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듣고 싶다. 하지만 그들이 내 삶에 들어와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화 속 인물은 아무리 이상한 행동을 해도 내가 감당할 일이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영화를 끄면 된다. 바카라 속의 인물도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 바카라을 덮으면 그만이다.

현실의 인간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상대방이 나를 오해하면 해명해야 하고, 내가 상대방을 오해하면 사과해야 한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부탁을 거절해야 하고, 누군가의 실망을 감당해야 한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노동이 필요하다.

나는 그 노동이 귀찮아진 사람이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느 날에는 인터넷 방송을 보다가 스트리머가 먹는 음식을 따라 만들어 먹었다. 그 사람이 족발과 부추무침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장을 보러 가서 부추를 샀다. 직접 무쳐 먹으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먹으면서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혼자 밥을 먹고 있었지만, 어쩌면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 음식을 만든 것인지도 몰랐다.

인터넷 방송을 보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보내고, 매일 같은 시간에 방송을 찾아가고, 방송이 끝나면 아쉬워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스트리머가 어떤 존재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일상을 구경하면서 내 일상에 없는 무언가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그들이 겪는 일을 구경했다. 직접 관계를 맺는 것은 부담스러웠지만 관계가 만들어내는 온기는 조금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피아노 방송을 한다.

얼굴도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도 내지 않는다. 시청자와 대화를 나누는 일도 거의 없다. 그저 피아노를 친다. 누군가 들어와서 듣다가 나가고,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가끔 후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면서도 누군가 내 연주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 모순을 생각하면 조금 웃음이 난다.

다른 사람의 방송을 볼 때는 그들의 일상이 궁금하지만, 내 방송에서는 나 자신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관찰자가 되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관찰 대상이 되고 싶어 한다. 다만 그 거리는 내가 정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지만 완전히 잊히고 싶지도 않은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뿐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독신으로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도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인간관계가 피곤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은 원래 조금씩 모순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의 모순에는 엄격하면서 자신의 모순에는 관대하다. 상대방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을 때는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나 역시 그랬다.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자기기만을 비웃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비슷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는 왜 혼자 있고 싶어 하면서 외로워하는가. 왜 평가받는 것을 싫어하면서 방송의 시청자 수를 확인하는가. 왜 타인의 시선을 경멸하면서도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는가.

생각해 보면 나도 그다지 일관된 인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일관되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어제의 결심이 오늘의 감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어떤 날에는 혼자 있는 것이 좋고, 어떤 날에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 그 둘이 반드시 모순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요즘은 영화를 보다가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면 조금 더 오래 생각한다.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스스로에게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그러다가 가끔은 영화를 멈춘다.

화면 속 인물이 너무 낯익기 때문이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하는 짓이 나와 비슷하다.

남의 인생을 구경하러 왔다가 자꾸만 나를 발견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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