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라는 사치
주중엔 8시에도 겨우 깨면서 오늘은 다섯시반에 눈을 떴다. 어젠 입사동기인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이번주는 토 아침?”
회사에서 만난 사이지만 업무로는 얽힐일 없는 직무간 거리를 가진 사이라 이해관계가 없어서 편한 사람이었다. 물리적 거리 가까운 이웃주민이고 이제 주변에서 보기 힘들어져버린 운동을 좋아하는 아저씨였다. 몇 년째 주말 새벽이면 같이 달리는 사이, 나포함 두 명뿐인 느슨한 비정기적 조깅모임 멤버인 그는 세 살 아들의 수면패턴에 따라 이른 새벽과 늦은 밤으로 극단적이고 가변적인 조깅을 제안했다. 보통은 이양반이 토요일 새벽으로 초안을 올렸다가 늦잠이나 아이의 조기기상 이슈가 터지면 일요일 아침으로 미루고, 그마저도 실패하면 그 주는 스킵하는 그런 부담 없는 러닝크루였다. 그는 이번주에도 일단은 토요일 새벽을 노렸다.
사실 너무 일어나기 싫었다. 주 5일 점심시간만 일하는 것 치고는 몸이 고됐다. 주간 주행거리는 120~150km 사이, 자전거 동호인들은 연간 1만km 정도를 열심히 타는 기준점으로 삼으니 많이 타는 편은 아니었다. 활동 심박수가 낮아서 그런가, 기록용 러닝워치에는 늘 운동부하가 ‘낮음’으로 떠있었다. 하지만 노동과 운동의 움직임 패턴 차이 때문인지 적응의 문제인지 다리는 항상 무거웠다. 밤마다 아내의 숨소리가 고요하고 일정해지면 액체 파스를 꺼내 발목이며 무릎에 문질러댔다.
거의 유일한 슬롯생활을 놓치기 아쉬워서인지, 혼자 정의내린 중산층 감성의 끝자락을 잡고 싶어서였는지 그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저번주에 가려다 못간 남산 북측순환로를 달리기로 약속을 잡고 6시에 만나기로 했다. 5시반 알람 진동을 얼른 끄고 무거운 몸을 끌어올려 카톡을 보냈다. 1이 사라지지 않기를 내심 기대했다. 실망스럽게도 곧 답장이 왔다. 미리 꺼내둔 옷을 어둠 속에서 소리죽여 입었다. 3월이라 아직 깜깜하다. 그리고 너무 춥다. 반바지 입은 걸 후회하며 바람막이 후드를 뒤집어썼다. 아파트 앞으론 지중화되지 않는 전선사이로 누런 가로등빛이 게을렀다. 편의점 불빛 건너편 돌아가는 빨강파랑 이발소간판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저놈의 안마는 장사가 되긴 하냐, 저거 언제 없어지냐.’
20년 전에 멈춘 풍경 속에서 개발의 청사진이라곤 한구석도 없는 주거지 사이로 새하얀 광선이 비쳤다.
그의 차를 탈 때마다 나는 요란스럽게 너스레를 떨곤 했다. 파란 조명이 은은하게 둘러진 버튼을 눌러댔다.
“이것 봐 이거 벨트 자동으로 딱 조이는 거 봐, 크 엉따 엉차도 여깄네.”
“에이 이거 15만이나 된 차야.”
지겨울만도 한데 화도 내지 않고 언제나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의 까만 제네시스는 어둠 속에선 오래된 연식보다는 거대한 풍채만 돋보였다. 차에 별로 관심이 없는 그는 처가에서 물려받은 차에 별다른 메인터넌스는 안했지만, 깔끔한 성격 탓에 기본 7만원하는 디테일링샵에 주기적으로 세차를 맡겼다. 만날 때마다 번쩍거리는 검은 세단으로 상징되는 그의 무심함이 가장 부러웠다.
올림픽대로에 들어서니 한강변은 스카이라인이 어느새 또 쫙 서있었다. 달리면서 나는 주절주절 떠들었다.
“형 저게 내가 저번에 말한 청담르엘이야, 옆에 작은건 아크로. 와 저기 구반포 벌써 저리 올라갔네? 진짜 크다. 형 내가 저기 신혼 전세 살뻔했잖아. 방에 라지에타가 있더라니까”
“어어, 여기서 고가 올려? 오랜만에 이시간에 뛰러 가는 거 같네.”
새벽에 만나서 한 시간가량 달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씩 먹고 귀가하면 보통 8시 남짓이라 우리는 묘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건강한 청년(혹은 중년)이자 가족이 잠든 사이에 운동하는 괜찮은 아빠가 된 것 같은 성취감에 고양되곤 했다. 그는 몰라도 내겐 다른 비교대상이 있었다. 나는 새벽부터 상사 집에들러 픽업 후 아침부터 티오프하고 오후엔 낮술로 떡이 돼서 귀가하는 K-온라인 게임인 골퍼들에 대한 거부감과 우월감에 사로잡힌 채, 대리 때부터 지겹게 들었던 골프 배워두란 선배들의 오지랖엔 귀를 닫고 지냈다. 달리기는 힙하기 전부터 했다는 부심도 있었다. 러닝붐 사이에서도 빡센 기록훈련이나 대규모 러닝크루 모임이 아닌 새벽조깅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존재감이랄까, 사실은 오래전부터 내 인식틀 바닥에 남아있는 홍대병이었다.
국립극장에 주차하고 나니 숲속으로 붉은 아침해가 스며들고 있었다. 웜업없이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요즘 회사 분위기는 어떤지, 희망퇴직은 얼마나 받고 있는지, 대기발령 TF가 생긴 게 맞는지 등등을 얼마간 묻다가 오르막에 숨이 턱 막혔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초반에는 스몰토크를 하다가 어느 순간 말없이 페이스를 올렸다. 스마트워치 따윈 시간보는 용도로만 쓰는지 그는 화면을 보지도 않고 달리기만 했다. 늘 이븐하게 페이스를 굽지 못하는 그의 러닝 성향상 종국에는 둘 다 죽기살기로 뛰고 있었다. 허벅지는 뻣뻣하게 잠기는데 지기는 싫은 이상한 승부욕에 와다닥 앞질러 달렸다. 출발지에 서서 헐떡이는 숨이 드러나지 않게 고개를 쳐들고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내 워치에는 심박이 186을 찍고왔다. 붉은기로 가득한 아침해 머금은 길이 이슬로 번들거렸다.
아내는 달리기를 하러 가면서 굳이 차를 타고 멀리 가는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미 굳은 다리로라도 굳이 이런 사치를 누리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콧수염 난 이래로 내 꿈은 직업도 야망도 아닌 미들클래스였다. 재산으로는 안되니 몇년 전 유행한 밈 속 다른 나라 중층처럼 스포츠 취미를 하나는 지키는 게 내 중산층 페르소나 최후의 보루였다. 부채 없는 30평대 아파트도, 예금액 잔고도, 연 1회 이상의 해외여행 같은 우리식 기준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나도 중산층 아닌교.
눈부신 햇살을 뒤로하고 차로 들어간 순간 중산층 놀이는 바사삭하고 끝났다. 그는 금액은 보지도 않고 주차비를 정산하고 주변의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를 검색했다. 그만의 오랜 루틴이었다. 작년엔 주말 아침에 자유수영을 몇번 함께 가기도 했다. 그땐 수영장 근처에 스타벅스가 없다면서 떨떠름한 그를 빽다방이나 무인카페로 끌고 갔었다. 이번엔 그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두살 형이란 이유로 늘 밥이며 커피며 사려고 했다. 주변에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가 없으니 맥도날드DT는 어떠냐고 꼬드켜봤다. 그는 그대로의 루틴이 있는지 허허실실 웃으며 거침없이 한남대교를 건넜다
동네에 다 와서야 스벅DT는 나왔다. 차량번호가 등록되었는지 직원이 그의 이름을 불러 환영했다. 최소한의 염치란게 남아있어서 내가 사겠다고 하고 몇미터간 옥신각신 했다. 지난주 늦잠으로 펑크내서 미안하다며 커피를 산다는 그에게, 고유가시대에 차 태워줬으니 내가 사겠다고 했다. 서둘러 아아 톨 사이즈 두 잔을 시켰다. 사실 이형은 늘 그란데 사이즈를 먹고, 아내의 커피도 같이 사서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순간은 내 뇌가 강제로 까먹었다. 아저씨들답게 마지막까지 작은 실랑이 후 카드를 들이밀어 결제를 마쳤다. 열선 켜둔 의자에 푹 기대어 아아를 쪽 빨아먹으니 나도 이게 좋긴했다. 일단 원두가 무지막지하게 다크하잖아. 기분좋게 폰을 확인하니 문자에 찍힌 숫자가 9,400원.
‘뭔가 이상한데. 하나가 그란데인가?’
누가봐도 두 잔 다 톨이었다. 스벅은 늘 어디선가 들어온 기프티콘으로 먹거나 보험료 확인이벤트, 설문조사 등으로 받은 모바일상품권으로 먹었더니 작년부터 가격이 오른지도 몰랐다. 종아리에 커다란 알이 뭉쳐 근육이 올라오는 불쾌한 느낌이었다. 장타 세콜 혹은 멀티콜 네개 짜리 금액이 다음주 과업에 플러스되는 현실 앞에서 중산층이란 페르소나는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