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단위가 된 '한 콜'

달라붙는 허기, 짜치는 포만감

by플랑시


또 오늘도 배달카페에 정보를 얻는답시고 들어갔다가 결국 딴짓을 했다. 음료고정 노하우나 동선운영방식, 근무시간 등을 검색하며 손품을 팔다가 이내 전체글을 내려가며 읽고 있었다. [먹고 합시다]라는 머리글이 붙은 음식 ‘짤’을 보면 본능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보통은 긴 하루를 마무리하며 밀린 끼니를 노동주인 초록병과 함께하는 글이 많았다. 라이더들은 오늘 벌이에 따라 많이 벌면 소고기나 회 등의 플렉스 메뉴를 올리면서 스웩을 보여주고, 적게 벌면 양반김에 싼 햇반이나 라면사진을 올리면서 웃프게 오늘 얼마'따리'니 집밥만 먹는다는 식으로 자조했다.

한번은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시냐는 질문글에 달린 댓글 중 인상적인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밥배달하면서 남들 밥먹을때 밥먹으면 일은 언제합니까.”


내겐 묵직한 일침이었다. 그 밑으론 다 먹고살자고 하는일인데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대댓글도 달리고 찬반댓글로 아주 글이 흥해버렸다. 점심피크에만 반짝 일하는 나는 저 인기 댓글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내 점심시간은 세시반. 귀가와 하원 사이의 약 30분 동안 씻고 건조기 빨래를 빼는 시간을 제외하면 보통 15분남짓이 남았다. 메뉴는 주로 어제먹고 남은 반찬이거나 남은게 없을 땐 라면이었다.




어쩌다보니 밤부터 오후까지 강제로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었다. 아침은 아이가 남긴걸 조금 주워먹거나 거르고, 매일 페달링을 하니 살이 쭉쭉 빠졌다. 문제는 내가 원래도 마른편에 가까운 인간이란 점이었다. 체중계의 앞자리가 5자로 떨어지고 볼살이 푹 패이면서 가끔은 점심을 사먹기로 노선을 틀었다. 후반부 들어 집중력이 자꾸 떨어지는 걸 보니 중간에 뭘 사먹는게 더 효율적일 거란 가설을 세워 핑계로 삼았다.


공복에 조깅정도의 심박수인 존2 유산소를 지속하면서 등딱지엔 치킨이며 중국음식이며 냄새가 강한 별별 배달진미들을 메고 다니다보니 늘 허기가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쾌락의 조건에 강제로 다다를 수밖에 없는 조건. 조리대기 중에 바람을 타고 넘어온 냄새분자는 말초신경부터 온몸의 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참다참다 더 이상 못 참을 때 무언가를 입에 넣는 순간은 잠시나마 세상 근심을 날려버리곤 했다.


“이 재밌는걸 왜 무시하고 지냈지?”


식도락을 모르고 살던 시기에 대한 반성처럼, 음식 앞에서 의식적으로 단순한 행복을 찾으려 무얼 먹을지 매일 신중하게 고민했다.



휴직을 시작할 땐 파이팅 넘치게 소비단식에 집중했었다. 처음엔 높은 텐션으로 의식주 중에서 식비부터 아꼈다. 주거비는 고정비 성격이고 쇼핑이나 문화비는 원래도 없었으니까. 천연 식재료 위주로 밥을 해먹으면 건강해질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밀키트나 과자같은 가공식품을 끊으면 염증도 줄겠지만 식비가 빠지는 것도 눈에 보일정도였다. 하지만 시간과 귀찮음이란 변수를 과소평가했다가 결국 또 라면행. 이대론 안될 것 같아 가끔은 점심을 사먹자고 계획을 수정했다.


문제는 늘 그렇듯 마음속 예산이었다. 콜을 받다 보면 메뉴의 가격들이 보이게 마련이었다. 배달비를 제외하고도 별다른 사이드디쉬 없이 혼자먹는 메뉴가 대부분 만오천원은 하는 거 같았다. 아마도 그건 배달비가 음식값에 전가된 상황인가 했다. 외식물가에 새삼 놀라면서도 단건에 2,900원, 묶음에 2,200원인 내 콜 가격을 생각하면 뭐 하나 사먹기가 쉽지 않았다. 2026년 4월 기준 2달러가 안되는 이 금액은 내 생활 속 하나의 환율이었다.


대리운전을 다룬 [대리슬롯]라는 바카라에서 저자는 아이 장난감과 기저귀등을 사려할 때마다 ‘1 대리’ ‘2 대리로’ 가격이 그려진다고 했었다. 그에게 그 환율이 어떤 동기부여라면, 내 콜 환율은 그 건별 단가의 짜침으로 인해 마음이 한껏 작아진 느낌이었다.


‘이거 하나 하려면 저기 헬리오까지 다녀와야겠네, 이거 하나 사면 세건 묶음배달은 한번 빼야겠네.’


일초가 한시간같은 오피스텔 공동현관의 기다림이나, 여러 개의 엘리베이터를 둘러보며 고층부와 저층부 혹은 홀수층과 짝수층을 구분하는 사무실 로비의 찰나도 내겐 차감 중인 돈과 시간이었다. 온라인의 선배 라이더들은 자랑할 땐 일당을 이야기했지만, 힘들 땐 시급으로 표현했다.


정신없이 다니느라 시급계산도 잘 못하는 초짜인 내겐 그저 “한 콜”이 유일한 단위였다. 눈칫밥으로 탄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다음엔 얼른 ‘내려감▼’ 버튼을 눌러놓고 두리번거리며 몇 호실 가는 방향을 헤매는 긴장까지 포함한 금액 상한이 2,900원이니 작은 소비도 망설여졌다.



언덕 위 아파트로 배달을 다녀오는 길, 딱딱해진 다리를 풀고자 페달을 놓고 천천히 약한 내리막을 관성주행하며 두리번거렸다. 창가에 써진 김치찌개 3,000원이라는 폭발적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듯한 간판과 실내, 테이블수에 비해 많은 직원 수가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홀린 듯 배차대기를 끄고 들어가 앉았다. 심지어 화장실 손세정제도 뭔가 고급스러워 보인다. 상호명을 네이버에 쳐봤다. 인근 대형교회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슬롯적 기업으로 장로님이 찌개를 끓이고 집사님들이 서빙을 하는 그런 류의 가게였다. 영업은 두시까지였다. 봉사자들로 직원이 구성된 이유인가? 점심장사만 하는 듯했다.


친절한 권사님(추정)께서 주문을 받으셨다. 메뉴 하나밖에 없는 집인데도 종이와 볼펜을 가져오셔서 적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능숙하고 무심한 프로 홀서버도, 테이블마다 붙은 패드도 있을 수 없는 가게라 예뻤다.
유일한 찬인 콩나물무침과 대형 전기밥솥에 있는 밥은 셀프로 무한리필이었다. 찌개를 시키고 먼저 셀프바를 다녀와서 뜨끈한 흰밥에 아삭짭쪼름한 콩나물을 올려 먹었다.

‘할렐루야.’

종교법인 절세용 아닐까 반신반의하며 문을 열 때의 불경함은 쌀밥 앞에서 그저 죄스러워질 뿐이었다.

각종사리는 하프사이즈 오백 원, 풀사이즈로는 천원인데 마음이 정한 3천원 식사 컨셉에 걸려 시키지 않았다.


‘나도 참 지독한 컨셉충이네.’


뭐가 웃긴지 혼자 낄낄거리며 쩝쩝 마른 입을 다셨다. 작은 매장엔 1인석도 몇 개 있었다. 마감시간을 앞둔 터라 손님은 적었다. 뒤에는 택배기사로 보이는 장년층 남성이 폰을 보며 혼밥을 하고 있었고, 옆에는 느린 걸음으로 들어온 노인이 벽을 보고 조용하고 경건히 식사를 이어갔다. 가격이 가격인지라 고기가 듬뿍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감사함으로 식사를 마치고 헬멧을 쓰고 가방을 멨다.




한 콜짜리 점심을 마치고 다시 앱을 켰다. 시간을 보아하니 대여섯 콜은 더 뺄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심은 오직 나를 위해 쓴 돈이니 내 일당 목표에서 차감해서 계산했다. 두 다리가 엔진이고 공장이니 이런 탄수화물 ‘급유’는 일종의 유틸리티 비용지만, 말그대로 이건 투자가 아니고 코스트니까 마이너스(-)로 처리했다. 매출은 채워야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일렁였다.


제목에만 끌려 샀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문장이 도돌이표처럼 콜이 없는 틈새를 채우고 있었다. 바카라의 내용은 이제와서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주인공이 반복해서 외치는 문구만이 십수 년간 내 생각을 변주했을 뿐이었다.


‘Muss es sein? (그래야만 할까?)’

한콜이든 밥 한 그릇이든 그게 뭐라고 그렇게 진심인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이거라도 제대로 해야지, 다른 일 구할 때까지.’라는 답이 소화도 덜된 뜨근한 위장에서 올라온 듯했다.


“Es muss sein!”(꼭 그래야만 한다!)

다음 콜을 수락하고 다시 발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