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제 한끝 너머는 희망퇴직?
지난달 새벽 남산 자락에서 숨을 헐떡이는 위례형에게 회사사정을 떠봐도 명확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다만 회사가 인력을 많이 줄이려 한다는 것만은 명확해 보였다. 기존에는 50세 같은 나이기준으로 개인적으로 밀어넣던 희망퇴직 대상자가 연차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온라인 기사를 통해 보았다. 구글의 뉴스 클리핑 알고리즘에서 회사이름을 기막히게 찾아서 계속 띄웠다. 푸시된 기사에 내가 올해 몇년차인지 갑자기 다시 손가락을 펼쳐 세어 보았다. 열을 넘어가니 다시 접는 손가락에 연결된 인대들이 삐걱거리며 손목의 힘줄을 세웠다.
헤드헌터 제안이 왔던 바이오회사에 면접도 가지 못한 이후로 기세가 많이 꺾였다. 2분기에 돌입하니 연초에 비해 채용공고도 뜸하게 올라오는 것 같고 다 봤던거 같다. 공고도 지원자도 악성재고만 남은 느낌. 중견기업을 그만두고 지금은 헤드헌터로 일하는 친구에게도 염치 불고하고 물어봤다. 그는 좋은 포지션이 있으면 먼저 보내줄 텐데 딱히 들어오는 게 없다며 난감해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 커리어와 연봉과 짬이면 큰 변화는 어렵고 동종업계 하향이직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좋다는 업계 대기업 공개채용에 서류지원부터 연거푸 떨어지고 나서 조용한 대학친구 단톡방에 내 근황을 굳이 먼저 업데이트했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그는 뼈때리는 고언을 남겼다.
“안 될거 같은거에 너무 에너지 쏟지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사대리급이면 차라리 가능한 경우가 있는데 과차장급은 진짜 거의 불가능임.”
“산업이 달라서 그래?”
“시니어급 경력직이라면 그 사업 원료 스펙이나 원가구성, 공정, 협력사 풀 이런걸 당연히 알고있는 수준 이상으로 전문가여야 하는데, 타 업종 사람들을 뽑아야 할 이유 자체가 없지. 그렇게 업종타는 직무들이 몇개 있음.”
그의 말에 따르면 공급과잉으로 흔들리는 화학업계로부터 압출되어 나오는 구직자도 과포화상태라고 했다. 며칠 전엔 옆옆팀 바카라임 이름을 아냐 해서 이분도 여기저기 이력서를 돌리고 있구나 싶었다. 유통기한이 다했다는 사형선고까진 아니어도 실시간으로 몸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장에서 가격이 떨어지는건 억울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잘났으면 애당초 좋은 조건으로 오퍼가 들어왔어야 했다. 알음알음 알려진 이름으로 헤드헌터들의 풀에서 신용평가사처럼 레이팅되고 어디론가 점프하는 게 시장이니까.
그동안 회사가 돈을 잘 벌어서 그랬나, 이직이 잦은 업계는 아니었다. 절반이상 퇴사한 입사동기를 표본으로 복기해 봤다. 사원때는 회사 문화에 도저히 적응이 안 돼서 당시 워라밸이나 고용안정성이 좋다고 평가받던 대학교 교직원이나 공공기관으로 옮겨간 사람들이 있었고, 대부분 갓 대리를 단 서른 초반에 퇴사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 전체로 표본을 확대해 보면 조직에 회의감이 심한 사람들이 무언가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초반에 나간 경우와 어느정도 나이가 찬 이후로는 가업승계를 위해 퇴사하는 쁘띠 금수저들 정도가 생각났다. 애초에 이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성향이 보수적인 월급쟁이들인건지 자기사업을 하겠다고 나가거나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케이스는 별로 없었다. 예전만큼은 아니라지만 순혈주의적인 조직문화도 여전히 남아있기도 했다. 각자 딛고 서 있는 자리가 중심이 되듯 남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카더라식의 루머로 떠돌았고 대개 그들의 결론은 천동설같은 자위였다.
직바카라 통폐합 후에도 한번 동요가 있었다. 최근 경쟁사가 직무급제를 도입한다고 하면서 HR에서 비슷한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사전작업 같은 조사를 했었다. 인사는 역시 트렌트인가, 직무별로 점수체계도 같은 걸 가져와서 개인별로 스스로 기입하게 했다.
ex. 나는 이 직무를 5점척도로 볼 때 얼마나 주도하고 전문적으로 혁신하는지
점수를 잘줘도 이상하고 낮게줘도 불안한 문항에 공부 안 한 과목처럼 3점으로 줄을 세웠었다. 읽다 보니 5점이면 내가 진즉에 실리콘밸리에 스타트업 차릴 정도의 혁신가여야 했다. 고성장이 사라진 지금 당연한 시대적 흐름이겠지만 매년 회사는 성과주의를 강화한다며 연공제에 균열을 내는 제도변경을 추진했다. 그 기원이 전시동원체계 혹은 발전국가론적 유산인지, 동북아의 쌀농사로부터 비롯된 문화인지는 나같은 회사원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기존 시스템의 해체는 장기적 수순이겠지만, 낀 세대를 자처하는 동기들은 이래저래 돈 덜 들이려고 회사가 갖은 노력을 한다고 받아들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갈등은 상존해 왔겠지만 회사의 비어가는 곳간에서 원래도 없던 인심은 바닥을 박박 긁었다. 하체부실에다가 가분수인 인구구조 속 길쭉한 허리의 요추 1번정도를 맡고 있는 이들은 과거의 꿀은 다 빨고 자산가가 되어 정년을 맞이하는 선배들을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욕했다. 물론 정년을 못채우고 소리없이 사라진 사람들은 한참전에 잊어버렸고.
나 또한 그들중 하나였지만 윗세대에 대한 부러움보다 MZ라고 맘대로 이름붙여진 아랫세대에 대한 부채감이 더 컸다. 기껏해야 좁은 준거집단만 본 일반화겠지만 대기업 공채의 막차를 탔던 내 학번 대졸자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고, 그중 ⅔ 정도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 안에서 또 절반정도가 수도권에 아파트를 보유했다. 우리 슬롯에서 90점짜리 답안으로 삼는, 그렇다고 정답이라고 쳐주지도 않는 생애주기별 테크트리였다. 2010년대 초 3포세대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후로 N포로 증식하는 동안 나와 내 주변은 그 한'포’씩을 고민 혹은 사투끝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시작은 그럴듯한 일자리에 입직(入職)하는 일이었고 나보다 늦게 태어난 사람들은 그 입구가 더 보이질 않았다.
친한 후배들이 있는 자리면 어느덧 취해서는 그런 부채감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면 후배들은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표정이었다. 겨우겨우 들어온 회사지만, 그들도 이걸로는 답이 없다 싶은지 얼른 괜찮다는 곳으로 뜨고 싶은 마음뿐인듯해서 아이러니했다.
내가 클릭하는 미디어와 컨텐츠에선 입직에서 시작되는 단계적 성취라는 그림이 마치 당연히 해야 할 디폴트값처럼 다뤄지고, 머릿수로는 기껏해야 20%인 삶의 양태가 정상성으로 과대대표되고 있었다. 입시부터 시작되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일로 다뤄지는 슬롯적 합의는 너무도 당연해서 세상이 변한다고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생기지 않을 도그마 같았다. 그럼에도 들어간 이후의 삶은 아무도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자연스런 각자도생의 영역이라고만 여겨서 말할 필요를 못 느끼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니지, 나이가 들면서 푸시해 주는 기사들에서는 회사만 다니면 바보된다는 식으로 그다음엔 뭐할거냐고 다시 쪼고 있었다. 듣다 보면 ETF광고 같기도 하고, 따박따박이라는 네글자만 맴돌았다.
“너 사실 대기업부심 있구나?”
작년엔 고등학교 동창 단톡에서 [대잡직원]이란 말을 처음 듣고 충격을 받았다. 대기업 잡 직원. 나무위키로 찾아보니 전문성도 특수성도 없고 피라미드식 구조에서 떨어져 나갈 예정인 예비 프랜차이즈 사장이라는데, 한때 명문대 게시판에서 대졸 공채 직원을 부르는 멸칭이었다. 친구들 카톡방에서 들은 단어가 자꾸 떠올랐다. 단어를 자조적으로 꺼낼 때마다 그 말을 알려준 서울대 친구는 내가 “긁힌다며” 더 놀리곤 했다.
처지가 변하니 단어를 다시 곱씹게 되었다. 산업의 전문가라고 하기엔 낯간지러운 깊이에, 담당 아이템을 몇 년씩 하다 바꾸는 정도의 넓이가 내 커리어였고 시황에 따라 값이 매겨질 뿐이었다. 글로벌 신평사가 몇년새 회사의 신용등급을 조금씩 낮추는 동안 내 Rating은 몇 계단씩 떨어졌을지 판단이 불가능했다. 오지 않는 면접 안내 메일로 봐서는 한두 계단은 아니었다. 대잡직원...잡직원... 잡주... 잡코인. 지난번 엘리베이터에서 본 배달원의 핸드폰 속 알트코인이 나였다. 희소성이 있냐 물으면 수가 턱없이 많고, 그 자체로 무슨 효용(Utility)이 있는지 물어보면 불확실하거나 대부분 없다. 장이 좋을 땐 남들 따라 으스대지만, 시황이 꺾이면 브레이크 없이 곤두박질친다.
010으로 시작하는 전화가 오는 날이 없어진 지 오래, 갑자기 부재중 통화가 찍혀있었다. 팀장님이었다. 한창 배달중이라 전화를 인지하지 못했던 걸까 짧게 끊긴 통화라 몰랐을까, 커피 두 개짜리 꿀콜을 취소했다. 취소가 잦으면 배민한테 콜락(Call-Lock)이 걸린단 말이 있지만 그게 대순가. 정신차리고 전화를 해야 했다. 도로소음에서 벗어나려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콜백(Call back). 팀장님이 이번엔 거절메시지를 보냈다. 또 엇갈릴까봐 배달앱들을 모두 껐다. 집으로 들어가는 와중에 연락이 닿았다. 이유모를 반가움과 긴장으로 목소리톤이 올라갔다. 으레 던지는 간단한 안부가 오간 후 팀장은 갑자기 요즘 구직시장은 어떠냐고 물었다.
“네?”
전화를 떼고 통화녹음버튼부터 눌렀다. 느낌이 이상하면 녹음부터 하는 게 일하면서 생긴 습관중 하나였다. 녹음한다고 내가 쓸 카드가 생기지도 않지만 해야만 했다. 팀장은 구직중이라는 답을 내입으로 듣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내가 두루뭉술하게 피하니 대놓고 유도하는 정도였다. 지금 소득이 없지 않나, 육아휴직급여는 3개월만 나오는지 정도의 질문은 궁금해서 하는 게 아니었다. 팀장은 잠깐의 침묵 이후 용건을 전했다. 회사에서 희망퇴직 공지 올라온 거 봤는지, 신청기한이 며칠 안남았는데 구직중이면 좋은기회인 것 같아서 지원의사를 확인한다는 말이었다.
“기사로는 봤는데요, 근속 20년부터로 희퇴가능조건이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팀장은 HR에서 조직별로 조사를 하면서 기회를 줬다고, 원한다면 올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왜 HR에서 직접 연락이 안오고 중간관리자가 연락하는지, 조직에 일정 비율이상 인력을 줄이는 KPI가 있는지, 퇴직금 조건제시 없이 기다 아니다부터 묻는지 되물었다. 끝까지 구직중이라는 확답을 받지 못한 팀장은 그럼 희망퇴직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고하겠다고 갑자기 존대를 했다. 쓸데없는 근황질문을 몇 개 이어가던 그가 재차 묻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구직중도 배달중도 아니어야 하므로 고민끝에 헛소리가 나왔다.
“저 지금 그냥 자연인으로 살고있습니다.”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로 통화는 끝났다. 잠깐 화가 났다가 이내 지쳤다. HR에서 임원을 거쳐 온 오더에 이 전화를 해야 하는 팀장도 고생이겠다 싶었다. 닫은 가게앞에 고이 올려둔 가방을 들쳐맸다. 이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일당을 못맞추고 귀가했다.
다음날은 비가 제법 많이 왔다. 벌충하려고 아침부터 배달을 나갔다. 예보보다 많은 비에 라이더 공급이 줄었는지 배달수요가 터진 건지, 어제 못채운 금액 이상으로 벌 수 있었다. 옷이 다 젖고 시야가 흐릴 만큼 시간이 흐르니 철벅거리는 비가 고인 웅덩이가 길 위 곳곳에 나타났다. 평소에는 평탄해 보이기만 했던 길도 날이 험해지면 고저차가 드러났다. 어제도 간 길인데 지금은 바퀴가 꿀렁거리는 느낌이었다. 입술을 달달 떨면서도 악에 받친 채 지금껏 가장 많은 건수와 금액을 채웠음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복직은 할 수 있는 걸까, 돌아가면 대체 어떻게 되는걸까, 정규직 세글자에 기대서 정년까지 버티기만 생각하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길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