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의 유령

차에 치이고도 회사가 무서워 보험을 포기한 날

by플랑시


나는 놔두면 밑도 끝도 없이 퍼지는 놈이란 사실을 40년의 실험을 통해 귀납적 결론으로 도출했으므로 적어도 루틴을 지키려고 했다. 수십년을 재밌다고 타온 자전거인데 매일 같은곳으로 뱅뱅 타다보니 지겹고 힘들기만 했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던가? 오늘의 밥값 정도를 버는 내 작디작은 낚싯바늘도 구조상 아가미에 꿰어 속절없이 밥쪽으로 끌려가는 건 매한가지였다. 저녁 장보기 한 번이면 숭덩 써버릴 그정도 일당을 벌기 위해서는 세시간에서 네시간 정도의 시간과 20여 건의 배달과 25킬로 정도의 주행거리가 필요충분조건처럼 다 필요했다. 가급적 세 조건 모두를 지키려 했는데 눈이 녹고 꽃이 피는 비수기엔 단가도 시간당 건수도 떨어지니 마지막으로 남은 시간을 더 “녹여야” 했다.



봄이 되면서 자연스레 하락한 단가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받아들였지만, 콜이 없어서 길가에 멈춰있거나 콜이 많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녹아버리는 시간들은 매순간이 고통이었다. 하원 전에 청소기라도 한번 돌리려면 집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의 마지노선은 정해져 있는데, 비는 시간이 늘어만 나니 마음이 타들어갔다. 콜사(Call査)라 불리는 대기시간 동안 안장 위에서 고민없이 배민커넥트 어플을 설치했다. 이제 초보딱지는 뗐으니 전업러들이 하는 “양빵”_배민과 쿠팡의 주문을 번갈아 수행하는것_을 칠 때였다. 두 앱을 동시에 켜뒀다가 콜을 받으면 다른앱을 끄고 배달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평균 시급은 겨울대비 떨어졌지만 쿠팡 단독으로 할 때보다는 하락폭이 방어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률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콜사시간자체가 줄어든 느낌이라 조금 편안해졌다. 돈보다는 안도감이 애초에 목적이었던 사람인 것처럼 주행중에도 한 손으로 두 앱을 왔다갔다 했다.



사무실과 식당이 많은 문정법조타운에서 받은 콜을 위례에 가까운 장지동 주택가에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 차에 치였다. 정확히는 살짝 받쳐서 밀렸다.


2차선 도로가 4차선 도로로 확장되는 구간에서 우측차선 끝에 붙어 내리막을 가던 중이었다. 머릿속으로 각각의 앱에서 번 오늘의 일당과 시급을 계산하고 있던건지, 배달이 많은 지역을 눈으로 확인한 건지, 상권이 가까워지면서 밀려드는 콜을 고르고 있던 건지 모르겠다. 헬멧이 멀쩡한걸로 보아 어디 머리가 충돌한 흔적은 없는데 사고 전 순간의 기억이 없었다.


페달링없이 직선 내리막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고, 송파대로 앞은 빨간불이라 차들과 함께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갑자기 시야에 상아색 차의 C필러가 들어왔고 왼쪽 어깨가 쿵. 오른쪽으로 밀려나며 보도블럭 경계석으로 부딪는 상황을 피하고자 뭔가 애를 쓰다 오른쪽 측면으로 꽝, 하고 넘어졌다. 자전거 사고를 몇번 경험해 볼 때마다 느끼는데, 타던중에 사고가 날 땐 낙법이고 뭐고 생각할 틈이 없었다. 배움이 부족했거나 반응속도가 늦어졌거나, 어쨌든 둔탁하게 그저 꿍 하고 어깨 쪽으로 떨어졌다. 마치 숙취에 시달릴 때처럼 뒷골이 무거웠다. 이명이 들려왔다. 안전때문에 오른쪽만 껴둔 블루투스 이어폰은 바닥을 구르는 동안에도 빠지지 않았다. 쿠팡 콜이 들어왔다. 고조되는 사이렌같이 반복되어 듣기싫은 와중에 띠롱띠롱 하는 소리와 함께 경쾌한 “배민↗배달↑!” 도 들어왔다. 쿠팡과 배민과 이명이 골고루 동시에 귓가와 귓속을 괴롭히고 있어 판단력이 흐릿했다.


전방은 빨간불이었고 차들이 천천히 감속하며 달리는 중이라 다행스럽게도 뒤에서 다른 차가 덮치진 않았다. 옆으로 누워 몇초간 켁켁거리면서 우선 호흡을 되찾으려 했다. 잔뜩 놀란 온몸의 근육중에 횡격막도 포함된 건지, 마치 어릴적 철봉에 거꾸로 매달렸다가 떨어진 날 같았다. 잠깐동안 숨이 안쉬어졌다. 십초나 지났을까, 운전자가 다가왔다. 일어날수 있겠냐고 물었다. 숨을 두어번 몰아쉬고 “잠깐만요.”라고 대답했는데, 실제론 시간이 더 지체되었는지 운전자가 내 왼손을 잡아끌었다. 분명 악! 하고 비명이 나왔는데 실제론 숨이 컥해서 소리가 거의 안 났다. 내가 고통스러워하자 운전자가 손을 놓았다. 옆으로 누운 새우같은 모양새에서 반바퀴 굴러서 엎드려 한참 숨을 고르고 일어났다.

운전하는 동안 접촉사고 한번 나본 적 없는데,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곤 일어나자마자 뒤로 세걸음 가서 비상등이 켜진 차와 쓰러진 자전거 사진을 찍었다. 몸을 더듬어봤는데 크게 다친 곳은 없는것 같다. 자켓과 바지가 약간 찢어졌는데 옆면으로 다리부터 어깨까지 곧게 떨어져서 어디 부러진데가 없나 보다. ‘나 낙법했네? 배운게 어디 안간다니까.’

오토바이 배달러들은 헬멧캠을 쓰지만 내 자전거에 블랙박스가 있을 리가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생각을 정리하고 우선 운전자에게 대뜸 센척을 했다. 기세로 밀리면 진다고 배웠다.

“아니! 일단 저는 우측차선 붙어가고있었거든요? 갑자기 밀고 들어오시면 어떡합니까?”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코란도 운전자는 잔뜩 쫄아든 표정으로 양손을 모아 앞짐을 쥐고있다.


‘이거 내가 피해자 맞나보다.’


확신이 들었다. 굴러다니는 물통을 주워서 자전거에 끼고 자전거를 경계석 위로 올렸다. 거치대는 쓸데없이 튼튼해서 핸드폰이 여전히 달려있었다. 귀에 계속 울리는 콜을 끄기 위해 허리 숙여 폰을 뺐다. 양사 앱을 더듬거리는 동안 한기가 밀려들며 몸이 떨렸다. 신호가 바뀌어 뒤차들은 1차선으로 우회해 가는 중. 우선 억울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앞으로 가고 있었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운전자는 울상만 유지한 채 말이 없었다.


‘이 사람 말을 할줄모르나? 무면허인가, 음주는 아닌 거 같고, 외국인?’




뒤편에서 신경질적인 경적들이 들려왔다. 운전자에게 폰을 내밀어 전화번호를 찍으라고 했다. 신호가 가는걸 보고 빨간버튼을 눌렀다. 경찰신고부터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는 동안 운행이 중단된 채 깜빡거리는 배민앱이 켜졌다. 주문많은 지역이 지도상에서 명도와 채도를 바꿔가며 반짝거렸다.


“보험”과 “산재” 두 단어가 머리를 쑤욱 찔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가다 차에 치였는데? 배달을 하다 난 사고니까 배달중인가? 배달 마치고 빈차로 가던 중이니까 그냥 치인건가? 소음과 통증 속에서 짱구를 꿀려봤지만 가장 큰 리스크는 “겸업”이었다.
‘휴직중이어도 재직중인 거니까 문제가 되는 걸까?’ 우선은 어떤 리스크도 안으면 안된다는 마음이었다.


“블랙박스 지우지 마세요.”


진중한 표정으로 아무 위력 없는 엄중경고를 하고 운전자를 보냈다. 운전자는 고개를 꾸벅하긴 했지만 끝까지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없었다. 이쯤되면 내가 껴들어서 차에 박았나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인도에 자전거를 눕혀두고 보도블럭에 앉았다. 자전거도 부러진데가 없고 나도 부러진 데는 없다. 둘 다 좀 까졌을 뿐이다. 물을 꺼내 마셨다. 이정도 사고면 그냥 집에도, 회사에도 소식이 들어가지 않는 게 낫겠다 싶었다. 다시 생각하니 나은 정도가 아니라 들어가면 큰일이었다. 아내의 화도 눈물도, 가뜩이나 인력을 축소해야 하는 회사의 징계위 같은 그림도 떠올랐다. 어떤 류의 조치도 받아낼 깜냥이 나에게는 없었다.




손목과 발목과 목을 돌려보고, 천천히 다시 움직여야 했다. 오후 한시경이니 날은 점점 따스워지는데 땀이 식어가면서 몸은 점점 추워졌다. 보행자들은 연석에 주저앉은 이상한 내 꼬라지를 흠칫 지켜보며 멀찍이 돌아갔다. 눈앞이 어지러워 다시 잠깐 드러누웠다. 보도블럭위에 철퍼덕 늘어진 내 모습이 유령 같었다. 약간은 우스운 꼴의 커다란 네모가방을 멘 유령은 비척거리며 일어나 무릎을 굽혔다 펴고, 한쪽으로 돌아간 안장을 힘줘서 가운데로 돌리다 이내 포기하고 다시 식당가로 내려갔다. 앱에는 과도한 거절과 콜을 무시하면 어쩌고 하는 배차 제한 관련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쿠팡의 우측상단 초록색 배달 토글을 켜고, 배민의 좌측상단 민트색 배차버튼을 활성화했다. 몇 건의 배달을 더 느릿느릿 기어가듯 해서 일당을 채우고 집에 들어왔다. 바지를 벗고 오른쪽 골반에 맺힌 피딱지를 봤다. 소독약을 바르기도 귀찮아 옷만 갈아입은 채 네시로 알람을 맞추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알람을 두번이나 끄고 자서 10분 늦었다. 아직도 뻐근하고 몽롱했다. 유치원으로 가는 길 신호를 기다리며, 몇 가지 검색을 통해 산재든 보험이든 겸직이 알려지는 루트가 아니란 걸 알았다. 사외접속 막힐줄 알았으면 취업규칙이나 미리 좀 뽑아둘걸. 통화기록 맨 위 코란도 운전자의 번호를 내려다보았다.




“녹색불이 켜졌습니다. 건너가도 좋습니다.”


소리를 들으며 폰을 계속 보면서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운전자의 표정이 떠올랐다. 남루한 행색과 뒷창문을 가릴 정도로 많은 짐 따위의 이미지도. 내가 드러누우면 저 사람은 생계가 꼬이는게 아닐까 싶은, 이상한 걱정이 들었다. 쓸데없는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이어졌다. 저 사람도 어떤 낚싯바늘에 입이 찔려 퍼덕이면서 서둘러 송파대로로 가는중이 아니었을까. 선생님께 인사하고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자조와 연민과 자기연민과 허장성세와 상처의 쓰라림이 뒤섞여 얼굴을 찌푸리며 15노0632 이딴식으로 저장해 둔 전화번호를 지웠다.




30화중 10화가 끝났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구상한 1부입니다. 겨울부터 봄까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시기의 글입니다. 2부는 달리는동안 눈에 들어온 것들을 담습니다. 요즘은 정말이지 너무 덥네요. 여기까지 꾸준히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