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핸드폰도 두고?"
그래 핸드폰도 두고 어딜 갔는지.
10시가 넘어가도록 들어오질 않는 거야.
"어딜 갔데? 애 둘하고 아빠만 두고?"
그러게 어딜 갔던걸까?
네 오빠는 칭얼대지. 너는 죽겠다고 울지.
한 명이면 모를까..
어린애 둘을 데리고 나갈 수가 있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상상을 하면서
기다리는 방법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도아야 저거 다 떨어진 것 같은데?
벨 좀 눌러줄래?
"어? 왜 니가 받아?
잃어버렸다더니 핸드폰 집에 있는 거였어?"
울고불고 그 난리를 치던 너희 둘을
겨우 다시 재우고.
새근새근 조용한 숨소리만 가득한
불 꺼진 조용한 방 안에서
아무도 없는 거실만 멍하니 쳐다보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 간 거지?'
'이렇게 오랫동안 편의점 간 건 아닐 거 아냐'
'애 보다 어디 다쳤나? 그럼 깨웠을 텐데..'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겨.. 경찰.. 경찰!'
그렇게 열리지 않는 현관문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엄마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어.
"미진이가 얘기하고 왔다던데 아니야?
내 동생이지만 애도 참 대바카라없다..."
처형. 그러니까 너희들 이모였지.
받자마자 다급하게
엄마의 소식을 묻는 아빠에게
이모는 엄마가 처가에 와있다고
한숨을 쉬며 얘기해 줬어.
"아.. 그래도 다행이네요..
전 또 어디 납치라도 당한 줄 알고..."
"저 모지리를 누가 납치해..
아휴 이 기집애를 진짜..."
엄마는 새벽 첫차로 처가에 간 거였어.
핸드폰을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엄마가
이모에게 전화해보라고 한 걸
아빠가 받은 덕에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지.
"아저씨? 내가 얘기했잖아..
집에 갔다 온다고.."
"언.. 아... 혹시 아까 그 새벽에.."
문득 새벽에 잠결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는 거야.
/
"...안 자?"
"응. 당신 자."
"... 응? ... 안....자?"
"헤헤~ 졸지 말고 편히 자. 그리고 있잖아 나..."
/
"그게 그 얘기였구나."
"걱정했어..? 미안..
난 당신이 응 이라고 하길래
갔다 오라는 건 줄 알았어."
"아니야. 언제 올 건데?"
"오늘 바로 갈 거야. 엄마랑 언니랑
저녁 먹고 갈게."
"왜 며칠 안 있고?"
"엄마가 가긴 어딜 가~
그리고 아내가 신랑 옆에 있어야지.
다들 그러고 사는 거잖아."
"미안하라고 일부러 이러는 거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하아...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하나의 걱정이 해결이 되기 무섭게
눈앞에 자고 있는 너희들을 보자
또 다른 걱정이 아빠를 엄습하기 시작했어.
"애들 자는 김에 빨래나 돌려볼까."
그래도
엄마의 행방도 알았겠다.
마음이 놓인 아빠는
조용히 기지개를 쭉 펴고
일어났지.
'놀면 뭐 하냐~
이참에 오랜만에 미진이 오기 전에
청소도 좀 하고, 빨래도 해볼까?
미진이가 감동하겠지?'
혹시라도 다시 깰까
단순히 일어서는 것뿐인데도
수십 초가 걸렸고, 까치발을 든 상태로
세탁기 앞에 도착했어.
/
'빨래는 애들 거랑 우리 거랑 따로 빨아야 돼!
세제도 우리 거 말고 이걸로.'
/
이유는 모르겠지만 항상 엄마가 하던 말이
다행히 머리에 스치더라.
음식물 묻은 옷... 토한 옷..
무슨 옷들이 그렇게 많은지.
매일 빨래를 하면서도 엄마가
빨래지옥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어.
'... 담배 하나만 피고 할까..?'
일어나자마자 너희들하고 전쟁 치르랴,
엄마 걱정하랴 빨래까지 돌리고 나니까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하게 나더라고..
방으로 슬쩍 얼굴만 들이밀어서
너희 둘이 잘 자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최대한 소리가 안 나게 문을 열고 나가는데
또 몇 분이나 소요되더라.
'안 깨겠지? 방금 잤으니까?
한두 시간 정도 시간은 있겠지..?'
가끔 주말에 엄마랑 같이 너희를 돌볼 때도
한번 자면 그래도 어느 정도 유지가 되던 게
생각났어.
담배 하나 피는 데 뭐 길어야 5분이니까.
빨리 들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거지.
바보같이..
계속 깨려고 하면 도닥이고, 칭얼대면
달래주던 엄마의 모습은 생각 못한 채 말야.
"으아아앙!"
동네에 울려 퍼지는
우렁찬 아이들 울음소리.
'아휴.. 저 집도 참 고생이다..'
남 일 같지 않단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언제 또 필 수 있을지 모른단 생각에
필터 위까지 태우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어.
"으아아아앙!"
집이 가까워질수록
동네 아이들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는 거야.
"아..."
아빠의 걸음은 점점 빨라지다가 이내
뛰기 시작했어.
/쾅/
나올 때와는 다르게 거칠게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지.
아니나 다를까.
얼굴까지 빨개져서 울고 있는 도아,
그 옆에서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서
울고 있는 도윤이.
"아이고..."
아빠를 보자마자 더 서럽게 우는 도윤이.
일단 도윤이부터 달래주려고 안아 올리는데
기저귀가 묵직한 거야.
"너.. 쌌구나..?"
온갖 생떼를 쓰면서 안 누우려고 하는 너를
억지로 눕혀 기저귀를 가는 동안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도아.
혹시 싶어 기저귀를 살짝 들쳐봤지.
'아.. 이게 미진이가 말한 똥폭탄이구나..'
일단 도윤이 기저귀 벗기는 것까지
성공했으니 도아부터 해결하자란 생각에
도아 옷을 벗기기 시작했어.
"압하~ 으아앙"
"아이고 우리 도윤이
기저귀 벗으니까 시원하다 그치?
잠깐만~ 동생부터 하고.."
"으아아앙 시더 으아아앙"
"기저귀.. 니가 입으면 안 되냐.."
말도 안 되는 협상을 하며
도아 기저귀를 벗기는 데까지 성공했지.
엉덩이랑 여기저기 묻은 응가를 물티슈로
닦긴 했는데
/
"여자아이라 더 신경 써서 잘 닦아줘야 해.
감염 위험이 있거든."
/
엄마가 전에 했던 얘기가 생각나는 거야.
"... 도아야 그냥 씻자."
차라리 물로 씻기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란 생각에
도아를 안고 일어나는데
"시더! 으아앙! 압하! 시더~"
기분 탓이었을까?
누워서 목 놓아 울던 도윤이가
아빠를 노려보며 더 크게 우는 거야.
"하아.. 도윤아.."
결국 화장실까지 따라온 도윤이
"안 돼! 아 차거! 들어오면 안 돼"
"야! 들어오지 마 안 된다고!"
"물! 물! 움직이지 마!"
"미끄러지면 아야한다? 정지. 정지이!"
"도윤아 제발.. 아빠 다 했네~"
아빠는 도아를 씻기고 있고
몇 번을 욕실 안으로 들어오려다
아빠의 제지로 실패한 도윤이는
화장실 문 앞에 우뚝 서서
울며 지켜보고 있고
그냥 정신이 아득해지는 게
미치기 딱 일보 직전이란 말이
뭔지 알 것 같더라고.
도아를 씻겨 나와서
부랴부랴 수건으로 말리고
다시 기저귀까지 입히는데
마치 하루 종일 업무 때문에 바빴는데
야근까지 한 것처럼
어찌나 힘들고 정신이 없던지.
그제서야 계속 졸졸 따라다니면서
울고 있던 도윤이 모습이 보이더라.
"너.. 아직도 안 갈아입었냐..?"
"으아앙..."
"... 그래 너도 씻자.."
"흐규.. 흐규.."
이제 도윤이를 데리고 일어나려는데
울음을 터트리려고 시동을 거는 도아.
"도윤아... 그냥 기저귀만 가는 걸로
합의하자 우리.."
한번 시동을 건 도아의 울음은
결국 터져버렸어.
/
'애들이 울면 고졸아기부터 생각해야 돼'
"고졸아기?"
"고파? 졸려? 아파? 기저귀?"
/
기억을 더듬어 엄마가 해줬던 말을 토대로
생각을 해봤지.
'아픈 것 같지는 않고.. 기저귀도 갈았고..
졸린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여전히 서럽게 울며
졸졸 따라다니는 도윤이를 달고
분유를 타서 엄마가 사용하는
수유 베개를 이용해 도아를 안은 채
젖병을 물렸어.
다행이지.
울음은 거짓말처럼 그쳤고
열심히 젖병을 빨아들이는 도아를 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
"하아.."
"으아아앙!"
아빠가 자기 울음소리를 못 듣는다고
생각했던 걸까?
"너.. 아직도 기저귀 안 갈아입었냐.."
이젠 아예 바로 옆에까지 와서
기저귀를 손에 꼭 쥔 채 울고 있는
도윤이었지..
기저귀를 입히는 중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더니
다 입었음에도 계속 울던 도윤이.
"으아앙.. 맘마."
".. 아.. 도윤이도 배고파..? 나도.."
시계를 보니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오후 1시를 향해가고 있었지.
그 난리를 치러서였을까.
배가 너무 고픈 거야.
그래도 애부터 먹여야지 싶어
주방으로 향했어.
다행히 밥통엔 약간의 밥이 있었고
도윤이 먹이기엔 충분한 양이었지.
'가만있자.. 빨리 할 수 있는 게..'
맛? 정성? 그런 거 생각할 시간이 어딨니.
그냥 무조건 빨리 만들어서
빨리 먹일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계란후라이를 만들어 밥이랑
참기름, 간장 살짝 넣어서 비볐지.
"아~ 아구 잘 먹네"
너무도 다행히 잘 받아먹던 도윤이.
밥까지 다 먹이고 나니 배가 고프다 못해
속이 쓰려오기 시작하는 거야.
"라면이나 먹을까.."
원하는 걸 다 해줘서였을까. 혼자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던 도윤이.
어차피 한 공간에 있으니까
이번엔 안심할 수 있겠다 싶어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어.
"하아.. 잘 먹겠습..."
"으아아앙"
드디어 한 젓갈 뜨나 싶었는데
도윤이 울음소리가 나는 거야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젓가락을 내려놓고 바로 뛰어갔더니
입 주변과 옷, 베개, 이불 할 것 없이
토사물로 범벅이 되어있는 거지.
/
"맘마 먹이고서 꼭 등을 이렇게 토닥여서
트림을 시켜줘야 돼"
"먹일 때마다? 안 하면?"
"위험해.. 토하거든. 만약 기도를 막으면
죽을 수도 있어..."
/
얼른 울고 있는 도아를 들어 올려 안고서는
등을 도닥였지.
"아이고.. 내 새끼 잡을 뻔했네...
아빠가 미안해.."
잠시 후 트림과 함께 시큰한 냄새가
나서야 겨우 한시름 놓는 아빠였지만
토사물로 범벅이 된 도아 옷, 베개, 이불,
그리고 그런 도아를 들어 올린 아빠 옷까지...
'하아.. 씻긴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도아를 안고 욕실로 향하는 아빠.
아빠가 일어나자
장난감을 갖고 놀다 말고 벌떡 일어나
칭얼대며 따라오는 도윤이
"도윤아 안 돼! 거기 있어!"
"오지마! 물 젖는다니까?"
/띠리리링/
"..."
그리고 울리는 세탁기 종료음..
할 거는, 해야 할 거는 많은데
하나조차 제대로 완료하기가 힘든,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완료가 안 되는 그런 상황만
이어지고 있었어.
"아.. 배고파.."
끓여놓은 라면은 이미 국물의 흔적조차
안 남을 정도로 불어가고 있었고 말야.
"엄마 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울고 보채던 도아를 또 겨우 재우고
도윤이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어? 빨리 왔네?"
"아저씨.. 빨리라니.. 지금이 몇 신데.."
엄마의 말에 시계를 보니 9시.
이미 밖은 어두워진 지 오래였지.
"와.. 시간이 벌써.."
"삼촌이 얼굴 보고 가라 하는 거
거절할 수 없어서 늦게 출발했거든.."
"와.. 아홉.."
"어? 도씨 아저씨 빨래 안 꺼냈네?"
"아.. 아까 도아 씻긴다고 정신없어서"
"으이그~ 젖병도 그대로네?"
"하아.."
"응? 아저씨.. 밥.. 안 먹었어?"
불어터진 라면을 잠시 바라보던 엄마는
측은한 표정으로 아빠를 보며 물었어.
"아.. 맞네 그것도 까먹고 있었다.
내가 지금 치울게"
"아냐 하루 고생했어. 이제 좀 쉬어.
엄마가 돌아왔다!"
팔을 걷어붙이며 세탁기로 향하는
엄마 뒷모습을 보면서
"와.. 당신 패잔병 구하러 온 장군 같아.."
진심이 담긴 농담을 건네는 아빠였어.
"자! 아까 당신이 못 먹은 라면.
이번엔 불기 전에 빨리 먹어"
파 넣고 계란까지 넣어서 제대로 끓여준 라면.
젓가락으로 라면을 집어드는데
왜 그렇게 라면 가닥이 흔들리고
국물이 여기저기 튀기던지..
"으이그 칠칠치 못하게 다 흘리네! 맛있어?"
"응.."
"많이 먹어 우리 신랑."
엄마의 실종부터, 너희들과 치른 전쟁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그날 하루도
그 한 그릇 라면과 함께 따뜻하게
지나가고 있었지.
"근데 미진아. 나한테 처가 간다고
얘기했었어? 언제?"
"얘기했잖아. 당신이 알았다고 했으면서"
"그랬나...?"
/
"헤헤~ 졸지 말고 편히 자. 그리고 있잖아 나..."
"으으응..."
"나.. 우리 엄마 보고 싶어..
오늘 엄마 보고 와도 돼?"
"어.."
"고마워.. 갔다 오면...
다시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으으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