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

by도리

'와.. 이게 진짜 다르네..'



둘째는 첫째와 다르다는 말,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니?


도아가 태어났을 때.

도윤이 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확실히 다르긴 하더라.



"나 방금 화장실 갔다 오는데 도아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이그.. 아저씨.. 너무 팔불출 같아.."


"아빠가 딸 예뻐하는 게 이상한가? 그치 도아야~"


"음마... 안아..."



세 뼘 길이도 안 되는 도아를 안고 있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누워있는 엄마에게

자기도 안아달라고 조르는 도윤이었지...



"나왔어! 아 쫌! 오빠 넌 비키고..

우리 도아 어딨어?

세상에.. 도아를 왜 안고 있음?

도아는 내가 안아야 되는 거 몰라? 대박.."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손에 알콜을

듬뿍 발라 비비며 뛰어들어오는 고모 도희.

두리번거리며 너를 찾는가 싶더니,

내 품에 안긴 도아를 뺏다시피 데려가 안는

고모였지.



"아우~ 우리 도아 잘 있었어?

완전 이쁜 거 봐! 오빠 완전 나 닮지 않았어?"


"응! 안 닮았어!"


"헐.. 대박.. 닮았거든?

도아야~ 고모처럼 이쁘게 커라~"


"성격만 좀.."


"뭐! 내 성격이 어때서? 그치 도아야~

오빠가 괜히 그러지? 응?"


'아... 시끄러..'



도아를 안고 살살 흔들며

예뻐 죽겠다는 표정을 짓던 고모.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작아진 눈은 다시 커질 생각을 못 하고 있던 그때.



"으아앙! 나도 안아! 나도 안아!"


"어머.. 도윤아~ 고모가 미안.

어디 안아보자!

일로 와~ 도윤이 안아보자~

비행기 놀이할까? 슈우웅!"



도윤이는 그렇게 고모 품에 안겨 울음이 멈췄어.

다만..



"으캬캬캬캬캬!"


"애 던지지 마라.. 머리 나빠진다.."


위로 던졌다 받고,

또 위로 던졌다 받고 하는 식으로 놀아주는 바람에

도윤이의 괴랄맞은 웃음소리가

병실에 가득 퍼지고 있었지...



"도씨 아저씨.. 집에 좀 갔다 올 수 있어?"

"응. 뭐 갖다줘?"


"도윤이 기저귀랑.. 분유랑.. 충전기.

이것저것 좀 챙겨와야 될 것 같은데..."


"오케이! 지금 갔다 올게.

도희, 언니 괴롭히지 말..."



출산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엄마를 괜히

고모가 귀찮게 할까 싶어 나름 주의를 주려고

고모를 쳐다봤을 때.



"우쭈쭈~ 우루루 까꿍!"


"으캬캬캬캬캬!"


"깔깔깔깔"


"으캬캬캬캬캬!"



시끄러운 것만 빼면 그냥 둬도 괜찮겠다 싶은

고모였어..


산부인과 근처 공영주차장.

돈이 없어 저렴한 산부인과를 골라서 그런가?


입원 중인 산모 보호자인데도

산부인과 건물에 주차를 할 수 없었어.


아니, 할 수 있었다. 하루 4시간..

그래서 주변에 있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곤 했었지.



"후우~"



차 앞에 다다르자마자 꺼낸 담배.

오래 참았던 만큼 왜 그렇게 맛있던지.



"어디 보자... 백.."



진짜 아끼고 아껴 모은 네 엄마 병원비.

산후조리원은 꿈도 못 꾸는 형편이었어도,

병원비만큼은 내 돈으로 내겠다는 다짐 하에

정말 미친듯이 모았던 136만 원.


그 당시 엄마 병원비가 110만 원이었으니까,

이미 충분했었지.



/팍!/



"아 X발 뭐야!"



그렇게 핸드폰으로 잔액을 보며 행복해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누군가 아빠에게

슬리퍼 같은 걸 던진 거야.


아빠 등에 맞고 차 트렁크 쪽을 가격한 후

위로 떠오른 그 슬리퍼는 잠시 후

바닥으로 떨어졌지.



"어떤 새끼야!"


씩씩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슬리퍼가 떨어진 곳을 쳐다봤는데..



"뭐.. 뭐야 이거..?"



슬리퍼가 아니었어.

웬 조그마한 새가 죽어가고 있었지.


바닥으로 흘러나온 피.

입은 힘겹게 뻐끔거리고 있음에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새의 목소리..

이미 굳어버린 것 같은 몸..

감겨버린 눈...


한동안 그 충격적인 장면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


애써 고개를 젓고는 올라탄 차 안에서,

아빠는 제일 먼저 네 엄마에게 전화를 했지.



"응.. 아저씨 가고 있어?"


"도윤이, 도아 뭐해?"


"도아는 선생님이 데려갔고..

도윤이는 도희랑 놀고 있는데? 왜?"


"아.. 아니야. 알았어 금방 갈게."



아빠는 그 작은 새의 죽음이,

그 말로 설명하기 힘든 상황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어.

괜한 불안감도 함께 말이지.



"나 왔어~ ... 도희는?"


"응? 방금 전에 갔는데? 오다 못 봤어?"


"하아.. 이 기집애는 오빠나 보고 가지..."


"헤헤.. 친구 만나기로 했다나 봐.

저 나이 땐 친구가 최고잖아."


"아무리 그래도..."


"어? 아저씨! 담배 냄새난다! 나쁜 아빠다!"


"아.. 아니야.. 안 폈어..."



그렇게 상황을 전환하는 엄마 덕에

아빠의 서운함도 자연스럽게 묻혀버렸었지..



/띵동/



늦은 저녁 시간. 도윤이도 잠들고

엄마랑 TV 보면서 대화를 하고 있는데

아빠 핸드폰에 메시지 알림이 뜬 거야.



[야! 작년에 빌려간 돈 50 지금 주면 안 되냐?]



메시지를 본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게?

놀랍게도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심장 두근거림도 없었고 말야.


문제는...


전원이 끊어진 기계처럼,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생각을 못 하고 있었던 거라는 거지...


엄마에겐 편의점 간다 하고 병실을 나왔어.

산부인과 건물을 나오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



"여보세요? 경훈아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어. 야~ 미안하다. 너 힘든 거 아는데

지금 내가 상황이 좀 그래."


"아.. 나 와이프 출산했는데.. 돈이 모자..."


"아니.. 야..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

네가 3개월만 쓰기로 해서 빌려준 거잖아?

지금 1년도 넘었는데...

내가 너한테 갚으라고 한마디를 했냐?

화를 냈냐?"


"그건 고마운데..."


"아 안 돼. 진짜 나 급하단 말이야.

50 당장 보내줘."



당연히 미안했지. 면목없고.

원래 갚기로 한 날보다 훨씬 지났음에도

한 번도 독촉이나

하다못해 화를 낸 적도 없는 친구였거든.


그런데 말야..


사람이 궁지로 몰리니까

고마움이고 뭐고 그냥 이기적으로

변해버리더라고..



"야 그럼 우리 와이프는?

내가 지금 괜히 그래? 병원비 해야 된다고."


"너 되게 웃긴다? 야! 그거 원래 내 돈이야."


"씨X 누가 니 돈 아니래? 준다고!"


"개XX야 언제? 네가 준다 해놓고 안 준 게

벌써 1년이 지나간다, 언제?

나 죽은 다음에 부조로 할 거냐?"



친구의 화난 목소리에

잠시 말이없던 아빠.


아빠는 말야.

그때 돈과 자존심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했던것 같아.



"아니 누가 안준대냐고.

여태 가만있다가 갑자기 왜이러냐?"


"어디 50만 원도 없는 거지 새끼

그래도 친구라고 기다려줬더니만

이딴 식으로 보답해? 넌 새끼야 친구도 아냐!"


"거지 새끼? 너 말 다했냐?"


"말 다했다!

야! 주지 마, 안 받아. 고소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준다 씨X! 잘 처먹고 잘 살아라, 50 갖고!"



결국 자존심이 이겨버렸지만 말이지.



'오십.. 만.. 원...'



ATM기 앞에 선 아빠.

그 50만 원이라는 숫자를 누르는데

어찌나 많은 시간이 걸리던지..



'하아.. 한 번만 더 빌어볼걸...

딱.. 한 번만 더 사정해볼걸...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해볼걸...'



이체까지 마치고

아빠는 ATM기를 등에 대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어.


돈도, 친구도, 가족도.

그 어떤 것도 결국 지키지 못한 나를

원망하면서 말이지...


'하아...'



한숨을 길게 한번 내뿜고는

억지로 일어나 편의점 밖 의자로 향했지.


담배를 꺼내물고 몇 번이나 연기를 내뿜었지만,

가슴속 답답함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더라.

그렇게 몇 개를 피웠는지

기억도 잘 안 네..



"와.. 아저씨.. 너구리 잡다 왔어? 냄새가.."


"응? 아니야~ 맥주 좀 사 오느라고."


"헉.. 당신 이거 걸리면 큰일 나!

...

내 거는...? 없네..?"


"당신은 마시면 안 되지.."


"... 벨 좀 눌러봐.. 술 사 왔다고 자수하게..."



그렇게 그날.

갓 출산한 엄마 옆에서 몇 캔이나 마셨는지.

간호사 선생님이 아니라 경찰을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엄마를 말리면서도

맥주캔은 계속 쌓여가고 있었단다.



"이 새낀 도윤이 때도 그러더니

또 쳐자빠져 자고 있어!"


병실이 떠나갈 듯한 호통 소리에 눈을 떠보니

그곳엔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서 계셨어.



"내가 오빠 혼날 줄 알았다..

헐? 술까지 먹은 거야? 헐? 언니 옆에서?

대박... 아빠 오빠 혼내줘.

임산부 옆에서 뭘 한 거야?"


"너 술도 마셨냐?"


"밖.. 끅.. 밖에서.. 먹고 들어온 거예요.."



할아버지 옆에 꼭 붙어서 조잘대는 도희.

얼굴까지 뻘개져서 화를 내고 계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때마침 너를 카트에 태워 들어오는

간호사 선생님이었어.



"어이구~ 우리 공주님 오셨어?"



언제 화냈냐는 듯이 환하게 웃으시던 할아버지.



'후아.. 다행이다..'


"너 운 되게 좋다?

이거 네가 짜놓은 거지?

어떻게 한 거야? 응? 어떻게 한 건데?"


"너가 아니고 오빠다.."


"그러니까 오빠가...@#$@#$"


'악! 시끄러...'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사실 말야. 아빠는 기대하고 있었는지 몰라.



'혹시.. 도윤이 때처럼 돈 주시지 않을까?'



하지만 할아버지의 행동에서

그런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



'농사 요즘 어렵다고 하셨었는데..'

'그래도 손주 태어났는데 주시지 않을까..?'

'혹시 주려고 했다가 까먹으신 건..?'

'아냐, 도윤이는 주고 도아는 안 주고 하면 불공평하잖아..'

'돈은.. 있으신가...?'



수많은 생각에 정신이 없을 때쯤,

할아버지가 슬슬 나갈 준비를 하시더라고.



"잘들 있어. 도리 이놈 새끼

또 퍼질러 자면 전화해라.

아빠가 바로 올 테니까."


"헤헤.. 네.."


순간 생각했지. 나가면 끝이다.

진짜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아빠..."



병실 문을 열려고 하는 할아버지의 팔을

살짝 잡은 아빠..


평소에 애교라고는 전혀 없던

아빠의 행동에 할아버지는 눈이 떵그래져서

학을 떼듯 말씀하셨지.



"이.. 이놈 새끼가 갑자기 쥐약을 먹었나?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아빠...."


"왜 이놈 새끼야.

말로 해,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간절함과 절실함에 부르긴 불렀건만,

다음 얘기가 목젖까지 올라왔음에도

더 이상 위로 올라오지 않는 거야.



'하아..'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드는데,

문득 스친 도아 네 모습. 그리고 너를 안고 있는

초췌한 엄마의 모습이 보이더라.



"아빠.. 저 병원비 좀 보태주세요..."


"..."



화낼 줄 알았어. 때릴 줄 알았지.

잠시 동안 말이 없던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은 봉투를 꺼내 내밀었어.



"옛다.. 나이 먹으니까 자꾸 깜빡깜빡하네.

이거 도아 거니까 도아 병원비 해.

너 술 사 쳐먹지 말고.

알았어, 몰랐어 이놈 새끼야."


"알았.. 어요.."



그렇게 할아버지는 돈봉투를 붙잡고

그대로 굳어버린 아빠를 두고

병실 문을 열고 걸음을 옮기고 계셨어.



"울지마 이놈 새끼야.

두 아이 아빠는 울 시간도 없는 거여."



그 한마디 남기고 말이지..



오늘도 말이 많았지?

도아야 물좀..


아.. 밖이 시끄러운 거 보니 너네 고모 왔나 보다.

한번 나가볼래?



"오빠~ 나 왔어.

와 요즘 밖에 엄청 덥대?

오는데 수박이 나 좀 잡솨봐~ 더위가 한순..

어? 도희야아~ 왜 이렇게 예뻐졌어?

너무 고모 젊었을 때 닮아가는 거 아냐?"


"고모오~ 얼마 만이야! 미쳤어 미쳤어,

고모는 왜 갈수록 이뻐져? 누가 이 나이로 봐?"



하아.. 도윤아... 너무 시끄럽다..

얘네 둘 좀 데리고 나가줄래..?



"왜요?"


너무 시끄러...


"내가 시끄러? 오빠 수박 갈아다 줄까?

전에 사다 놓은 핸드믹서기 어디다 뒀지?"



..됐어 .. 물이나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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