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

by도리


"미진아! 손수건! 휴지는 어딨어?"


"도씨 아저씨! 기저귀도 넣어야 돼"



안 그래도 바쁜 출근 시간.

너희들이 어린이집을 가게 되면서

더 정신이 없어졌지.



"니들 때문에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나야 되잖아.."



원래 집을 나서던 시간보다

20분 정도 빨라지긴 했다만


너희들 아침밥도 먹이고

옷도 입히고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전보다 한 시간 이상 일찍 일어나야 했지.



"아빠 오늘 촉감 놀이 한댔어요."


"좋겠네... 도아는 어린이집 갈 만해?"


"마?"


"..."



출근길에 너희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기로 한 아빠는


어깨에 가방 두 개를 들쳐 멘 상태로

도아를 안고 한 손엔 도윤이를 잡고

쉬지 않고 떠드는 도윤이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며 어린이집으로 향했지.



"도윤아~ 도아야~ 왔어?"


"매번 죄송합니다.. 8시 등원인데.."



8시부터 등원인 어린이집에

7시 30분에 너희들을 데려다 놓는 게

항상 미안했던 아빠.


죄송함과 감사함을 담아 뭐라도

사드리고 싶은데... 어린이집 보낼 돈도

빠듯한 아빠 형편에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



"아니에요. 아버님~ 도아 도윤이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도아야 도윤아 아빠 인사~"


"다녀오겠습니다~"


"므마므마마마다~"



인사를 마치고 어린이집 안으로

도도도 뛰어가는 너희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선생님께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어린이집을 빠져나왔어.


어린이집 옆 주택가 골목.


인적이 없을 것 같은,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담배를 꺼내 물었지.



"후우..."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아빠가 들어온

골목 끝쪽으로 시선을 돌렸어.

혹여나.. 누군가 볼까 봐.


중고등학생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게

아빠 스스로도 웃겼지만


만약 안 좋은 소문이 돌거나.

너희들한테 피해라도 갈까 봐

최대한 숨어들었던 것 같아.



"니들도.. 참 고생한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전쟁 같은 아침을 치른 엄마와 아빠.


그리고 갑자기 바뀐 환경과 생활 패턴에

혼란스러웠을 텐데도 잘 따라주는

너희들까지.


아침에 해맑은 얼굴로 재잘거리던 도윤이와

어디 나들이라도 가는 것처럼

설레는 듯한 얼굴로 아빠 품에 안겨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도아 얼굴이

갑자기 떠오르더라고.


도윤이는 그땐 참 말이 많았는데..

아빠가 잘 안 들어줘서 말이 줄어든 건가?

아빠가 좀 더 네 말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때 많이 서운했겠다. 그치?


너희들의 등원이 시작되면서

전에는 아슬아슬하거나 살짝 늦는 등

불안정했던 아빠의 출근 시간도

안정적이게 됐지.



"야.. 너 요즘 어디 아프거나 그런 거 아니지?

식욕은 어때? 똥은 잘 싸?

너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변하면 죽어.."



출근 도장을 찍는 아빠를 토끼눈을 뜨고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정현이었어.



"나 죽어?"


"아니 죽는다는 게 아니라.. 아니 ..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적응 안 되게..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시계를 쳐다보더니 한층 눈이 더 커지는

정현이었지.



"세상에.. 8시 40분도 안 됐어. 안 되겠다

반차 쓰자. 나도 쓸게 같이 병원 가자."


"너 내 핑계로 너 쉬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 티 나..?"



뭔가 실패했다는 듯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정현이.



"근데.."


"아 깜짝이야! 차장님 놀랐잖아요.."



언제 왔는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민차장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아빠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 민차장이었어.



"너 최근 안색이 안 좋아진 거 같긴 한데..."



아빠의 얼굴을 여기저기 훑어보더니

걱정스런 말투로 묻는 민차장.


괜히 얼굴을 한번 여기저기 손으로

문지르고는 웃으며 대답하는 아빠였지.



"하아~ 애들 어린이집 보내는 게 힘드네요.

아침 일찍부터 전쟁도 그런 전쟁이.."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정현이 말대로

병원은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안색이 안 좋아 정말로.

얼굴색도 좀 까매진 것 같기도 하고.."


"헤헤~ 탄 거예요.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 민차장.



'하아.. 내가 병원 갈 돈이 어딨냐.. 그 돈이면

고기를 한 번 더 먹이겠다..'


'그리고 어디가 아파야 병원을 가지..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구만.. 며칠 쉬게..'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는데



"도리야!"


"어우씨 깜짝이야.. 오늘 다들 왜 이래요.."


"뭘 그렇게 놀라냐? 죄진 거 있냐?"



뒤에서 등을 훅 밀며 아빠를 부르던

팀장님. 무슨 신나는 일이라도 있다는 듯이

입이 귀에 걸릴 듯 히죽히죽 웃으며

아빠를 쳐다보는 팀장님이었지.



"... 물어봐야 되는 거죠..?"


"뭐를?"


"지금 팀장님 되게 뭔가 말씀하시고

싶어 하시는 표정인데.."


"으하하하. 새끼야 눈치챘으면 물어봐 봐

빨리 인마"


"그럴게요..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주위를 한번 두리번두리번거리시던 팀장님.

아빠의 팔을 한번 살짝 툭 치더니



"담배 하나 피우자?"



흡연실로 발길을 돌리시더라고.

또 무슨 일이길래 저 난리일까 생각하면서

뒤를 따르는데 발걸음을 뚝 멈추시는 거야.



"왜.. 왜요?"



잠시 고민하던 팀장님.

아빠를 슥 쳐다보더니.



"옥상으로."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기시는 팀장님이었지.



"무슨.. 긴히 하실 말씀이라도.."



아빠의 질문에 팀장님은 양복 마이 안쪽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봉투를 하나 꺼내

아빠에게 내밀었어.



"이.. 이게.."



딱 봐도 두툼해 보이는 봉투. 이게 대체 뭐지란

생각과 이걸 받아도 되나 라는 생각에

봉투를 받아 들기는커녕

손을 내밀지도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지.



"애들 옷이나 사줘"


"이거.. 딱 봐도 많은데요."


"남으면 고기도 좀 사주고. 장난감을

사주든가, 저축을 하든가..

야 인마 내가 돈 쓰는 법도 알려줘야 하냐?"



팀장님의 강압 아닌 강압에 결국 봉투를

집어 들었지.



"으하하하. 오늘 저녁에 뭐하냐?"


"애들.. 하원시킵니다."


"애들? 벌써 유치원 다녀?"


"어린이집이요."


"와이프는 뭐 하고?"


"일 갔습니다."


"아니 퇴근하고 데려가면 되잖아."


"오후 근무라서요."


"아~ 교대 근무? 와이프가 뭐 하는데?

공장 다니냐?"


"... 간호사요."



눈을 반쯤 감은 상태로 아빠를 말없이

쳐다보던 팀장님.



"너 나랑 술 먹기 싫지? 뻥치지 마 인마

네가 무슨 간호사가 니 와이프야."


"진짠데요..."


"왜?"


"그러게 말입니다..."



내 형편을 잘 아는 팀장님은 전문직 종사자가

나랑 결혼을 한 걸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하실 말씀이라는 게.."



담배를 한번 깊게 빨아들인 팀장님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오히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어.



"그냥? 조용한 데서 너랑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어서."


"아닌 거 다 아는데요.."


"사실 말이다. 내가 준비하는 게 있거든?

니 도움이 필요한데 말이지..."



결국 또 일 시키려고 이러는 거구나 싶어

답답함과 올라오는 짜증에 아빠도 모르게

새어나온 한숨.



"이 새끼가 이제 이야기도 안 들어보고

한숨을 쉬네?"


"팀장님.. 태권브이 프로젝트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세요.."


"태권브이 프로젝트? 아~ 그거 두어 달 전에

마무리된 거? 그거 기간 참 오래 걸렸지."


"그러니까요.. 지금 그거 유지보수하는 것도

힘든데.."


"인마 그건 회사 거잖아. 나 지금 내 일

부탁을 하는 거야."



순간 머리를 망치로 확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어. 아빠 손에 들려진 봉투를

한번 내려다보고는 떨리는 손으로

팀장님께 내밀었지.



"... 뭐냐?"


"이 돈.. 제가 받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그게..."



아빠와 돈봉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팀장님.



"참나~ 야 이건 그냥 너 고생한다고

주는 거야. 내가 뇌물 먹일 놈으로 보이냐?"


"그래도.."


"그건 그냥 넣어두고. 야 인마

거기에 얼마가 들어 있을 줄 알고 다시 주냐?"



그 한마디에. 웃기게도 아빠 손은

아빠도 모르게 다시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어.



"그런데.. 회사 다니면서 다른 거 해도 되나요?"


"뭔 상관이야? 회사에 피해도 없고,

완전 다른 일인데? 그리고 업무 시간에 일해.

회사 일 하라고. 저녁에 집에서 하면 되잖아."


"아.. 집에서요.."



결국 일을 집에까지 들고 가라는 말이잖니.

집에 가면 너희들 씻기고, 밥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빠듯한데

일까지 병행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을 하는

아빠였지.



"문제 있냐?"


"문제는 없는데 애들 때문에 그러죠.."


"급한 거 아니야.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하면 돼. 야 나도 몇 년 보고 있다."


"그렇다면 뭐.."



살짝 다운된 목소리로 아빠를 설득하던

팀장님은 아빠의 반 긍정적인 반응에

다시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어.



"으하하하~ 그래. 잘해보자. 이 새끼 이거

맘에 든다니까."


"가.. 감사.."



어느 부분에서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일단 칭찬 같아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아빠였어.



"하나 더 피우게? 나 내려간다? 일 얘기는

조만간 술 한잔하면서 자세히 해보자.

그리고 그 돈 그냥 용돈이니까 부담 갖지 마."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자 옥상 문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건네던 팀장님.



"네.."


"그리고 이 돈을 왜 주는지, 무슨 돈인지

계속 받으려면 알려고 하지 마라.

으캬캬캬 피우고 와."



그렇게 옥상 출입문으로 사라지는

팀장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2분 정도 지났을까? 봉투를 열어봤지..



'하나, 둘, 셋, 넷... 히엑! 이게 얼마야?'



봉투에 담긴 돈은 오십만 원이었어.

갑자기 큰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까지 나는 게

뭔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아~ 모르겠다. 내가 지금 고민할 처지냐..'



결국 돈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사무실로 향하는 아빠였어.



/띵동/


"네~ 아버님."


"도윤이 도아요."


"네 도윤이 도아 준비시킬게요. 잠시만요."



어린이집 문 앞에 있는 벨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만한 가방을 멘

도윤이와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 도아.

그리고 도아 가방을 아빠에게 웃으며

건네는 선생님이었지.



"죄송해요. 아침 일찍 맡기는 것도 죄송한데

늦게까지.."


"아유 아니에요 아버님. 7시 넘어서까지

아이들 데리고 있을 수 있어요. 도아 도윤이가

말도 잘 듣고 너무 예뻐서 하나도 안 힘들어요."



미안한 마음에 선생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어 도윤이에게 시선을 돌린

아빠.


아빠와 눈이 마주치자 또 뭐가 신나는지

재잘재잘 시동을 거는 도윤이었어.



"아빠! 친구들 다 가서 선생님하고

블록 쌓기 하고 놀았어요."


'아 .. 둘만..'



아빠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와 너희들을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던 선생님이었지.



"도윤아! 동생 먼저 씻길 거니까

티비 보고 있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어 던지고

가스레인지에 아침에 먹다 남은 계란국을

데우기 위해 불을 켰지.


너희들 씻긴 뒤 바로 밥을 먹이려는..

시간을 아끼기 위한 나름 아빠의 전략이랄까?



"눈 감아야지? 야.. 왜 자꾸 입을 벌리냐.."



물줄기가 얼굴에만 닿으면 입을 벌리는

도아.. 입에 고인 물을 어푸어푸하면서

뱉어내는가 하면 그러다 코로 들어간 물에

기겁을 하며 기침과 함께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씻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



"아빠!"


"도윤이 왜? 티비 보라니까?"


"아빠! 이상한 냄새 나요!"


"무슨.. 아! 가스! 도아야 여기 가만있어!"



부리나케 뛰어나가 가스를 확인했더니

도아랑 너무 오래 실랑이를 해서였을까?

졸아들다 못해 냄비가 타버린 상태였지.



'하아..'



타버린 냄비를 일단 싱크대에 넣고 물을

받는데



"으아아앙!"



화장실 쪽에서 도아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거야.



"야! 아빠가 가만있으랬잖아.

도윤이 넌 뭐 했어!"



내가 화장실을 나가자 따라 나오려 했던 건지

화장실 문턱 앞에 고여 있는 물기에 미끄러져

넘어진 듯 그 앞에서 목 놓아 울고 있는

도아였어.



"나오면 안 된다고 했는데.."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잡고 있었어야지!"


"...안 그럴게요"


"아휴.."



도아를 안아 이리저리 살펴보고, 도닥이고

겨우 달랜 후 다시 씻겨서 다른 데 신경 못 쓰게

핸드폰을 쥐어준 뒤 도윤이를 데리고

욕실로 향했어.



"자. 타임어택이다 3분 안에 씻자!"



손에 바스를 비벼 머리, 얼굴, 온몸을

한 번에 위아래로 슥슥 문지르면서

비누칠을 하고 샤워기로 물을 뿌리면서

헹구는데


평소 같으면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

친구랑 놀았던 이야기들로 쉴 새 없이

떠들던 도윤이었음에도 그날따라 한마디도

하지 않더라고.



"도아 때문에 속상해?"


"네"


"왜?"


"도아가 말 안 들어요. 아까 내가

나오면 안 된다고 했는데.."



아까 도아가 넘어졌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어.



"붙잡았어야 했지요?"



내가 홧김에 했던 말도 함께 말이지..



"아빠가 앞으로 더 신경 쓸게.."



앞으로 더.. 그 말밖에 해줄 말이 없더라.

그래.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있을 거고

충분히 그날의 미안함은 덮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빠는

앞으로 더 신경 쓴다는 말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야 맞았던 것 같아.


흙탕물에 맑은 물을 붓는다고 시간이 흘러

맑은 물이 되는 게 아니라

희석될 뿐이라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계란국이 다 타버리는 바람에 결국

밥에 계란후라이를 비벼 계란밥을 만들어서

김에 싸 너희들 입에 넣어주는데


별거 아닌 그 음식도 어찌나 맛있게도

잘 먹던지. 너희들이 그렇게 잘 먹어서

계란비빔밥을 자주 해줬던 거란다.


아빠가 바빠서 급하게 하느라 자주 했던 게

아니고.. 알지..?



"벌써 자요?"


"키 커야지!"


"아빠랑 저거 갖고 놀고 싶어요."


"내일 하면 되지~ 지금은 자야 돼.

자는 시간이야."



씻기고, 밥 먹이고, 양치시키고, 정리하고.

한 것도 별로 없는데 벌써 8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지.


장난감을 손으로 가리키며

자기 싫어하는 듯한 도윤이를 겨우 달래서

자리에 눕히고


누우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은지

온갖 떼를 쓰는 도아도 겨우 눕힌 채

불을 끄고 너희들 가운데로 파고들었어.



"노래 불러주세요"


"...."


"아빠?"


"코..."


"..."



이미 혼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라. 자장가를

불러달라는 도윤이의 말에 가짜로 코를 골며

자는 척을 하는 아빠였어.



"어? 당신 애들이랑 자고 있었네?

무슨 냄새야? 음식 태웠어?"



자는 척만 하려고 했는데 결국

잠이 들어버렸던 걸까? 엄마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아빠였지.



"왔어? 아.. 아까 도아 씻기느라 정신없어서.."


"이그~ 고생했네~ 밥 남았어? 배고파..

라면 있나? 아저씨도 애들 때문에

밥 못 먹었지?"



주방으로 가더니 밥통을 열어보며

말을 건네는 엄마.



"병원에서 밥 안 줘?"


"신환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네 오늘?"


"신환?"


"헤헤~ 신규 환자~"


"아.."


"에이.. 밥도 없고.. 라면도 떨어졌네.."



주방을 뒤적거리는 엄마를 보는데

문득 오늘 팀장님께 받은 돈봉투가

생각나는 거야.



"우리 치킨에 맥주 한잔할까?"


"오! 조으다 맥주! 근데.. 나 아직 월급 전이라..

돈이가 없다요.."


"나 있어! 이거 봐~"



엄마에게 자랑스레 내민 돈봉투.

신나게 받아 들어 돈을 세던 엄마의 눈빛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어.



"이.. 이거 무슨 돈이야..?"


"몰라? 알려고 하지도 말고 묻지도 말라던데?"


"버.. 범죄 자금.. 뭐 그런.."


"그럴 리가 있냐~ 팀장님이 용돈이라고

주셨어."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피던 엄마.



"그럼 난 양념 반 후라이드 반 무 많이!"


"알았어~ 내가 시켜놓을게 얼른 씻고 와"



행복이란 게 별거 있겠니.. 고된 하루를 마치고

그렇게 치킨 한 마리에 맥주 한잔 나누는 거.


그날 하루 힘들었던 게 아직 치킨은 주문도

안 했는데 이미 날아가버리는 느낌이었지.



"도씨 아저씨! 나 맥주 1,000!"



엄마도 아빠랑 생각이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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