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 중인 요리사
피검사 날, 아들을 위해 차린 토요일 아침
오늘 아침, 나는 내가 먹을 수 없는 요리를 했다.
맑은 토요일이었다. 하늘은 더없이 멀쩡했지만 내 배 속 사정은 달랐다. 어젯밤 아홉 시부터 금식 중이었다. 아내와 함께 피검사를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잠들었는데도, 아침이 되니 배는 약속이라도 한 듯 제시간에 신호를 보내왔다.
문제는 우리 집에 토요일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달부터 아들은 토요일마다 코딩 수업에 간다. 개천절 아침, 여덟 명을 뽑는 수업의 선발을 보러 갔던 아이가 이제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선다. 그날 나는 아이가 시험을 보는 동안 결과를 기다리며 글을 썼다. 떨어져도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말해 가장 결과가 궁금했던 사람은 아빠인 나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일이 어느새 우리 집 토요일 시간표가 됐다.
아들이 수업에 가려면 아침을 먹어야 했다. 부모가 금식한다고 아이까지 굶길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 우리 집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들뿐이었다. 요리사는 굶고 손님은 먹는, 규모는 작지만 운영 방식이 독특한 식당이 문을 열었다.
오늘의 메뉴는 삶은 계란, 소고기와 방울토마토, 가지, 양파, 청경채, 마늘을 함께 볶은 요리, 그리고 빵이었다. 식탁 한쪽에는 발효콩환과 메가도스도 놓았다.
청경채는 이달 들어 우리 집 아침 식탁에 처음 등장했다. 새로운 재료가 들어오면 식탁도 조금 달라진다. 다만 오늘은 그 변화를 맛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주방에 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절차 하나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식.
마늘과 양파를 넣고 소고기를 볶았다. 방울토마토와 가지, 청경채까지 더해 접시에 담았다. 먹는 사람이라면 얼른 한입 맛보고 싶을 만한 음식이 눈앞에 완성됐다. 나는 그릇을 옮기면서도 먹지 않았다. 아니, 먹을 수 없었다.
평소에는 아침을 차리면 아들과 함께 숟가락을 들었다. 오늘은 아들이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빈속으로 음식을 만드는 일도 처음이었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앞에 두고 구경만 하는 일도 제법 낯설었다.
간은 기억으로 맞췄다. 지금까지 먹어 온 아내의 볶음 요리를 떠올리며 이쯤이면 되겠다고 판단했다. 요리 경력은 늘지 않았는데 조리 방식만큼은 갑자기 고급스러워졌다. 감으로 간을 보는 요리사라니. 단, 이 식당은 손님에게 맛을 평가받기 전까지 사장 본인이 시식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아들은 아침을 먹고 코딩 수업에 갈 준비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부부가 정한 ‘아들 180센티미터 프로젝트’는 이런 날에도 쉬지 않는구나.
키를 키우려면 잘 먹고 잘 자고 꾸준히 움직여야 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 대신 자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자랄 수 있는 생활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을 챙기고, 잠드는 시간을 살핀다. 다만 계획표대로 움직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우리 집에는 함께 보는 드라마가 있다.
어젯밤 가족이 모여 일본 드라마 《닥터 X》를 봤다. 셋이 같은 화면을 바라보는 저녁은 반가웠다. 아들도 이제 우리와 함께 드라마를 즐길 만큼 자랐다. 그런데 재미있는 드라마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다음 장면이 궁금하다고 해서 아이의 수면 시간이 연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이 되자 아들은 일어날 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닥터 X는 재방송으로 보자.”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우리 집에는 키를 180센티미터까지 키우겠다는 장기 프로젝트가 있고, 그 프로젝트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일찍 재우기다. 그런데 어젯밤 드라마가 업무 시간을 조금 침범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재방송을 선택했다. 본방송은 놓쳐도 다시 볼 수 있지만, 아이가 자야 할 시간은 다시 편성할 수 없다. 우리 집 편성표에서 닥터 X는 재방송으로 밀렸고, 180센티미터 프로젝트는 정상 운영에 들어갔다.
다만 아빠가 금식 중에도 아침을 차리는 바람에, 프로젝트 담당자의 배에서는 항의가 계속됐다. 담당자는 항의할 권리가 있었지만 시식할 권리는 없었다.
아들은 학교로 갔고, 아내와 나는 피검사를 받으러 가족보건의원으로 향했다. 아이는 코딩 수업에 가고 부모는 병원에 가는 토요일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도 각자 해야 할 일이 달랐다.
병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평일에는 출근길 전철에서 글을 쓰곤 하는데, 오늘은 병원 의자가 작업실이 됐다. 전철에서는 흔들림을 견뎌야 하고 병원에서는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글 쓰는 장소가 달라졌을 뿐, 기다리는 일은 비슷했다.
어젯밤에는 화면 속 의사들을 봤고, 오늘은 진짜 병원에 와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환자가 들어오면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지만 현실의 병원에서는 번호표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좀처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사람이 너무 많아 근처 제일내과의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작업실 이전이었다. 글은 중간에 끊겼지만 금식은 어디까지나 계속됐다. 병원을 옮긴다고 배고픔까지 다른 병원으로 전원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새 병원에서 아내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화장실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 혼자 보내기보다 밖에서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를 따라갔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건 아니었다. 밖에서 기다렸다. 내가 할 일은 그게 전부였다. 경호원이라고 부르기에는 업무 범위가 좁고, 보초라고 부르기에는 장비가 부족했다. 남편이라는 직함으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잠시 뒤 아내가 나오더니 나를 보고 웃었다.
“우와, 우리 서방이 웬일이래.”
나도 웃었다. 몇 걸음 같이 걸어오고 문 앞에 서 있었을 뿐인데 반응이 꽤 컸다. 칭찬인지 놀림인지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려웠지만, 둘 다 들어 있는 말 같았다.
‘웬일이래’라는 말은 평소에 잘하지 않던 일을 했을 때 듣는 말이다. 그 사실이 조금 찔리기는 했다. 원래 이런 남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과거 실적이 필요한데, 아내 앞에 제출할 자료가 충분한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아내가 웃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그 작은 행동을 반겨 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볶음 요리를 맛보지 못했지만, 아내의 웃음은 제대로 확인했다.
생각해 보면 부부가 함께 살면서 하는 일 가운데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지나가는 일이 많다.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 누가 잠깐 기다려 줬는지, 누가 상대의 불편을 알아차렸는지. 대부분은 아주 작아서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쉽다.
오늘은 그 작은 일이 내게 돌아왔다. 아내가 웃으며 건넨 한마디가 기억에 남았다. 그러니 다음에도 먼저 따라가 기다려 봐야겠다. ‘웬일이래’라는 말을 듣지 않는 날이 오면, 그때는 제법 일상적인 남편이 된 셈일 것이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침 식탁을 떠올렸다. 아들을 위해 차린 소고기 볶음과 삶은 계란, 빵. 빈속으로 서 있던 주방. 닥터 X를 재방송으로 미루자는 아내의 말. 그리고 화장실 앞에서 들은 서방이라는 호칭까지.
오늘 아침은 유난히 할 일이 많았다. 요리사는 시식하지 못했고, 드라마는 재방송으로 밀렸고, 병원은 한 번 옮겼다. 그 와중에 나는 아내의 웃음 하나를 얻었다.
피검사 결과는 아직 모른다. 숫자가 어떻게 나올지는 며칠 뒤에야 알 수 있다. 아들의 키는 다음에 재면 조금 더 자라 있을지 모른다. 우리 부부의 180센티미터 프로젝트도 계속될 것이다. 일찍 재우고, 아침을 챙기고, 가능한 만큼 건강을 돌보면서.
다음번에 아내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할까. 아마 오늘처럼 따라가 밖에서 기다릴 것이다. 그때도 아내가 “우리 서방이 웬일이래”라고 말한다면, 이번에는 이렇게 대답할 생각이다.
“오늘만 그런 거 아니야. 이제 실적 쌓는 중이야.”
물론 그 말을 하려면, 다음번에도 실제로 따라가야 한다.
오늘 아침 나는 아들을 위해 요리했지만 한입도 먹지 못했다. 대신 아내가 웃는 얼굴을 봤다. 금식 중인 요리사에게도 나름의 수확은 있었다. 다만 그 수확은 접시에 담을 수 없어서, 오늘은 글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