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집밥의 다정한 온기

빵이 될 뻔한 아침 | 짐 옮기는 날, 저녁은 내가 차리기로 했다

byWren

월요일 아침, 아내는 빵을 만들려다 계란찜을 만들었다. 나는 새벽 수영을 다녀왔고, 저녁에는 리조토를 만들기로 했다.

아침부터 요리 두 건이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하나는 빵에서 계란찜으로 진로를 변경했고, 다른 하나는 아직 냄비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 쉬는 날치고는 부엌이 지나치게 바빴다.


맑은 월요일이었다. 하루 더 쉬는 날이지만 새벽 수영은 다녀왔다. 회사는 쉬어도 수영장까지 쉴 이유는 없다. 물속에서 팔을 젓고 돌아오니 아내가 아들의 아침을 차려 놓았다.

식탁에는 토마토와 오이, 단감, 아보카도를 넣은 지중해식 샐러드가 있었다. 삶은 계란도 빠지지 않았다. 소고기와 방울토마토, 메가도스까지. 그리고 오늘의 신작, 바나나 계란찜.

원래는 빵을 만들려고 했단다. 계란과 바나나를 이용해 빵을 만들 계획이었는데, 결과물은 계란찜이었다. 빵이 되려던 재료들이 제작 회의 도중 반대 의견을 낸 모양이다. 최종 결재권자는 재료였고, 요리사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릇을 보며 조금 안심했다. 지난 두 번의 일요일, 샐러드를 만들고 주말 신메뉴 개발팀장 행세를 해 왔다. 단호박 샐러드에 이어 단감 고구마 샐러드까지 내놓았으니, 이제 제법 요리를 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원조 요리사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물론 차이가 있다. 아내는 계획이 틀어져도 먹을 것을 완성했고, 나는 계획이 틀어지면 메뉴 이름부터 바꿀 준비를 한다.

빵이 아니면 계란찜으로 먹으면 된다. 내 리조토가 실패하면 볶음밥이라고 부르면 된다. 이름을 바꾸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요리 초보에게는 꽤 경제적인 기술이다.

샐러드에 들어간 단감은 토요일 저녁 내가 사 온 것이다. 일요일에는 내가 고구마와 버무렸고, 월요일에는 아내가 다른 채소와 함께 담아냈다. 단감 한 개가 주말 내내 부부의 요리 수업을 받고 있었다. 토요일에는 장보기 실습, 일요일에는 칼질 실습, 월요일에는 접시 위 응용 실습. 단감은 말이 없지만, 이 정도면 학원비를 받아야 한다.

아들은 엄마가 차린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수영을 다녀왔고, 아내는 아침을 차렸다. 각자 맡은 일을 했으니 아침 인사 대신 출석부에 도장을 찍어도 될 것 같았다.


아침을 차린 아내가 말했다.

“오늘 여보 쉬는 날이니까 내 짐 좀 같이 옮기자.”

아내는 부탁을 아주 효율적으로 한다. 먼저 아침을 차리고, 그다음 남편을 배치한다. 반박할 틈이 없다. 게다가 ‘쉬는 날이니까’라는 말에는 이미 근거 자료가 첨부돼 있다. 평일에는 출근하느라 바쁘고, 오늘은 집에 있으니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내 휴일은 그 순간 인력 배치표에 올라갔다.

오늘의 직바카라은 이삿짐 운반 담당. 급여는 점심 한 끼, 복지는 아내와 동행. 근무 시간은 짐이 얼마나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노사 협의는 없었다. 노조도 나 혼자라 협상력이 약하다.

옮길 짐은 아내의 사무실 짐이다. 아내는 2024년 갑상선 수술을 받은 뒤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사무실에 나가지 않은 지도 꽤 됐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그만두었고, 결국 11월에 사무실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곳에 남은 짐을 집으로 옮겨야 한다.

아내의 출근길은 이제 방문 하나를 지나면 끝난다.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바카라상에 앉아 일하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한다. 출퇴근 거리는 짧아졌지만 업무 동선은 여전히 길다. 집 안에 사무실이 들어왔는데, 사무실 짐까지 들어오게 생겼다. 우리 집은 월세도 안 받으면서 사무실 확장 공사를 하는 셈이다.

사람은 회사를 떠나도 물건은 제때 퇴근하지 않는다. 오래 쓴 물건은 언젠가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버리려면 손이 멈춘다. 서랍 속에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과 버리기 아까운 것이 사이좋게 산다. 둘 다 자기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늘 우리는 그 물건들을 데리러 간다. 상자 안에 어떤 추억이 들어 있는지 미리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열기도 전에 의미를 붙이면 짐이 더 무거워질 것 같다. 일단은 짐은 짐이고, 나는 운반 담당이다.

다만 상자가 너무 많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편의 감성에는 한계가 없을지 몰라도 허리와 팔에는 한계가 있다. 저녁에 리조토를 저어야 하니 팔을 전부 소진해서는 안 된다. 이삿짐 운반과 리조토 조리는 같은 팔을 사용하는 업무다. 오늘은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


오늘 일정은 점심을 먹고 짐을 옮긴 다음, 병원에 가는 것이다. 그저께 함께 받은 피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다.

금식하던 토요일 아침에는 내가 아들의 볶음 요리를 만들었고, 아내는 병원 화장실 앞에서 기다려 준 나를 보고 “우와, 우리 서방이 웬일이래” 하고 웃었다. 오늘은 그 결과를 들으러 다시 함께 간다.

검사 결과는 아직 모른다. 그건 의사가 알려 줄 일이다. 오늘 내가 확실히 아는 건 아내의 짐을 같이 들어야 한다는 것과, 저녁에 아들 밥을 차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오늘의 할 일 목록은 검사 결과보다 분명하다.

쉬는 날인데 왜 이렇게 바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도 아침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평일에는 각자 다른 곳으로 출근하고, 오늘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점심을 같이 먹고, 짐을 같이 들고, 병원 대기실에서도 나란히 앉는다. 일정표만 보면 휴일이 아니라 부부 합동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이름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사무실 철수 및 건강 상태 확인’은 너무 딱딱하고, ‘여보와 함께하는 월요일’은 홍보 문구 같다. 일단 이름 없이 진행하기로 한다. 이름은 나중에 붙여도 된다. 아침의 빵도 그렇게 됐으니까.


그리고 저녁은 내가 맡기로 했다.

아들 메뉴는 리조토다. 냉장고에 찬밥이 있고, 채소와 고기, 토마토소스도 있다. 장을 새로 보지 않아도 한 끼를 만들 수 있다. 오늘의 요리 철학은 간단하다. 냉장고 문을 열고, 재료를 확인하고, 가능한 한 그 안에서 해결한다. 이름을 붙이자면 ‘가계 경제형 리조토’다.

찬밥은 남은 밥이 아니다. 리조토로 승진할 기회를 기다리는 밥이다. 토마토소스도 마찬가지다. 아침 식탁에서 소고기와 방울토마토가 활약했다면, 저녁에는 토마토소스가 주연을 맡는다. 우리 집 토마토 계열은 출연 기회가 많다. 이쯤 되면 전속 계약을 맺어야 할 것 같다.

월요일은 아들이 농구를 하는 날이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배가 고플 것이다. 게다가 게임도 일주일 정지 중이다. 오늘 저녁의 평가는 평소보다 엄격할 가능성이 있다. 게임을 못 하는 아이에게 아빠의 리조토마저 실망스럽다면, 집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하나 더 줄어든다.

나는 새벽마다 수영장에서 팔을 젓는다. 그러니 리조토도 잘 저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물속에서 팔을 젓는 것과 냄비 안의 밥을 젓는 건 다른 종목이다. 수영장에서는 물이 나를 받아 주지만, 냄비는 밥이 눌어붙어도 항의서를 제출하지 않는다. 그냥 바닥에 붙어 버린다.

그래도 도전은 해 볼 만하다. 아내가 매일 해 온 저녁 준비를 오늘만큼은 내가 맡으면 된다. 누가 더 많이 했는지 계산할 필요는 없다. 지난번처럼 점수판을 만들면 내가 불리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아예 경기 기록을 남기지 않기로 했다.

우리 부부의 저녁은 삶은 계란과 사과, 방울토마토, 서리태 두유로 간단히 끝낼 생각이다. 아들은 리조토, 우리는 가벼운 식사. 한 식탁에서 메뉴가 갈린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특히 한 사람은 농구를 하고 돌아오고, 다른 두 사람은 피검사 결과를 듣고 돌아오는 날이라면 더 그렇다.

사과는 토요일에 사 온 뒤 냉장고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단감과 아보카도는 먼저 식탁에 올랐고, 사과는 사과식초가 대신 출전한 날에도 벤치에 있었다. 드디어 오늘 저녁 선발 출장이다. 냉장고에도 대기 순번이 있다. 사과가 그동안 불만을 접수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아침의 계란찜을 떠올리면 저녁 요리에 대한 부담이 조금 줄어든다. 빵이 되지 않았다고 아침이 실패한 건 아니었다. 리조토가 조금 질어지면 볶음밥이라고 부르면 된다. 다만 아들이 “이거 리조토 맞아?”라고 물을 때를 대비해, 대답은 미리 준비해 두었다.

“아빠표 퓨전 요리야.”

세상에 없는 메뉴를 만들면 이름을 붙이기 쉽다. 문제는 가족이 그 설명을 믿어 주느냐다. 우리 집에는 별점 리뷰도 없고, 익명 평가도 없다. 식탁에 앉은 가족의 표정이 곧 점수다. 맛있냐고 물으면 대답이 돌아오겠지만, 내일도 얼굴을 봐야 하니 평가가 아주 솔직할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아내가 아침을 차렸고, 나는 저녁을 차린다. 그 사이에 함께 점심을 먹고, 사무실 짐을 옮기고, 검사 결과를 듣는다. 휴일의 일정표는 거의 꽉 찼지만, 적어도 저녁 당번은 정해졌다.

냄비 앞에 서면 토마토소스가 먼저 붉게 퍼지고, 찬밥과 채소와 고기가 뒤섞일 것이다. 그때까지는 리조토라고 부르겠다. 냄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직 모르니까.

오늘 저녁 메뉴는 두 가지 이름을 준비해 두었다. 리조토, 그리고 볶음밥.

아내의 사무실 짐은 내가 옮기고, 아들의 저녁은 내가 차린다. 휴일이 끝나 갈 무렵 내 팔이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새벽 수영으로 시작한 월요일, 마지막 운동 종목은 냄비 젓기다.

이번 종목에서만큼은 메달보다 아들의 빈 그릇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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