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집밥의 다정한 온기

야간 이적 | 아들이 잠든 사이,

byWren

어젯밤, 아들이 잠든 사이에 나는 작은 작전을 하나 수행했다.

작전명은 따로 없다. 굳이 붙이자면 '야간 이적'쯤 되겠다. 아들이 요즘 관심을 갖고 있던 게임이 있다. 그 게임을 내가 먼저 키워 두었다. 그리고 어젯밤, 아들이 잠든 사이에 그 계정을 아들 휴대전화로 옮겨 놓았다. 아빠가 키운 선수를 아들 팀으로 보내는 이적 시장. 이적료는 없다. 계약 조건은 하나다. 지금처럼만 지내 줄 것.

작전 시간은 아들이 잠든 뒤였다. 아들은 밤 9시 반이면 잠자리에 들고, 나는 보통 11시가 넘어야 잔다. 그 사이 두 시간 남짓이 우리 집 아빠의 야간 근무 시간이다. 어젯밤은 그 시간을 아들의 휴대전화에 썼다. 잠든 아이 머리맡에 선물을 두는 건 원래 산타의 일인데, 우리 집에서는 12월이 오기 전에 아빠가 먼저 출동했다. 아들이 깨어 있었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작전이다.


금요일 아침은 새벽 수영이 있는 날이다. 흐린 하늘 아래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들을 깨웠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아내를 도와 수저를 놓았다.

오늘 아침 내 동작은 평소와 같았다. 수저를 놓는 순서도, 식탁을 둘러보는 눈길도. 다른 게 하나 있다면 기다림이었다. 수저를 놓는 손이 평소보다 조금 들떠 있었다. 수저를 다 놓고 나서 아들이 방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매일 하는 기다림인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아침에 굴뚝 근처를 서성이면 이런 기분일까. 선물은 이미 머리맡에 두었고, 받는 사람은 아직 그걸 모른다. 아는 사람은 이 집에서 나 하나뿐이다. 선물을 여는 순간은 내가 고를 수 없다. 언제 휴대전화를 열어 볼지, 열어 보고 무슨 표정을 지을지는 전적으로 받는 사람의 몫이다. 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식탁에는 아내가 차린 아침이 놓였다.

치즈를 올려 오븐에 구운 빵. 오븐을 거쳐 나온 치즈가 빵 위를 넉넉하게 덮고 있었다. 소고기 위에는 겨자씨가 알알이 박힌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얹혔다. 그 옆에는 토마토와 오이와 귤을 넣은 지중해식 샐러드, 그 위에 삶은 계란. 그리고 비타민 한 포와 발효콩환.

겨자씨 머스터드를 얹은 소고기를 보니 10월 첫날 아침이 떠올랐다. 그날도 소고기 위에 겨자씨 알갱이가 그대로 보이는 머스터드가 얹혀 있었다. 보름 만에 같은 얼굴이 다시 식탁에 앉았다.

귤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샐러드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달 초에는 접시 한쪽에 따로 앉아 있던 귤이, 이제는 토마토와 오이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이틀 연속이면 이제 우연이 아니라 자리다. 귤은 우리 집 샐러드의 정식 멤버가 됐다. 삶은 계란도 오늘은 따로 그릇을 차지하는 대신 샐러드 위로 올라앉았다.

치즈를 올려 구운 빵은 지난주 수요일 아침에도 식탁에 올랐다. 그날은 아들이 학교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날이었다. 아들은 그날 토스트를 보며 맛있겠다고 했다. 오늘 아들 앞에 놓인 건 빵만이 아니었다. 아들의 휴대전화 안에는 아빠가 밤사이 옮겨 놓은 또 하나의 아침이 들어 있었다.


드디어 아들이 거실로 나왔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더니 눈이 커다래졌다. 그리고 나를 바라봤다. 범인을 찾는 눈빛이었다. 이 집에서 밤사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은 하나뿐이다.

"아빠, 진짜 대박!"

그 한마디로 어젯밤 아빠의 야간 근무 수당이 지급됐다. 아들은 다가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볼에 뽀뽀를 하나 남겼다. 선물은 내가 줬는데, 받은 게 더 많은 아침이었다. 산타는 원래 선물을 두고 사라지는 사람인데, 우리 집 산타는 현장에 남아 있다가 포옹까지 받았다. 산타 업계에서는 반칙일지 몰라도 아빠 업계에서는 정당한 보상이다.


아들에게 계정을 넘겨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믿기 때문이다.

아들은 운동을 열심히 한다. 월요일과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농구를 하고, 화요일과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복싱을 한다. 오늘은 금요일, 농구를 하는 날이다. 운동만 하는 게 아니다. 자기 일을 알아서 잘하는 아이다. 숙제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자고, 아침이면 일어난다. 그저께는 아빠가 깨우기도 전에 스스로 일어나 있었다.

물론 늘 완벽한 건 아니다. 지난주에는 한 시간만 놀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네 시가 다 되어 들어와 혼이 났다. 그날 아이는 좋아하는 농구 수업을 놓쳤다. 그래도 그 하루가 아이 전체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약속을 한 번 어긴 아이에게도 믿음을 계속 걸어 주는 것. 그게 부모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투자다. 게임 계정 하나는 그 투자의 작은 증서쯤 된다. 지난주 아내는 약속의 무게를 가르쳤고, 이번 주 나는 믿음의 무게를 건넸다. 혼내는 쪽과 믿어 주는 쪽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둘 다 같은 아이를 키우는 한 가지 일의 앞뒷면이다.

게임 계정을 넘겨준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걸 넘겨주는 일이다. 그 안에는 아빠가 들인 시간이 들어 있다. 하나씩 올린 단계와 차곡차곡 쌓아 둔 기록, 그리고 그걸 위해 쓴 시간들. 그걸 통째로 아이 손에 쥐여 준다는 건, 그 시간을 아이에게 맡겨도 괜찮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아이가 그걸로 밤을 새우거나 숙제를 미루지 않을 거라는 믿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자기 일을 알아서 하는 아이라서, 그 믿음을 걸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아들과 가까이 지내는 방법은 꽤 단순하다. 아들이 하는 게임을 아들한테 배워서 같이 한다.

보통은 어른이 아이를 가르친다. 그런데 게임 앞에서는 순서가 뒤집힌다. 우리 집에서 게임 선생님은 5학년이고, 마흔여덟 살 아빠는 학생이다. 수업 시간표도 없고 교과서도 없다. 진도는 선생님 마음대로 나간다. 그래도 수업료는 받지 않는다. 학생이 성실하게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사실 아빠도 원래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요즘 게임은 선생님 없이 혼자 배우기엔 너무 빨리 바뀐다. 우리 집에서 가장 최신 정보를 가진 사람은 5학년이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일은 학생이 선생님께 선물을 드린 셈이다. 스승의 날은 5월인데, 우리 집 학생은 10월에 먼저 선물을 챙겼다.

게임을 같이 하다 보면 이야기가 생긴다. 아들은 나와 게임 이야기를 많이 한다. 게임 속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기술이 센지, 어떤 전략으로 넘어가야 하는지. 아들은 꽤 열정적인 해설가다. 그런데 이상하게 게임 이야기 끝에는 늘 다른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친구와 나눈 농담, 선생님이 한 말, 그날 느낀 조그만 감정들까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하나하나 다 이야기해 준다.

게임은 아들과 나 사이의 공용어다. 한글날 아들이 영어를 쓰지 말자는 규칙을 만들었을 때, 그 규칙에 가장 먼저 걸리는 단어도 게임이었다. 우리 둘에게 게임은 그만큼 자주 쓰는 단어다. 그 단어를 열쇠로 아들의 하루가 열린다. 게임 이야기로 문을 열면, 학교 이야기가 줄줄이 따라 나온다. 아빠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정면으로 물으면 "그냥"이라는 답이 돌아오기 쉽다. 그런데 게임 이야기 끝에 따라 나오는 학교 이야기는 묻지 않아도 길다.

게임 속 단계는 숫자로 보인다. 몇 단계인지, 몇 점인지 화면이 다 알려 준다. 그런데 아빠와 아들 사이의 거리는 숫자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의 길이로 잴 수 있다. 아들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길수록, 우리 사이는 가깝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들의 게임을 배운다. 게임 실력을 늘리려는 게 아니다. 아들의 하루로 들어가는 길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아들은 아직 나를 안아 준다.

오늘 아침처럼 다가와서 안기고, 가끔은 볼에 뽀뽀도 해 준다. 볼에 닿는 그 순간은 하루 중 가장 짧은데, 가장 오래 남는다. 5학년 남자아이가 아빠에게 그렇게 해 준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나는 안다. 흔히들 이 나이쯤이면 아빠 볼보다 휴대전화 화면이 더 가까워진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는 아직 둘 다 가까이 둔다. 휴대전화도 보고, 아빠 볼에도 다가온다.

'아직'이라는 말을 쓰고 보니 조금 마음이 쓰인다. 아직이라는 말 안에는 언젠가는 달라질 거라는 예감이 들어 있으니까. 그저께 아들은 두 달 만에 2센티미터가 컸고, 내년이면 아빠보다 더 클 것 같다고 했다. 그날이 오면 아들이 나를 안아 주려면 허리를 조금 숙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내가 숙이는데, 그때는 아들이 숙인다. 안는 방향이 바뀌어도 안아 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다.


흐린 금요일 아침이었다. 이번 주의 마지막 출근날이다. 하늘은 흐렸지만 우리 집 식탁은 흐리지 않았다. 아내가 차린 치즈 빵과 겨자씨 소고기와 샐러드가 있었고, 아빠가 밤사이 옮겨 놓은 게임 계정이 아들 주머니 속에 있었다.

오늘 저녁 아들이 농구를 마치고 돌아오면, 새 계정 덕분에 게임 이야기가 하나 더 늘어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 끝에는 또 학교 이야기가 줄줄이 따라 나올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내는 우리 가족의 아침을 차리고, 나는 아들과 나눌 이야깃거리를 차린다. 아내의 식탁은 매일 아침 아들의 몸을 키우고, 나와 아들이 나누는 게임 이야기는 아들의 하루를 내게 열어 준다. 차리는 것은 달라도 둘 다 같은 아이를 향해 있다.

아침마다 아내가 차린 밥을 먹고, 밤에는 아들이 잠든 사이 아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아침이면 그 아들에게 안긴다. 쓰고 보니 내 하루가 꽤 호사스럽다. 부자는 아니어도 호사는 누린다.

행복에 겨운 아빠 겸 남편이다. '겹다'는 말은 감당하기 벅찰 만큼 많다는 뜻이다. 보통은 힘에 겹고 일에 겨울 때 쓰는 말인데, 오늘 아침만큼은 행복이 그 자리에 들어앉았다. 벅찬 쪽이 행복이라면, 조금 벅차도 괜찮다. 오늘 아침 아들 휴대전화 속에는 아빠의 선물이 들어갔고, 내 볼에는 아들의 뽀뽀가 남았다. 서로 주고받은 것치고는 내 쪽이 한참 남는 장사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5화10월, 집밥의 다정한 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