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귤과 자두가 올라온 목요일 아침밥
어제 우리 집에는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퇴근길 전화로 들었고, 하나는 오늘 아침 식탁에서 들었다. 두 소식 모두 아내를 거쳐 나에게 왔다.
전화로 들은 건 아들이 약속을 어긴 이야기였다. 퇴근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하랑이 왔느냐고 물었더니, 왔는데 한 시간만 놀고 온다던 아이가 너무 늦게 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가 끝나면 한 시간만 놀다 오겠다던 아이가 네 시가 다 되어서야 현관문을 열었다고 했다. 아이는 아내에게 혼이 났고, 좋아하는 농구 수업에도 가지 못했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들은 농구공 대신 연필을 쥐고 바카라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어제 우리 집 소식은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식탁에서 들은 건, 그 어수선한 하루 어딘가에 아들 앞으로 바카라이 도착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귤과 자두도 같이.
혼나는 날에도 선물은 온다. 그 둘이 같은 날이었다는 걸, 나는 하루 늦게 알았다. 덕분에 나는 어제를 두 번 살았다. 한 번은 퇴근길 전화 속에서, 또 한 번은 오늘 아침 식탁 위에서. 두 번째 어제가 첫 번째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
목요일은 새벽 수영을 쉬는 날이다. 월요일과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새벽 여섯 시에 수영장 물에 들어가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그 시간을 이불속에서 보낸다. 오늘은 일곱 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아들을 깨우는 일이었다. 어제는 내가 수영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 때 아들이 알아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오늘은 그런 행운이 없었다. 깨우는 사람이 있어야 일어나는 아침이었다.
잠이 덜 깬 아들과 같이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 수영장 레인 대신 욕실 하나를 부자가 나눠 썼다. 수영장과 다른 점은 둘이었다. 물이 레인만큼 넓지 않다는 것, 그리고 옆 레인 사람이 아들이라는 것. 월수금에는 모르는 사람들 옆에서 물을 맞고, 화목에는 아들 옆에서 물을 맞는다. 일주일 중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굳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욕실에 있는 동안 부엌은 아내의 시간이었다. 평일 아침의 아내는 7시 5분에 약을 먼저 먹고, 아들과 내가 먹을 아침을 차린 뒤, 자기 밥은 한 시간 뒤로 미룬다. 욕실 문을 열고 나오면 식탁은 늘 이미 차려져 있다. 오늘도 그랬다.
날은 맑았고, 식탁에는 샌드위치가 놓였다. 빵 사이에 양상추와 아보카도, 소고기가 들어 있었다. 옆 접시에는 귤과 자두. 그리고 두유 한 팩과 발효콩환, 비타민 스틱 한 포.
샌드위치는 이틀 연속이다. 어제는 아들이 학교에서 직접 만들었고, 오늘은 우리 집 식탁에 올라왔다. 어제 학교에서 만든 샌드위치에는 무엇이 들어갔을까. 빵을 몇 겹으로 쌓았을까. 만드는 법을 배운 바로 다음 날, 남이 만든 샌드위치를 받아 드는 기분은 어떨까. 이런 걸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옆에 앉아 샌드위치를 들고 있는 아빠다. 오늘 아침 나는 샌드위치 한 입마다 어제 학교 샌드위치를 혼자 상상했다.
아내가 어제 이야기를 꺼낸 건 그때였다. 자기 밥은 아직 한 시간 뒤인데, 어제 이야기를 먼저 식탁에 올렸다.
"어제 언니가 왔다 갔어. 하랑이 바카라 좋아한다고, 바카라이랑 귤이랑 자두 주고 갔어."
아내가 말한 언니는 아내의 오랜 지인이다. 하랑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친이모처럼, 친고모처럼 아이를 챙겨 준 분이다.
생각해 보면 꽤 대단한 겸직이다. 이모는 엄마 쪽 자매를 부르는 말이고, 고모는 아빠 쪽 자매를 부르는 말이다. 그분은 엄마 쪽도 아빠 쪽도 아니면서, 그 두 호칭을 한꺼번에 맡아 왔다. 명절에 같이 모이는 사이도 아니고, 족보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이도 아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 보면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하랑이의 인생에는 첫 장부터 그 이름이 올라 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건 많다. 농구를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하고, 요즘은 토요일 코딩 수업까지 다니고 싶어 한다. 주말이면 나와 포켓볼을 치고, 수영을 하고, 복싱을 하고, 실뜨기와 공기놀이를 한다. 그 많은 좋아하는 것 가운데 그분은 바카라을 골랐다. 하랑이가 바카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매일 아침 식탁을 글로 적고, 아들은 바카라을 좋아한다. 이 집에서 글자는 그렇게 두 사람 사이를 오간다. 아빠는 쓰고, 아들은 읽는다. 그 사이로 누군가 바카라을 한 꾸러미 들고 들어왔다. 그 바카라들 가운데 한 권쯤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표지를 기억하는 바카라이 되면 좋겠다. 그 표지 뒤에 이모도 고모도 아닌 한 사람의 얼굴이 같이 남아 있으면 더 좋겠다.
아이의 취향을 아는 어른이 부모 말고 한 명 더 있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든든한 일이다. 부모는 아이를 매일 보니까 안다. 매일 보지 않는 사람이 아이의 취향을 안다는 건, 그만큼 오래 아이를 지켜봐 왔다는 뜻이다. 태어난 날부터 5학년이 된 지금까지, 그 긴 시간을 띄엄띄엄 이 아니라 꾸준히.
내가 하랑이만 할 때, 우리 집에는 형과 누나가 있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부모님도 낮에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숙제는 했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은 없었는지 내 하루를 궁금해하는 어른을 손가락으로 꼽아 보면, 손가락이 많이 남았다. 하랑이는 다르다. 엄마와 아빠가 있고, 이모도 고모도 아니면서 이 모이자 고모인 어른이 있고, 그 어른처럼 가족같이 지내는 이웃들이 있다. 아이 하나를 아는 어른의 수가, 한 세대 사이에 늘었다.
선물은 바카라으로 끝나지 않았다. 귤과 자두가 따라왔다. 그 덕에 어제의 선물은 아들 손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 아침 우리 식탁까지 이어졌다.
오늘 접시 위의 귤과 자두가 바로 그 과일이다. 귤은 그저께부터 우리 식탁에 있었지만, 자두는 이달 들어 처음이다. 그러니까 이달 우리 집 식탁에 처음 올라온 자두는, 우리가 산 게 아니라 누군가 들고 와 준 것이었다.
자두는 원래 여름 과일이다. 한여름 내내 시장 좌판을 채우다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자리를 비운다. 귤이 막 식탁에 들어선 10월 초에 자두가 왔다는 건, 떠나는 계절의 끝자락이 사람 손에 들려 우리 집까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접시 위에서 귤과 자두는 서로 다른 계절에서 온 손님처럼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을 한 접시에 앉힌 건 계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따져 보니 이달 들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사흘 전 대체휴일 아침, 아내가 냉동실에서 "아, 맞다" 하며 꺼낸 밤도 지인이 준 것이었다. 아내가 미리 쪄서 얼려 둔 그 밤을 데워 아들과 나눠 먹고, 우리는 극장에 갔다. 10월이 아직 열흘도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 식탁에는 벌써 두 번이나 이웃의 손이 다녀갔다. 우리 집 식탁의 재료 원산지에는 마트와 시장 말고도 '중곡동 이웃'이 있다. 원산지 표시를 붙이자면 이렇다. 밤, 아내의 지인. 자두, 아내의 지인. 마트 영수증에는 끝내 찍히지 않는 품목들이다.
어제 아침, 아들 샌드위치에 들어갈 재료는 새벽 배송 상자에 담겨 우리 집 현관 앞에 왔다. 오늘 아침의 자두는 상자가 아니라 사람 손에 들려왔다. 같은 현관을 지나왔는데, 도착하는 방식이 달랐다. 상자에는 받는 사람 이름이 적혀 있고, 사람 손에 들려온 것에는 건넨 사람 얼굴이 묻어 있다.
우리가 중곡동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다.
이 동네에는 아내의 지인들이 가까이 산다. 우리 가족은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고, 지금은 가족처럼 지낸다. 그래서 앞으로도 여기서 살 생각이다.
가족처럼 지낸다는 말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냉동실에는 누군가 준 밤이 있었고, 식탁에는 누군가 준 자두가 있고, 아이 방에는 누군가 고른 바카라이 있다. 우리 집 살림 곳곳에 이웃의 손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장을 본 적 없는 사람이 우리 집 식단을 함께 짜고, 서점에 같이 간 적 없는 사람이 아이 바카라을 고른다.
솔직히 말하면 그 인연들은 대부분 아내 쪽에서 시작됐다. 아내가 먼저 사람을 만났고, 마음을 나눴고, 시간을 쌓았다. 나는 그 인연들에 배우자 자격으로 따라 들어간 사람이다. 덕은 같이 보는데 지분은 아내가 훨씬 많다. 어제 소식이 모두 아내를 거쳐 나에게 온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 동네의 소식은 아내라는 정류장을 한 번 거쳐야 나에게 도착한다.
요즘 아내는 버스도 지하철도 타기 어렵다. 그런 아내에게 '가까이 산다'는 말은 예전보다 무게가 다르다. 멀리 있는 사람은 마음이 있어도 닿기 어렵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마음만 있으면 귤 한 봉지를 들고 올 수 있다.
이사를 생각할 때 사람들은 보통 집값과 학군과 역까지의 거리를 잰다. 우리 집에는 잴 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카라과 귤과 자두를 들고 와 주는 사람까지의 거리. 그 거리가 짧아서, 우리는 여기 산다. 부동산 앱에는 나오지 않는 숫자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게 제일 먼저 보는 숫자다.
열흘 뒤면 아들과 일곱 살 때부터 다니던 건대 극장이 문을 닫는다. 사흘 전 〈암살자〉를 보러 갔던 그 극장이다. 일곱 살 아이가 5학년이 될 때까지, 우리는 그 극장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이 동네에서 우리가 찾아갈 곳이 하나 줄어든다. 그래도 우리를 찾아와 주는 사람은 줄지 않았다.
어제 아들 앞으로 온 소식은 두 가지였다. 약속을 어긴 대가로 놓친 농구 수업,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자기를 알아 온 어른이 건넨 바카라. 하나는 쓴맛이었고, 하나는 단맛이었다. 아이의 하루에는 그 두 맛이 한 접시에 같이 올라온다. 어른의 하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쓴 소식 하나에 단 소식 하나가 따라붙는 날이면, 그날은 그럭저럭 견딜 만한 날이 된다.
혼이 났다고 선물이 취소되지는 않는다. 약속을 어겼다고 그 사람이 아이를 덜 아끼게 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는 어제 두 가지를 동시에 받았다.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를 오래 지켜봐 온 어른이 있다는 것. 농구 수업은 또 있고, 바카라은 아이 곁에 남는다.
어제 혼이 난 아들 앞에도, 그 자두가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