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인간을 발견하다.

12장. 인간의 일상이 그림이 되다. 그리스 적색상 도기

by김현준
사진: 공놀이하는 여성이 그려진 아티카 적색상 암포라(대영박물관 소장(1836,0224.140).
기원전 약 470~460년, Manner of the Painter of London E 342, 아테네 제작, 놀라 출토, 앉아 있는 여성이 두 개의 공을 가지고 놀고 있으며 발치에는 거위 한 마리가 보인다. AI로 사진 선명도 수정 보완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의 항로를 따라가 보자.

크레타를 빠져나온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와 함께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낙소스에서 그녀를 남겨둔 채 아테네로 돌아갔다.


신화에는 유명한 검은 돛 이야기가 있다.

테세우스는 아버지 아이게우스와 약속했다.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살아 돌아오면 흰 돛을 달기로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돛을 바꾸지 않았고, 검은 돛을 본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¹아이게우스는 검은 돛을 보고 아들이 죽었다고 믿었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이 바다가 에게해(아이게우스의 바다)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서 테세우스에게 작은 복수를 하나 했다.

내 이야기 속에서 그 검은 돛은 처음부터 배에 있던 것이 아니다.

아리아드네가 입고 있던 검은 드레스로 만들었다.

물론 원전에는 없는 나의 상상이다. 아리아드네를 위한 작가의 소심한 복수이기도 하다.



이제 그 검은 돛을 따라 아테네로 가보자.

학교 미술시간에 보았던 그리스 도자기가 떠오른다.

검은 바탕. 그 위에 붉은 인간.

그때는 그저 특이한 무늬라고 생각했다.


신도 있었다. 영웅도 있었다.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니 이상하게도 신보다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팔이 꺾이고, 허리가 돌아가고, 무릎이 굽혀졌다. 옷자락도 몸의 움직임을 따라 흘렀다.

크레타의 〈황소의 도약〉에서 인간이 힘차게 뛰어올랐다면,

수백 년 뒤 아테네의 화가들은 움직이는 인간의 몸을 더욱 세밀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궁금해졌다.

왜 그리스 사람들은 도자기에 이렇게 많은 인간을 그렸을까?


시장이 커지다.

우리가 찾아갈 아테네는 테세우스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시대보다 훨씬 뒤의 도시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지중해 세계의 교역망은 확대되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지중해와 흑해 곳곳으로 이동했고 상품과 문화도 함께 움직였다.

아테네에서 만든 도자기 역시 널리 수출되었으며

특히 에트루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에서 큰 시장을 형성했다. ²

도자기는 이제 한 도시 안에서만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배에 실렸다. 바다를 건넜다.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그것을 샀다.

그리고 다시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박물관에서 만나는 아테네 도자기 상당수가 이탈리아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도 이런 교역과 관련이 있다. ²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변화다.

물건이 더 멀리 이동하면 만드는 사람은 더 많은 사람과 만나게 된다.

직접 얼굴을 보지 않아도 자신의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도자기는 생활용품이면서 동시에 교역품이 되었다.


그릇이 상품이 되다.

그리스인은 다양한 형태의 그릇을 사용했다.

암포라에는 포도주나 기름 등을 담았다. 히드리아는 물을 길어 나르는 데 사용했고,

킬릭스는 술을 마시는 잔이었다. 크라테르에서는 포도주와 물을 섞었다. ³

그릇에는 저마다 쓰임이 있었다.


오늘날의 컵과 주전자, 항아리가 서로 다른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시장이 넓어지면 같은 종류의 상품 사이에서도 차이가 중요해진다.

항아리는 항아리다. 술잔은 술잔이다. 기능만 놓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하나를 골랐을까.

크기, 모양, 완성도, 그리고 그림.

여기서 재미있는 생각이 시작된다.


그릇이 상품이 되자 그림은 차이가 되었다.

물론 그림이 상품 경쟁 때문에 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스인은 오래전부터 도자기에 신화와 여러 장면을 그려왔다.

하지만 같은 용도의 그릇이라도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물건처럼 보였을 것이다.

신화를 그린 술잔. 운동선수를 그린 항아리. 연회의 모습을 담은 그릇. 그림은 물건에 이야기를 입혔다.

나는 여기에서 예술과 시장이 만나는 한 장면을 본다.


누가 만들고, 누가 그렸을까.

도자기를 자세히 보면 더 흥미로운 흔적이 발견된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려주는 서명이 있고, 누가 그렸는지를 밝히는 서명도 있다. 도공과 화가가 반드시 같은 사람은 아니었으며, 아테네 도기 연구에서는 화가별 양식과 작품을 구분하는 작업이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되었다.⁴

어떤 이는 그릇을 만들었다. 어떤 이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남긴 사람도 있었다.

왜 이름을 남겼을까.
자신의 솜씨에 대한 자부심이었을 수도 있다.
누가 만들고 그렸는지를 알리는 표시였을 수도 있다.


여기서 오늘날의 산업과 닮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전문화.

분업.

차별화.

하지만 너무 빨리 현대의 경제 논리를 고대 아테네에 대입할 필요는 없다.

고대의 공방과 현대의 기업은 전혀 다른 세계다.

더구나 시장이 커졌기 때문에 화가들이 인간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할 증거도 없다.

다만 하나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상품이 더 넓은 지역으로 이동했고, 여러 공방과 화가들이 활동했으며,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제작자들도 등장했다.

시장은 새로운 그림이 만들어지고 비교될 수 있는 환경을 넓혀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도 큰 변화가 나타난다.


검은 인간에서 붉은 인간으로.

학교 미술시간에 보았던 바로 그 붉은 인간이다.

처음 그리스 도자기에는 검은 인물이 많았다. 흑색상 도기다.

화가는 인물의 형태를 검게 만들고 날카로운 도구로 표면을 긁어 세부를 표현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530년 무렵 아테네에서 적색상 기법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인물을 점토 본래의 붉은색으로 남겨두고 주변을 검게 처리했다.

몸의 세부는 긁어서 표현하는 대신 붓으로 선을 그릴 수 있었다. ³

겉으로 보면 검정과 빨강의 위치만 바뀐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색이 아니라 선이었다.

붓은 자유로웠다. 가는 선을 그을 수 있었다. 근육의 굴곡을 따라갈 수 있었다. 옷의 주름을 표현할 수 있었다.

허리를 돌리고, 무릎을 굽히고, 몸을 앞으로 숙이는 자세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쉬워졌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적색상 기법의 붓 작업이 인체 해부학과 의복, 감정 등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 특히 적합했다고 설명한다. ³

그리고 화가들이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범위도 넓어졌다.

기술이 바뀌자 몸이 달라졌다.


왜 인간을 그렸을까.

그렇다고 그리스 도자기에서 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신과 영웅이 그려졌다.

제우스, 포세이돈, 아테나, 디오니소스,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그리스 도자기는 신화의 세계로 가득하다. 동시에 운동, 연회, 전쟁을 비롯해 당시 그리스 슬롯와 인간의 몸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장면도 남겨놓았다.⁵


신을 그릴 때는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제우스에게는 번개가 있었다.

포세이돈에게는 삼지창이 있었고, 아테나는 투구와 방패를 들었다.

얼굴이 모두 같았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을 들고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어떤 신화 속 장면인지를 통해 사람들은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신에게는 정체성을 알려주는 표지가 있었다.


그런데 인간은 달랐다. 달라도 되었다.

달리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춤추는 사람, 갑옷을 입는 사람.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

인간에게는 끝없이 다른 자세와 상황이 있었다.

신은 누구인지 보여주어야 했지만,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신에게는 알아보게 만드는 규칙이 있었지만,
인간에게는 변주할 수 있는 삶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고대 그리스인이 남긴 문장이 아니다.

도자기를 바라보며 내가 내린 해석이다.

그런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화가는 인간을 달리게 할 수 있었다.

몸을 돌리게 할 수 있었다. 앉히고, 춤추게 하고, 싸우게 하고, 술을 마시게 할 수도 있었다.

인간은 화가에게 끝없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였다.

시장이 인간을 그리게 한 것은 아니다.

기술 하나가 인간을 주인공으로 만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장이 넓어지고, 새로운 표현 기술이 등장하고, 인간의 몸과 생활을 세밀하게 보여줄 수 있게 되면서

그림의 세계 역시 넓어졌다.


인간의 하루가 그림이 되다.

도자기를 한 번 더 들여다보자.

당시 사람들이 익숙하게 접했던 슬롯와 생활의 모습은 도자기의 중요한 이미지가 되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역시 아테네 채색 도기의 그림이 고전기 아테네인의 여러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한다. ³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특정한 실제 인물의 초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은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기록하기보다 인간의 행동과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인간의 삶 자체가 그림의 주제가 될 수 있었다.

왕이 아니어도 됐다. 신이 아니어도 됐다.

술을 마시고, 운동하고, 떠나고, 기다리는 모습도 그림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있는 장소도 흥미롭다. 거대한 신전이나 궁전의 벽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손으로 들고 사용하는 물건에도 그림이 있었다.

술잔에 그림이 있었다. 물을 담는 그릇에도 그림이 있었다. 연회 한가운데에도 그림이 있었다.

다만 이것을 곧바로 ‘미술의 대중화’라고 부르는 것은 조심스럽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설명처럼 흑색상·적색상 기법은 아테네의 정교한 채색 도기에 사용되었고, 일상에는 더 단순한 무장식 도기도 존재했다. ³

모든 사람이 값비싼 채색 도기를 사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의 변화는 분명히 보인다.

그림이 생활용품 속으로 들어왔다. 사람은 그림을 손에 들 수 있었다. 사용할 수 있었다.

선물할 수도 있었고, 사고팔 수도 있었다.

그림은 벽에만 머물지 않았다.

사람의 손으로 내려왔다.

나는 이 변화를‘예술의 생활화’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은 인간으로 주인공이 되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나온 그림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라스코에서는 인간보다 동물이 더 크게 보였다.

이집트에서는 인간이 신과 영원의 질서 속에 있었다.

크레타에서는 인간이 황소의 등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아테네에 오자 인간의 하루가 그림이 되었다.

예술이 생활 속으로 들어왔고, 인간의 일상이 예술 속으로 들어왔다.

인간은 이제 신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형상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몸과 자신의 하루를 가지고 그림 안에 서기 시작했다.

인간은 인간으로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간이 그림 속으로 들어온 뒤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된다.

사람은 점점 더 커졌다.

장면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과 현실 사이의 경계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수백 년 뒤.

우리는 그리스를 떠나 이탈리아 남부의 한 도시로 향한다.

폼페이.


기원후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묻혀버린 도시다.

그곳의 한 별장에 들어서면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인물들이 붉은 벽을 따라 우리를 둘러싼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뜻밖의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다.

크레타를 떠났고, 낙소스의 바닷가에 남겨졌던 여자.

아리아드네.


그런데 이번에는 테세우스가 곁에 없다. 그녀의 곁에는 다른 신이 있다.

디오니소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버렸다. 그러나 신화는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이제 폼페이의 붉은 방으로 들어가 보자.

〈신비의 별장〉

1. Plutarch, Life of Theseus, in Plutarch’s Lives, vol. 1, trans. Bernadotte Perri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London: William Heinemann, 1914).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아이게우스, 귀환 시 돛을 둘러싼 전승을 참고했다. 다만 아리아드네의 검은 옷으로 검은 돛을 만들었다는 내용은 원전에 없는 작가의 창작이다. Perrin 번역본은 1914년 Loeb Classical Library 제1권에 수록됐다. Kiwix Server

2. Colette Hemingway and Seán Hemingway, “Ancient Greek Colonization and Trade and their Influence on Greek Art,” Heilbrunn Timeline of Art History,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July 2007. 아테네 도자기가 에트루리아와 남부 이탈리아 등지로 널리 수출되었다는 내용을 참고했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3. Department of Greek and Roman Ar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Athenian Vase Painting: Black- and Red-Figure Techniques,” Heilbrunn Timeline of Art History, October 2002. 흑색상·적색상 제작법, 기원전 530년 무렵 적색상 기법의 등장, 붓을 이용한 인체·의복 표현, 그릇의 용도 등을 참고했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4. John D. Beazley, Attic Red-Figure Vase-Painters, 2nd ed., 3 vols. (Oxford: Clarendon Press, 1963). 아테네 적색상 도기를 화가별로 분류한 대표적인 연구서로, 도기 화가들의 작품과 양식을 이해하는 기본 자료로 참고했다. 1963년 제2판은 3권으로 출간되었다. Smithsonian Institution

5. Amanda Herring, “Pottery, the Body, and the Gods in Ancient Greece, c. 800–490 B.C.E.,” Reframing Art History, Smarthistory, July 21, 2022. 고대 그리스 도자기와 인간의 몸, 신화와 종교, 당시 슬롯·문화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참고했다. 스마트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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