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아내느라, 사랑하느라.

- 사랑으로 키우는 마음 정원 2를 마치며 -

by홍당무

‘저 유튜버는 정말 예쁘게 해 놓고 사네'

‘저 사람을 정말 예쁘게도 차려 먹는다.’

‘저 사람은 자기 몸을 끔찍하게도 아끼네. 돈이 많이 들 텐데. 돈 들어갈 데가 많아서 나는 여유도 없는데.’


요즘 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 생각들이다. 어쩜 그리 저마다의 세계를 예쁘게도 가꾸며 살아가는지, 나는 고작 내 외모 하나 깔끔하게 정돈하는 것조차 숨이 벅찬데 말이다. 굳이 돈을 들여 취향을 반영한 공간을 꾸미고,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고 멀리까지 가서 몸에 좋다는 식재료를 공수해 와 시간을 들여 요리하고 플레이팅을 하는 정성까지. 그 모든 풍경은 나에게 경이로움이자 부러움이었다. 이런저런 상념을 뒤로하고 가족들을 위한 분주한 저녁 준비에 매달려 있을 무렵, 한 번 두 번 현관문이 열렸다.


“여보 나왔어. 오늘도 별일 없이 잘 지냈지?”

“엄마 다녀왔습니다.”

“엄마 저도요. 배고파요. 밥 주세요.”


분명 나도 그들과 같은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또 다른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건만, 가족들에게 이런 나의 모습은 당연한 공기와도 같은 익숙함인가 보다. 건성인 듯 다정한 듯 매일 똑같은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방으로 쏙 들어간다. 덩그러니 나만 부엌에 남겨둔 채.


‘나도 쉬고 싶은데….’


삐! 삐!

음식이 데워졌다는 전자레인지의 알림음과 함께 잠시 멈칫했던 부엌의 시간은 다시 바쁜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들 나와서 밥 먹어.”

“네!!!”


정갈하게 차려진 가족들의 밥상과는 달리, 간을 보느라 이미 입맛을 잃어버린 내 그릇은 접시 한편에 대충 모아둔 꽁다리 음식들뿐이었다. 가족들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입에 넣는 것을 보며, 가위로 음식을 잘라주기도 물을 더 떠다 주기도 하다 느지막이 젓가락을 든다. 그 시간마저도 온 신경은 아이들과 남편으로 향한다. 아이들이 밥은 잘 먹는지, 남편은 입맛에 맞아 하는지 반찬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살피느라, 아무도 몰래 혼자만의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얘들아 천천히 먹어. 숟가락 내려놓고 꼭꼭 씹어. 그러다 배탈 나.”

“네.”


배탈 날 것이 염려되어 천천히 음미하며 먹으라는 아이들을 향한 내 염려와는 달리, 나는 이미 식사를 끝낸 지 오래다. 뭘 먹었는지, 무슨 맛이었는지도 모른 채 심지어 먹은 기억조차 없는 식사가 그렇게 끝이 났다.


‘이러니 위장이 아프지. 오늘도 천천히 씹고 음미하지 못했네. 이 버릇 고쳐야 하는데.’


텅 빈 그릇을 두고 가족들이 먹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남편이 한 소리 한다.


“선희야, 천천히 예쁘게 차려서 먹어.”

분명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일 테지만, 그 순간 귓가에 맴도는 음성은 묘하게 왜곡되어 내 마음에 꽂혀 서러운 눈물을 삼키게 했다.


‘더럽게 먹지 마. 보기 안 좋아. 안 예쁘잖아.’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던 시절, 세상 모든 이가 나를 비웃는 것 같던 때가 있었다. 늘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 그나마도 아이가 잡아당기거나 토해내어 얼룩지기 일쑤였다. 아이의 피부에 닿을까 봐 립스틱 한번, 선크림과 헤어 에센스 한 방울조차도 조심스러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초라하다고 여기던 그 시절, 늘 남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다. 그 시절 나는 남편이 나의 초라한 외모를 뚫고 잔뜩 웅크려져 있는 마음마저 알아차릴까 항상 두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아이를 품에 안고 건강하게 키워내기 위한 나의 처절하고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을 텐데. 나는 그 푸르른 사랑의 시간을 ‘못생김'이라는 잣대로 가두어 자신을 위축시켰고, 못난 마음이 자라나 나를 덮치게 내버려 뒀다. 그리고 한 없이 나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복직하면서부터 외적인 부분을 다시 가꾸기 시작했다. 파마를 하고 염색을 하고 피부과 문을 두드렸다. 예쁜 구두와 옷을 사 모으며 늘어진 티셔츠를 벗어 던졌지만, 한번 움츠러들었던 마음은 상처로 새겨져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새 화장품을 뜯어 예쁘게 화장해도,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어 걸어도, 늘어진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새 옷을 입었어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시큰거렸고 문득문득 못난 마음이 올라와 나를 건드렸다. 그 시절 나는 설거지하다가도 아이의 밥을 차리다가도 우주에 홀로 서 있는 듯 공허한 마음에 알 수 없는 눈물이 시큰거렸다.


오늘도 퇴근 시간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 정문을 나섰지만, 집이 가까워질수록 늘 그렇듯 마음은 무거워진다. 이미 차는 미끄러지듯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음악 하나 흘러나오지 않는 적막한 차 안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이 고요가 참 좋았다. 봐야 할 눈치도 보이는 눈치도 없는 혼자만의 이 공간이.

하지만 이내 아이들이 잔잔한 고요의 물결을 깨고 몸과 마음으로 들어온다. 어느덧 나를 감싸던 조용한 공기는 저만치 물러난다.


‘가야지.’

힘을 주어 차 문고리를 당긴 후 열린 문 사이로 바깥세상을 향해 다리를 내디딘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잔뜩 웅크린 어깨를 쫙 펴지도 못한 채 서둘러 터벅터벅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나를 사랑할 시간도 없이.


“엄마! 나 오늘 토했어요. 학원에서 떡볶이를 먹었는데 갑자기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에 뛰어갔더니 토가 세 번이나 나왔어요.”

“시우야 정말? 지금 괜찮아?”

“네.”

“안 무서웠어?”

“무서웠어요.”

“아이고, 세 번이나 토했다니. 무서웠겠다. 그래도 혼자 용감하게 잘했네. 많이 컸다. 시우야.”

“저 변기에 토하고 물도 내렸어요. 잘했죠?”

“응 잘했다. 그래도 조심히 먹어. 음식은 항상 조심해야 해.”

“네.”


세 번이나 토했다는 아이의 말에 식은땀이 왈칵 쏟아졌지만, 다행히 아이는 큰 탈 없이 그날 밤을 평온하게 넘겼다. 아이들이 다 자는 저녁 시간 둘째 아이가 못내 마음에 걸려 아이 방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픔을 토해내던 그 순간 엄마도 없이 혼자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그 순간은 철저히 이 우주에 혼자였을 테고, 혼자 감당해 내야 했던 자신의 몫이었을 것이다.

새근새근 고른 숨을 내쉬며 천사처럼 잠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보니 문득 아이만의 인생이 그 조그마한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한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우주의 유일한 존재, 그러니 자기만의 인생을 가지고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온전한 한 사람의 삶. 그 외롭고 긴 시간을 살아가기 위해 함께 하는 유일한 존재. 바로 자기 자신.


어쩌면 산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자신의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자신과 사이좋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

엄마조차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내 인생이기에,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안고 걸어가는 것. 그러기 위해 나를 끊임없이 알아가고, 이해하고, 마침내 깊이 사랑해 주는 일. 그래서 삶의 마지막 문을 닫는 날, 나 자신을 꼭 끌어안으며 편안히 눈 감을 수 있도록 사랑하는 긴 여정. 그것이 살아가는 것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자존감도, 낯설고 서툴기만 했던 내 못난 모습들도, 돌이켜보니 모두 눈물겹도록 소중한 나를 알아가는 인생의 한 페이지였다. 그 못난 순간들조차 나를 향한 지극한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인생을 걸어간다. 또 다른 내 모습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조금 더 깊이 사랑해 내면서.


오늘도 참 고생 많았어. 묵묵히 내 몫의 삶을 살아내느라. 그리고 끝내 나를 사랑해 내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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