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전업주부의 인지적 폭주

완벽이라는 감옥, 한 평의 빈틈을 허락하는 일

(프롤로그)

가장 숨기고 싶었던 제 안의 찌질함과 완벽주의를 가만히 응시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저를 가둔 감옥의 기록이자, 그 감옥을 부수고 나가고 싶은 한 인간의 서툰 첫걸음입니다.



완벽이라는 감옥, 내 방이 없는 자리에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하는 순간, 내 몸은 가장 먼저 고통의 신호를 보낸다. 관자놀이가 욱씬욱씬거리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한다. 초분 단위로 긴박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다급함 속에서, 숨이 턱 막히며 등 뒤로 진땀이 흐르는 느낌이 강하게 인다.

대개는 무방비 상태로 멍하니 있다가 중간에 훅 치고 들어오는 돌발상황 때문이다. 임기응변으로 빠르게 대처하고 잠시 안심했다가, 아차, 그 대처가 틀렸음을 깨닫는 순간 이 감각은 송곳처럼 나를 괴롭힌다. 잠깐의 정지, 그리고 내가 틀렸다는 오류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왜 이토록 지독하게 힘든 일일까.

결국 나는 타인에게 언제나 완벽하고 정확한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나 나를 우러러보고, 내가 늘 우위에 서 있는 대단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 매 순간 나를 단속하고 행동을 제어하려 드는 감시자가 내 안에 살고 있다. 그러니 아주 작은 오차나 실수가 벌어지면 참지 못한다. 불인정의 태도로 돌변해 성을 내고, 집요하게 내가 옳다고 주장하며 나를 방어하려 애쓴다.


방 한구석에는 읽어야 할 바카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내게 필요할 것 같아 다량으로 구매한 바카라들이다. 1분 1초가 아까워 한순간도 쉬임 없이 모든 바카라을 섭렵하려 하지만 마음만큼 몸이 따르지 않는다. 무방비 상태의 나에게 누군가 불쑥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바카라에서 얻었어야 할 정답 대신 어버버한 대답을 내놓는 나를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문득 서글퍼진다. 왜 남에게는 빈 공간이 보이면 "그게 인간적인 매력"이라 쉽게 말해주면서, 왜 나 자신에게는 이토록 잔인할 만큼 혹독한 걸까.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허세가 도대체 왜 그리 중요해서, 언제부터 이 목표성 집요함에 스스로를 가두게 되었을까. 내가 나를 너무 혹독하게 몰아붙여 숨이 찬다. 이 모든 계획과 통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나는 한없이 무너지고 포기 상태가 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드라마 다시보기를 켜놓은 채, 괴로운 생각들을 복기하고 또 무너진다. 생각 없이 흐를 시간에 나를 던져버리는 방어적 태업이다.


이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지만, 현실의 나는 전업주부다. 주부의 하루 일과는 참으로 길고도 고되다. 생활 잡일이라는 것은 끝도 없고 티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쓰다가 잠시 집안일을 보고 난 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글을 이어 쓰려고 하면 마땅한 '내 자리'가 없다. 펼쳐두었던 노트북과 노트를 정리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마저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난 에너지를 요한다. 우리 집이 지지리 궁상의 환경이 아닌데도 그렇다. 내 방,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탓일까. 내 것만을 바르다 정의하고 공간을 고수하려는 내 갈망은, 정말 타인에게 이기적이라 타박받아야 마땅한 일일까.


만약 내가 쓰는 글이나 시, 그림이 대단한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나의 이 모든 몸부림은 다 쓸데없는 짓이고 이기적인 도피에 불과한 걸까.


한동안 온라인카지노 플랫폼에서 '작가님'이라 치겨세워주는 말에 마음이 우쭐했었다. 하지만 이내 강하게 밑바닥으로 추락해 한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그렇게 써댄들 정작 나는 등단한 인정받은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 그저 허울뿐인 타이틀로 우쭐했다는 부끄러움이 허상처럼 나를 덮쳤기 때문이다. 아무런 경제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전업주부라는 타이틀로부터 벗어나, 수익 창출과 연결된 '진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가감 없는 욕망이 부딪친 결과였다.


그럴 때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데!"라는 자바카라이 뒤따랐고, 문맥도 생각도 흐릿한 내 글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내 글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 글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뜻일까. 그래야 타인을 매의 눈으로 난도질하고 상처 주지 않을 너른 마음이 생기는 걸까. 내가 타인을 일부러 배척하려 했던 심리는, 과연 나 자신을 혐오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도 그러해야 마땅하다고 믿어버린, 자바카라과 자의식의 세계 속 '인지적 폭주'였을지도 모르겠다.


빈틈없는 나를 끊임없이 추구한다면, 나는 기계적으로 바카라을 주입하며 점점 더 신경질적인 인간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지금도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들키면 심한 죄바카라감이 찾아와 내 숨통을 죄어오니까. 이 인지적 폭주는 앞으로의 내 모든 발걸음을 옳지 않은 길로 등을 떠미는 위험한 기폭제다.


조금 더 신중하고, 천천히 나를 드러냈어야 했다. 허상 가득한 욕심으로 민첩함을 가장한 거짓된 스피드로 나를 채찍질했기에 지금 너무도 힘이 든다. 만약 매번 성공적인 결과만 냈다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겠지만, 모든 것을 내 통제하에 두려는 이 반복적인 심리 구조는 이제 선구조로 바로잡아야 한다.

더는 내 손으로 나를 실패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완벽이라는 감옥의 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것, 내 빈틈을 향해 처음으로 숨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내 방이 없는 거실 식탁 위에서, 내가 다시 연필을 쥐는 이유다.

이전 05화신발 속의 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