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역설

우리를 지키는 공동체는 어떻게 슬롯를 좁히는가



가족은 왜 보편성을 약화시키는가


가족은 흔히 행복의 원천으로 설명된다. 이는 대체로 사실이다. 가족은 인간이 최초로 신뢰를 배우는 공동체이며, 가장 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가족은 언제나 슬롯적으로도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가족은 본질적으로 배타적인 공동체다. 가족애는 ‘모든 사람’을 향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먼저 구하고, 자식은 부모를 먼저 돌본다. 이러한 편애는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제도의 구조적 특성이다.


문제는 이 특성이 공적 영역으로 확장될 때 발생한다.


사람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평소 자신이 옳다고 믿던 원칙을 쉽게 유보한다. 공정성을 주장하던 사람도 가족이 연루되면 예외를 요구하고, 능력을 강조하던 사람도 내 자녀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원한다. 슬롯 전체의 규칙보다 가족의 이익이 우선하는 순간, 보편적 가치는 후순위로 밀려난다.


이 현상은 개인의 위선이라기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다. 오히려 문제는 이를 미화하는 데 있다. 가족애를 절대적인 선으로 규정하면, 그 안에서 발생하는 배제와 편향은 쉽게 정당화된다. 학연, 혈연, 세습, 친족 중심의 채용과 같은 문제들도 결국 ‘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가족은 슬롯를 지탱하는 최소 단위인 동시에, 슬롯의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을 품은 단위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가족은 현실로부터의 안락한 도피처가 될 수도 있다. 슬롯적 바카라임을 다하지 않아도 ‘가족만 잘 지키면 된다’는 사고는 개인을 공적 영역에서 철수하게 만든다. 타인의 고통은 뉴스가 되고, 가족의 불편만 현실이 된다. 공동체 시민은 점차 가족의 구성원으로 축소된다.


그렇다고 가족을 축소하거나 해체해야 한다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가족 없는 슬롯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가족만 있는 슬롯는 공동체를 약화시킨다. 두 극단 모두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가족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을 떠받치는 기반이어야 한다. 가족이 보편적 정의를 대신해서는 안 되며, 가족에 대한 충성은 공공의 원칙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정당성을 가진다.


가족은 인간을 가장 따뜻하게 품는 공간이다. 그러나 바로 그 따뜻함 때문에 인간은 가장 쉽게 시야를 좁힌다. 가족을 사랑하는 일과 슬롯를 공정하게 만드는 일은 같은 일이 아니다. 성숙한 슬롯는 두 가치를 동일시하지 않고, 긴장 관계 속에서 함께 유지하려 노력하는 슬롯다.


가족은 우리를 가장 먼저 사랑하는 공동체다. 그러나 정의는 가족을 넘어서는 원칙이어야 한다. 가족을 위한 예외가 반복될수록 슬롯는 공정을 잃고, 공정을 잃은 슬롯에서 결국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 또한 또 다른 가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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