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인가, 아니면 행동인가
[이전 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① - 너는 피터 파커냐, 아니면 스파이더맨이냐
어린 시절 부산에는 미군 기지가 있었고, 그 이름은 하얄리아 부대였다. 군 장성이셨던 아버지는 어떤 통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따금 미군들이 보던 만화바카라을 구해다 주셨다.
덕분에 나는 또래보다 조금 일찍 낯선 나라에서 온 영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런 인물들이 알려진 것은 70년대 《소년중앙》, 《어깨동무》 같은 어린이 잡지를 통해서였는데, 당시에는 스파이더맨이 '거미인간'으로 불렸다.
다른 아이들이 좋아했던 주인공은 배트맨. 하지만 가장 내 마음이 끌렸던 영웅은 '거미인간' 스파이더맨이었다. 특이한 복장과 가면, 약간은 허당끼가 있고 무엇보다 아직은 어른이 되지 않은 소년의 모습이 어린 나에게 멋있어 보였다.
아마 그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든 지금도 배트맨과 스파이더맨, 두 영웅의 영화는 빠짐없이 본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영화를 두 번 보게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면서 이전의 제자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전에 나 자신의 청년 때가 연상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대학을 나와 처음 슬롯에 발을 딛는 순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졸업이라는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 그동안 나를 설명해 주던 것들, 학번, 전공, 동아리, 성적, 익숙한 얼굴들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새로 들어선 자리에서는 아무도 나의 지난 시간을 모른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건 오직 지금 이 순간의 행동뿐이다. 몇 년을 쌓아 온 이름이 무색해지고,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무엇을 하든지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게 낯설고, 때로는 억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피터 파커의 이야기가 건네는 힌트가 있다면, 이 공백이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여백일 수 있다는 점이다. 공백과 여백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아무도 나를 규정해 주지 않는 시간이란,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반복할지 고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첫 출근길의 어색한 인사, 아직 서툰 업무, 나를 소개할 때 머뭇거리게 되는 몇 마디.
그 낯섦은 어느 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매일 다시 선택되는 행동들로 서서히 채워져 간다. 화려한 경력이나 누군가의 인정보다 먼저 쌓이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반복하는 태도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다만 그 속도가 조금 느려졌을 뿐."
사실 제자들과 나 자신의 청년 때가 생각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에게는 스파이더맨 시리즈 자체가 '완결되지 않는 성장'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되었다. 1962년 스탠 리와 스티브 딧코가 만든 피터 파커는 처음부터 완결된 영웅이 아니라, 학업과 생계와 인간관계를 동시에 떠안은 채 허둥대는 10대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부터 이미 그는 메이 숙모를 비롯해 자신을 아끼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가야 했다.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 이 원형적 긴장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영화는 그 감춤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숨기는 선택이 아니라 아예 지워지는 사건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피터도 처음의 그 소년과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조차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없다는 감각을, 그는 예순 해 넘게 반복해서 앓고 있는 것이다.
벤 삼촌의 죽음에서 시작해 그웬의 상실을 지나 이번의 완전한 지움에 이르기까지, 이 캐릭터는 한 번도 성숙에 '도달'해 정착한 적이 없다. 매번 무언가를 잃은 자리에서 다시 슈트를 입을 뿐이다.
어쩌면 이건 단지 이야기 속 우연이 아니라, 이 시리즈가 관객과 맺는 관계의 구조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과 함께 자라난 세대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졸업하고 떠나간다. 그들에게 이 영화는 성장의 동반자에서 어느 순간 추억의 사진첩으로 남는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을 맺어 버리면, 시리즈도 그 세대와 함께 저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영화들은 어쩌면 의도적으로 완결을 미루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대가 자라 다시 이 낯섦과 재구성의 자리에 들어설 수 있도록, 성장을 완성하지 않고 매번 새로 시작할 자리를 남겨 두는 것이다.
이번 영화의 마지막 순간, 어쩌면 네드가 피터의 이름보다 먼저 기억해 낸 것은, 두 사람이 함께 반복했던 작은 행동, 둘만의 핸드셰이크였는지도 모른다.
비록 기억을 되살아나지 않고 이름은 지워질 수 있어도, 함께 살아온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몸에 밴 행동까지 반드시 지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슬롯를 향해 첫발을 떼는 이들에게 이 영화가 들려주는 것은 위로보다는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고 본다.
이름이 아직 낯설다면, 그 이름을 채우는 일은 항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것이다.
브랜드 뉴 데이는 상실 이후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새로 시작하는 모든 자리에 이미 놓여 있는 하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피터 파커의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 각자의 이름도 어느 한순간에 완성되어 멈추지 않는다.
졸업하는 날 이름 하나가 사라지고, 첫 출근을 하는 날 또 다른 이름을 얻고, 그 이름이 다시 몇 번이고 낯설어지는 동안에도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만들어 간다.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작은 행동일 것이다.
인사를 건네는 일,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일,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약속한 것을 지키는 일, 어려운 순간에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 일. 그런 하루하루가 쌓이면 어느 순간 그 행동들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태도가 되고, 태도는 마침내 한 사람의 이름에 붙어 그 사람을 설명하는 것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아무도 나를 모르는 자리에서, 나는 오늘 무엇을 반복할 것인가.
그 선택이 내일의 나를 만들고, 내일의 선택이 다시 그다음의 나를 만든다.
물이 처음부터 호수였던 것은 아니듯, 한 사람의 이름도 처음부터 완성된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물줄기들이 흘러와 하나의 강이 되고, 그 강이 오랜 시간 한 곳으로 모여 마침내 호수를 이루듯, 우리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반복해 온 수많은 작은 행동들이 결국 한 사람의 이름에 깊이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이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름을 만들어 가는 오늘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자리에서도 오늘 무엇을 반복할 것인가.
그것이 쌓이고 또 쌓여, 언젠가 누군가가 우리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 안에 한 사람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도록 하는 것.
결국 한 사람의 이름이란, 그가 살아온 날들이 흘러들어 마침내 이루어 놓은 하나의 호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