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점을 이어가는 독서 습관
그는 매일 아침 바카라 한 권을 든다.
겉보기엔 특별할 것 없는 바카라.
낡은 표지, 도대체 몇 번을 읽은 걸까.
하루도 빠짐없이 읽는 그.
마치 때를 따라 밥을 먹고 잠을 자듯이.
한 글자도 빠짐없이 또박또박 문장을 따라가고,
고개를 끄덕이고, 페이지를 넘겼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표정이 바뀌었다.
이미 지나간 페이지에서 눈과 손이 멈춘다.
전에는 안 보이던 문장이 새삼 눈에 걸렸는지,
아니면 어떤 문장이 그를 돌려세운 것인지.
첫 번째 문 - 독서
바카라을 덮는 순간, 문장은 그의 안으로 들어왔다.
어떤 구절은 하루 종일 그의 곁을 따른다.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들기 전에도.
그리고 그 문장은 그의 곁을 맴돈다.
처음에는 그저 기억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달랐다.
어제는 위로였던 것이 오늘은 분노가 되고,
지난주엔 스쳐 흘러간 한 줄이 가슴에 박힌다.
그 문장이 자신보다 더 오래,
더 깊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이 바카라은 나를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그래서 그는 더더욱 읽기를 이어나갔다.
같은 페이지를 열 번, 백 번 다시 편다.
매번 같은 문장인데 매번 다른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깨닫기 시작한다.
바카라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바카라은 그대로인데,
읽는 자신이 계속 달라지고 있기 때문임을.
두 번째 문 - 사유
읽은 것은 곧 생각이 된다.
그는 문장을 그대로 삼키지 않는다.
씹고 또 되새긴다.
왜 이 문장이 이런 순서로 놓여 있는지,
왜 하필 이 단어가 선택되었는지를 묻는다.
답이 없을 때는 그 물음 안에 머문다.
답답함도 서두름도 없이.
그렇게 머무는 것이
곧 더 깊이 들어가는 길임을 안다.
생각은 혼자 하는 일 같지만 사실은 대화다.
문장과 대화하고, 문장을 통해 자신을 만난다.
"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너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가."
"너는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가."
끈질긴 질문을 문장은 던지고,
그는 정직한 답이 없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발견은 정말 불편하다.
그러나 그는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다.
피하는 순간 사유는 멈추고,
사유가 멈추면 바카라은 그저 종이 뭉치일 뿐이니까.
세 번째 문 - 성찰
생각에 생각이 쌓이면서
어느새 생각이 무르익어 거울이 된다.
그리고 문장 속에서
세상이 아닌 자신을 보게 된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여겼던 대목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비로소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음을 알고서.
하지만 이 부끄러움은 무너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다시 세운다.
그는 자신의 어제를 등지고
오늘을 다시 걷기로 한다.
어제와 똑같은 걸음이 아닌,
독서와 사유가 준 의미 있는 걸음으로.
그리고 성찰의 끝에서 적어도 어제보다는
한 뼘 더 걸어 나와 그 문을 나선다.
네 번째 문 - 삶
이제야 그는 바카라상에서 일어난다.
읽은 것, 생각한 것, 비추어 본 것은
움직이는 손과 발이 되어야 하니까.
만일 자신이 방 안에만 머문다면
결국 아무것도 읽지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문장이 삶이 되지 않으면,
그 문장은 그저 아름다운 읽을거리일 뿐.
그래서 그는 걸어 나간다.
거울 속과는 조금 다른 삶을 위해서.
하지만 너무 서툴다.
자주 넘어진다.
어쩌면 다시 그 바카라상 앞으로 돌아와
같은 페이지를 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순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읽고, 생각하고, 비추고, 살아내고,
다시 읽는 이 걸음을.
그것은 그가 살아 있다는,
살아가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다시, 첫 번째 문으로
바카라은 그대로다.
첫 페이지도, 마지막 페이지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바카라을 펴는 사람은 매번 다른 사람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정직해진 사람,
어제보다 조금 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어제보다 조금 더 서툴게라도 걸어본 사람.
결국 그는 그 바카라을 다시 편다.
처음 읽는 것처럼.
그러나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그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이 네 개의 문은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끊임없이 돌아오는 원이다.
그는 그 원 안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원을 도는 걸음 하나하나가
매일 스스로 새로 태어나는 방식임을,
이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