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묻고, 실론차가 답하다
■ 「낯선 손님」, 그 두 번째 이야기
[정지]
며칠 전, 어느 영상을 보다가 한 작가가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L'Étranger)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 순간 바로 재생을 멈췄다.
그가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할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바카라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장면이다. 그 순간, 전광석화처럼 스치는 기억을 붙잡아야 했다. 무엇보다 그 기억 속으로 타인의 생각이나 해석이 섞여 들어가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면을 끄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워드로 옮겨갔다. 물이 가득 찬 비닐봉지가 터지듯, 아래의 문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억이란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존재니까. 더구나 이렇게 나이가 들면.
그날 다급히 워드 창에 쏟아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기록의 시작]
중국 내지에서 자라다 홍콩의 중학교에 입학한 뒤, 대학까지 줄곧 기숙사 생활을 이어온 학생이 있었다. 그녀가 어느 날 상담을 청했다. 자신의 감정이 스스로에게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늘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으로는 웃고 싶어도 남들이 웃지 않으면 웃지 못했다. 반대로 자신은 화가 나 있어도 주변이 웃으면 따라 웃었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분위기에 맞춰 반응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가 거짓된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 위에 죄바카라감까지 얹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사실 그건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춘기가 막 시작될 어린 나이에 낯선 대도시로 전학 온 순간부터, 그리고 뒤이은 오랜 기숙사 생활 속에서 그녀에게는 애초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한 방에서, 한 식탁에서, 하루 종일 부딪히며 지내야 하는 공동생활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고집하기보다 남의 감정에 맞추는 쪽이 훨씬 안전한 생존 방식이었을 테니까.
아무도 그녀에게 "네 감정은 접어두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생활 자체가 암묵적으로 그렇게 길들여 왔을 것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 일이 어느새 그녀에게는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날 상담 중, 나는 마치 어릴 적 나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사춘기 때 그 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액자 속 액자 - 중학교 2학년 시절의 도서관]
중학교 2학년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바카라 한 권을 발견하고 일종의 '도전'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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