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칭기스가 사라진 까닭은?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두 달

by서해



"Ony alumni discount?"(졸업생 할인 있어요?)

"Awe, Sorry, We dinna get that."(어..없어요.)


언제 들어도 신기한 스코티시 악센트와 함께 방 열쇠를 건네준 리셉션 Fiona는 가슴에 붙은 게일어 이름만 봐도 하일랜드 토박이가 확실했다. 조지안식 회색 건물 외벽에 따닥따닥 붙은 공기 입자가 싸늘했다. 고개를 들자 폴락홀(Pollock Hall) 뒤편으로 멀리 아더스 시트의 어두운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20도 밑으로 뚝 떨어진 기온에 부르르 몸을 떨면서 나는 운명처럼 에든버러에 다시 돌아왔음을 체감했다.


서른 초반, 나는 파이낸스에 마케팅을 더하는 신자유주의 셈법을 익히겠다며 회사를 설득해 에든버러 대학을 찾았다. 이번 여행에선 마침 대학이 기숙사를 섬머스테이로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폴락홀은 팀스터디하랴, 에세이 쓰랴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이다. 토마스, 잉이, 코다로, 그리고 칭기스 곰부수렌. 배정받은 225호실의 빛바랜 문고리를 잡는 순간, 삼십 년 전 이 복도를 왁자지껄 뛰어다니던 칭기스(Chinggis) 얼굴이 학교 문장처럼 또렷하게 돋아났다.



칭기스와 어울리던 폴락홀, St. Leonard 홀, John Burnett House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이다. 대학은 지금 방학이라 인적이 영 드물다.


프랑스 슬롯학자 쟈크 아탈리(Jagus Attali)는 21세기 삶의 양식을 가리켜 새로운 유목 슬롯(Nomadic Society)라고 불렀다. 예전 유목민이 양치기와 사냥꾼이었다면, 이젠 화이트칼라가 그들이다는 해석이다. 스코틀랜드에서 만난 칭기스는 '양치기'를 '지식인'으로 바꾼 가장 그럴듯한 몽골리안이었다.


칭기스는 서구 자본주의가 궁금하다며 영국에 온 쏘시얼리스트였다. 그는 일찌감치 당 간부인 아버지 힘으로 모스크바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0년대 초 몽골이 개방 경제를 선언했다. 유창한 러시아어 구사 능력과 개혁 성향으로 주목받던 그는 몽골슬롯과학원 (Mongolian Academy of Sciences) 교수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개화기엔 혼란이 따르는 법. 변화는 젊은 칭기스에겐 기회지만 낡은 보수를 이끌던 그의 아버지에겐 날 선 비수였다. 칭기스는 이 '양날의 칼'을 피해 대학 보직을 반납했다. 대신 미국 선교사들에게 몽골 풍습을 가르치며 영어를 배웠다. 그 후 선교 단체와 인연을 만들어 네덜란드 덴하그로 건너왔다. 혼란한 조국을 잠시 떠나 있기로 결정한 것이다. 덴하그에서 그는 다시 쉬브닝 장학금을 얻어 이곳 에든버러대학 대학원에 이름을 올렸다.



아더왕이 앉았다는 아더스 시트가 대학 어느 곳에서든 보였다. 중간고사가 끝나던 날, 칭기스와 나는 맥주를 사들고 올라가 처음으로 도시의 일몰을 보았다.


코아코스에선 그의 날카로운 직관이 유난히 돋보였다. 온라인 게임 내 구성원 간 갈등을 다루는 「Human Behaviour at Work」이나 소비자 심리를 분석하는 「Psychology of Financial Risk」 시간에는 모스크바 최고 대학에서 다진 계급주의 철학과 폭넓은 심리학적 인식을 보탠 그의 견해가 단연 '주머니 속 송곳'이었다.


칭기스는 늘 촌철살인이었다. 그의 해석은 사변적인 독일 녀석들의 뻣뻣한 해석을 호되게 걷어차 버리거나, 그래머스쿨 출신 몇몇 잉글리시의 황황한 사족을 냉정하게 잘라 버리곤 했다. 나는 주로 강의실 반대편에 자리했지만 그의 섬뜩한 지성을 목격할 때마다 눈물이 찔끔 날만큼 통쾌해져 헛헛한 미소를 날려야 했다. 학교에서 나는 조용했고, 아무도 그런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먼저 말을 붙인 것은 칭기스였다. 금요일 오후, 세 시간짜리 연속강의 중간에 커피 자판기를 찾았을 때였다. 계단 옆 커피 브루어는 일반 동전이 아니라 유니온 숍에서 따로 파는 전용 코인을 넣어야 했다. 50페니 동전을 들고 어쩔 줄 모르는 내게 누군가 불쑥 손을 내밀어 코인을 하나 거저 주었는데, 그가 바로 칭기스였다.



세부 과정으로 들어가자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더는 묻어가기가 어려워진 나는 꼼짝없이 하루 종일 공부에 매달리는 신세가 됐다.


그렇게 안면을 튼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쌀쌀한 밤이면 칭기스는 고비사막의 독수리처럼 검은 외투를 펄럭이며 아담퍼거슨홀에서 혼자 공부하는 나를 찾아왔다. 그는 자유를 방종으로 해석하고, 역사를 구태인 양 경시하는 몽골 슬롯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원 팔이에 나선 몽골 정부의 무소신 따위를 한탄했다. 나는 그가 입술을 실룩일 때마다 비판적 슬롯주의자의 서러운 자조와 독한 보드카 냄새를 함께 맡아야 했다.


칭기스의 외투가 바람을 일으키면 나까지도 여지없이 스산해지곤 했다. 생각해 보면 그건 그의 품속에 고인 고독이나 외로움이 독한 감기처럼 내게 사정없이 달려들었기 때문인 듯했다. 원래 그런 정감이란 견고하거나 심장할수록 엷거나 적은 곳을 찾아 흘러내리는 까닭이기에 크게 개의 친 않았다.


그날 밤도 불쑥, 그렇게 칭기스가 나타났다. 붉게 충혈된 눈빛으로 봐서 어디선가 벌써 전작이 있은 듯. 나는 죤 도슨(John Dawson) 교수의 핸드아웃 「Hyperbolic Discounting」을 읽다가 그를 맞았다. 들짐승처럼 소리 없이 주위를 서성이던 그는 켜켜한 성문(聲紋)을 울려 쥐어짜듯 말을 꺼냈다.


"인류의 역사란 없어.
오직 정치권력 역사가 인류 역사로 격상됐을 뿐이지. 한 나라 역사도 마찬가지야. 횡령의 역사, 강탈의 역사, 독살의 역사를 ‘히스토리(history)’라고 부를 뿐이라고."



학교는 24시간 문을 열어두었는데, 나 말고도 아이슬란드에서 온 히얄테, 콜롬비아에서 온 마리아가 자주 밤을 밝혔다.


나는 안경을 고쳐 쓰며, 꼰 다리를 풀었다. 그의 말투가 평소보다 유난히 비감했기 때문이었다. 칭기스의 슬롯주의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 나는 의식의 귀를 쫑긋 곤두세웠다.


"종교나 사상이 아니고 왜 하필 권력의 전후 사정이 역사란 이름으로 둔갑했을까? 틀림없이 그건 권력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종교 따윈 오직 소수에게만 힘을 미치기 때문일 거야."


칭기스가 말을 이었다.


"이봐, 코스모폴리탄 친구, 자넨 생각해 봤나? 인간이 왜 권력을 숭배하는지 말이야. 그야말로 저급한 우상숭배이며, 동굴 시대 유물이며, 또 중세의 낡은 껍질에 불과한데도 말이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애당초 대답 따윈 기대하지 않은 듯 성큼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멀어지더니만 곧 건물 출입문을 열어젖힌 듯 시끄러운 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맥골드윅(McGoldwick)의 「Financial Literacy & Choice」를 다시 펼쳐 들었다. 황당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칭기스 다운 행동으로 치부했다.


이틀이 지났다. 마침 중국인 생선가게에서 사 온 고등어를 손질하다가 생선토막을 싼 파이낸셜 타임스에 눈이 갔다. 신문은 마침 아시아 면이 위로 나오게끔 접혀 있었다. 생선 비늘과 비린 물기 사이로 '몽골 개각(Mongolia Shake-Up)'이라는 주황색 제목이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 몽골개각. 그럼 혹시 칭기스 아버지가... "



생선가게를 Fish Monger라고 쓰는데 볼 때마다 셰익스피어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학생들은 수업 중에 자전거를 도둑맞을까 봐 꼭 안장을 빼서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지난밤 칭기스의 돌연한 방문이 스르르 저 혼자 그 이유를 설명하는 듯했다. 그의 안부가 참을 수 없이 궁금해졌다. 나는 생선을 던져버리고, 손에 묻은 비린내를 닦지도 않은 채 자전거를 집어 탔다. 그리곤 그가 머무는 기숙사, 폴락홀로 싱싱 페달을 밟았다. 예상대로 칭기스는 없었다.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자 건넛방에서 상체를 벗은 호주 녀석이 나타나, 사흘 전부터 인적이 없다며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남은 학기 내내 칭기스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축출된 것일까? 도대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파이낸셜 타임스는 다시는 몽골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강의실 그의 빈자리는 전설처럼 고적해졌다. 아무리 스산한 밤이라도 그는 나를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밤이면 나는 그가 옮겨준 몹쓸 공허함에 한참 동안 정신을 놓곤 했다. 커피를 마시러 갈 때면 반드시 여분의 코인을 더 챙겨야 마음이 놓이는 버릇마저 생겼다.


스코틀랜드에서 만난 몽골의 슬롯주의 이론가. 그날 밤 내게 던진 그의 허탈한 목소릴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생각해 봐, Gadgie?(=Bro, 친구)
세상이란 결국 권력 앞에 아부하는 인간들의 장난판일 뿐이라고. 자본주의나 슬롯주의 같은 체제놀음은 인간이 추구하는 권력 쟁탈이라는 게임의 룰이고. 무슨 얘긴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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