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마침내 이니스프리에 닿다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두 달

by서해



"예이츠는 천천히 읽어야 해요. 펜과 잉크로 쓰던 시대의 문장이잖아요. 한 줄을 적다 말고 몇 번이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을, 그가 펜촉을 굴리던 적막한 속도를 선생님의 글에서도 발견했습니다."


William Butler Yeats, 여기 사람들은 '다블유비 예이츠'라고 부른다.

"저는 다음 여정 때문에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잔교 끝에 오래 머무르시던 선생님은 예이츠의 시구처럼 ‘저녁이면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그곳에서 정녕 평화를 얻으셨나요? 그게 하필 저는 궁금한지요."


H는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 꾹꾹 눌러쓰듯, 내가 올린 게시글 아래 또박또박 댓글을 적어두었다. 보기 드물게 서정적이고 단정한 안부였다.


아일랜드 여행을 계획하며 구글 이미지로 찾아본 이니스프리는 서울로 전학 온 첫 해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사투리가 낯설다고 아이들이 웃어대는 바람에 교과서를 읽다 말고 멈췄던 예이츠 서정시, '이니스프리의 호도'. 선생님마저 얼굴을 가리는 걸 목격한 그날 이후 이니스프리는 내 유년의 기억 밑바닥에 그리움과 당혹함으로 꽁꽁 묶여 난파선처럼 가라앉아 버렸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아일랜드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장소는 이니스프리였다. 구글 검색은 그곳부터 시작됐다. 더블린에서 차로 세 시간이 넘는 서쪽 끝이지만 단 하루 여백만 허락된다 해도 달려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니스프리를 마주했던 오늘, 나는 어쩐 일인지 더블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가까스로 골웨이(Galway)에 숙소를 구하고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괜한 짓을 하는구나'하는 심정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더블린 숙소에 예약 일정을 바꿔달라는 읍소부터 해야 했다. 그 와중에 네이버 카페에 이니스프리 사진 몇 장과 짧은 단상을 올렸다. 여행 정보를 빚진 부채감 때문이었지만 마음이 괜히 공교로워진 탓이기도 했다.



구글맵에서 Isle of Innisfree Jetty라고 치면 이곳으로 데려다준다. Jetty는 배가 닿을 수 있도록 다리 모양으로 만든 구조물, 잔교(殘橋)를 말한다.






기억하시는지요. 중학교 2학년 국어 선생님이 읊조리던 예이츠 시.


"나는 이제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아홉 이랑 콩 밭 갈며, 꿀벌도 치고..."


그 시절엔 '호도(湖島)'라는 말 뜻조차 모른 채 음미했는데, 와서 보니 안개 낀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섬', lake isle을 말하더군요.


여기는 아일랜드 서쪽 끝 '슬라이고(Sligo)'라는 곳입니다. 마을 외곽 길가 나무 밑에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포장이 끝난 숲길을 30여 미터 걸으면 별안간 넓은 호수가 눈앞을 가로막습니다. 이곳 사람들이 '로흐 길(Loch Gill)'이라고 부르는 호수, 그 먹먹한 물 한가운데 작은 섬 이니스프리가 떠 있습니다.


방과 후 청소를 하다 말고 교실 창가에서 시를 외던 소년은 머리가 희끗해지도록 세월이 지나서야 그리움의 소금기를 찾아 예까지 당도했습니다. 제 오랜 마음속 여정이 비로소 호수 앞에 멈춰 섰습니다.






방금 올린 게시글에 거짓말처럼 답글이 달렸다. 더블린 숙소에서 일정변경은 곤란하다는 메시지가 막 도착했을 때였다.


"어머나, 세상에.
제가 찍어드린 사진을 이렇게 볼 줄은요. 신기하고 또 반갑습니다.
저 조금 전까지 같은 시각, 그 잔교에 함께 있던 한국인(?)이랍니다.
선생님은 더블린을 떠나 온 후 길에서 만난 유일한 한국 분이셨어요.
휴대폰 너머 예사롭지 않던 뒷모습, 또 요란하지 않은 말본새가 인상 깊었거든요."



이니스프리는 흙집 짓고, 콩밭 갈고, 꿀벌 칠 정도로 크지 않았다. 예이츠가 외갓집이 있는 슬라이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일한다는 H는 3주간 휴가를 내 아일랜드를 여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녀가 건넨 문장을 읽으며, 잔교 끝에 앉아있던 늦은 오후를 돌아보았다. 머리 위로 작은 새 한 마리가 허공에 금을 긋고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하늘에는 새의 발자국이 남아있지 않았다. 눈을 감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뒤따랐다.



까마득한 중학생 시절, 교실을 부유하던 아이들 웃음과 칠판을 탁탁 치던 선생님 백묵 소리. 서울 변두리 중학교 동창들은 나만 빼고 다들 상도터널, 장승배기, 이화약국 같은 비숫한 테두리에서 자랐다. 내 유년은 그들과 사뭇 달랐다. 내게 이니스프리는 경상북도 월성 군 산골 동네를 대신한, 문학기법으로 치면 '객관적 상관물'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바램의 끝에 마침내 난파선 잔해에 다다른 셈이었다.


순간 누군가 다가와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여기, 언젠가 한번 와본 데 같지 않아요?" 놀라 홀연히 뒤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내 안에서 흘러나온 우연한 목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미국 작가, 존 케닉(John Koenig)이 말한 '아네모이아(Anemoia)'의 순간과 같았다. 겪어본 적 없는 19세기 시인의 시공간에 발을 들이자 오랫동안 그를 장악했던 결핍과 향수가 왈칵 내게로 밀려와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졌다.





"정녕 평화를 얻으셨나요?"


H의 댓글 마지막 문장에서 마우스 커서가 깜박거렸다. 그 물음은 내 침묵의 정중앙을 가만히 두드렸다. 슬라이고를 향했던 바깥세상에서의 여정과 유년의 상처를 짚어온 내면으로의 침잠이 H의 댓글을 통해 의식의 잔교 위에서 다시 한번 교차했다.


사실 이니스프리섬 자체는 대단한 풍경이 아니었다. 외로운 섬 하나와 잔교를 때리는 미약한 물소리가 전부였다. 그러나 수십 년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그리움이 현실의 호수에 닻을 내리는 순간, 한없이 깊고 오래된 안식이 안개처럼 피어났다. 시인이 노래한 홍방울새 날개 소리는 새의 깃털이 만드는 파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길을 잃고 헤매던 마음이 비로소 안온해지며 내는 나지막한 울림이었다. 두 여정은 그렇게 재회의 악수를 나누었다.



이니스프리에서 북쪽으로 차로 30분 거리 Drumcliff Church 마당에 예이츠가 묻혀있다.

나는 게시글 아래 '답글 달기'를 눌렀다. 예이츠가 창밖을 내다보며 펜을 멈추었을 속도로 자판 위를 서성거렸다.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마주한 것은, 그리움 끝자락에서 저를 기다리던 오래된 평화였습니다. 이니스프리란 말이 '섬'(inish)과 '평화'(free)라는 게일어였더군요."


긴 설명 대신 담백한 심정 몇 마디만 적었다. 낯선 타국 호숫가에서 스쳤던 여행자끼리 나누는 대화인만큼 밝은 아침에 읽어도 남사스럽지 않게 말수를 줄였다. 답글을 남기고 노트북을 닫으려는 순간,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대댓글 불빛이 반짝였다.


잔교 주위를 서성이던 바람이 기를 쓰고 따라와 창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젖은 바람엔 홍방울새 뒤척임이 묻어 있었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노트북을 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