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와 영국에서 두 달
다 왔다.
여기는 런던 동부 해크니(Hackney), 가는 곳은 붉은 벽돌 골목길에 있는 '잭 벨몬트 바버'(Jack Belmont Barbers). 은은한 스카 음악과 커피 향이 흘러나오는 작은 문을 열자, 구석 쪽 의자에서 이발도구를 정리하던 스물여섯 살 청년 샘(Sam)이 아는 척을 한다. 들어설 때까지 팽팽하던 경계심이 그의 덤덤한 눈인사 한 번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러니까 오늘은 버킷리스트 하나를 해치우는 날이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뜬금없이 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로컬 이발소에서 현지 스타일로 '머리 깎는 거'였다. 마침 며칠 전부터 덥수룩해진 뒷머리가 자꾸 목을 덮길래 '그럼, 어디 이번에' 하면서 인스타그램을 뒤져 예약을 마쳤다. 그러고는 덜컥 겁이 나 몇 번이나 예약을 취소할 뻔했다. 하지만 프로필 상단에 써놓은 한 줄 문장이 끝내 캔슬버튼을 누르지 못하도록 붙잡았다. 그건 "We don't just cut hair; we trim away yesterday."(우리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어제를 털어냅니다.)였다.
샘의 손짓을 따라 의자에 앉았다. 낯선 도시의 이발소 거울 앞에 앉는 것은, 그 도시의 가장 깊숙하고 생생한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머뭇대며 어떤 스타일이 유행이냐고 묻자 샘은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그야, 스킨 페이드죠."(Definately, Skin Fades.)라고 대답했다. 이건 옆머리와 윗머리의 경계를 짧고 정교하게 치는 쇼트커트다. 문제는 2주만 지나도 라인이 뭉개지기에 끊임없이 가꿔야 하는 참 피곤하고 정직한 머리 모양이다.
벽에는 밀레의 <만종>이나 새끼 돼지가 젖을 빠는 식의 예스러운 그림 대신, 칠이 벗겨진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거품 솔을 데우는 연통이나 면도날을 세우는 가죽 끈은 아니지만 내심 반가웠다. 액자엔 우리나라 '옛날 목욕탕체'에 해당하는 세리프(Serif)체로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TO BE HAPPY FOR A DAY, GET A HAIRCUT."(하루 동안 행복하고 싶다면 이발을 하라.) 서머셋 모옴의 문장이라 했다.
커트 요금은 35파운드. 팁은 없다고 했지만 나는 보란 듯 5파운드 지폐 한 장을 꺼내 작업대 위에 올려놓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이따 맥주나 한잔해요."(Buy yourself a pint!) 영국은 팁 주는 게 미국처럼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받은 서비스가 마음에 들 때 내놓는 자발적인 감사 표시다.
카드결제 단말기에서 <No Tip>을 눌렀다고 아무도 기분 나빠하거나 눈치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바쁜 땅에서 머리 깎는 기술 하나로 버티는 젊은이의 고단함에 건네는 소박한 위로이자, 타인의 삶 속을 여기저기 들여다볼 생각에 미리 기름칠을 한 거였다.
사실 샘은 이 매장에 고용된 직원은 아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점주에게 의자 임대료(Chair Rent)로 220파운드를 현금으로 내고, 그 의자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을 챙기는 '1인 사장님'이다. 해크니 공립학교를 나온 열여섯 살에 남들과 다른 길을 택한 그는 코번트 가든의 '런던스쿨 오브 바버링(London School of Barbering)' 12주 과정을 수료했다. 매일 수십 명의 머리를 깎으며 국가인증자격증(NVQ)을 딴 뒤 바로 현장으로 뛰어든 케이스이다.
"미용 학교를 마쳤을 때, 당장 제 명의로 가게를 차리는 건 불가능했어요. 보증금에 임대료, 세금까지 수만 파운드가 드니깐요. 하지만 'Rent-a-Chair'는 가위 세트와 바리깡(Clipper), 일주일 치 임대료만 있으면 런던 한복판에서 제 사업을 시작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셰필드의 공장에서 평생 용접기름을 묻히며 살았고, 어머니는 동네 테스코(Tesco)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으셨다. 샘이 사년간 주유소와 펍에서 알바 뛰며 모은 돈으로 스무 살에 LSB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용접 토치와 장비를 담는 가죽 케이스를 건넸다고 했다. 샘은 그걸 가위집으로 쓰고 있었다. 런던의 비싼 집세를 감당하며 자기 가게를 꿈꾸는 샘의 억척스러움은, 결국 그 부모가 평생 몸으로 써 내려간 삶의 내력이었던 셈이다.
샘의 하루는 인스타그램 알림음과 함께 시작된다. 점주가 손님을 받아 나눠 주는 게 아니라서 샘 같은 1인 바버샵은 우리나라 '카지노헤어샵'과 비슷한 헤어 플랫폼 Fresha(프레샤)에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sam_cuts_ldn)을 링크해서 손님을 직접 찾아야 한다. 공치는 날에도 임대료는 나가기 때문에 처음 6개월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요즘에야 남성 그루밍 열풍으로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은 빡세졌다.
런던에서 홍대 앞 편의점만큼 눈에 치이는 게 바버샵이다. 영국 전역에 2만 개, 런던에만 수천 개가 밀집해 있다. '온라인'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지 못한 TOP SHOP 같은 대형 의류 매장이 문을 닫고, 레코드샵 HMV나 토마스쿡이 파산하는 동안에도 머리 깎는 일만은 인터넷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기에 이발소는 꾸역꾸역 살아남았다. 바리깡과 의자만 있다면 특별한 학벌도, 거창한 자본도 필요 없는 바닥이라서 고만고만한 청춘들은 저마다의 가위를 쥐고 온몸으로 부딪치는 중이란 말이다.
"이 의자가 제 매장입니다. 점주 눈치 볼 필요 없이 원하는 음악을 틀고 단골들과 이야기 나누죠. 대박을 터트릴 수는 없지만, 내 기술로 독립적인 삶을 꾸려간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자꾸 헤어드라이어 줄이 얼굴을 스치길래 그걸 치우려다 그만 그의 소매 끝을 쥐고 말았다. 영국에선 상대의 관심을 집중시킬 때 옷 단추를 잡는다고 해서 '버튼홀딩(Button-holding)'이란 말을 쓰는데, 어쩌다 딱 그 꼴이 됐다. 거울 속 샘이 씩 웃으며 머리를 털어내던 드라이어 바람을 멈췄다. 아무 말 않고 있기가 어색해진 나는 그 틈에 얼른 물었다. 한 달에 얼마나 버는지, 또 버는 걸로 이 날강도같이 비싼 도시에서 정상적인 삶이 유지되는지를.
"여기선 숨만 쉬며 사는데도 통장에 쟁이는 돈이 한 달에 500파운드(약 87만원) 정도예요. 제 이름이 새겨진 바버샵 간판을 거는 게 목표인데, 그러려면 적어도 25,000파운드는 필요하거든요. 앞으로 꼬박 4년은 더 가위질을 해야 합니다."
4년이란 스물여섯의 그에게는 까마득할 시간이다. 세 명이 함께 쓰는 로어 클랩턴(Lower Clapton)의 플랫 셰어 방 한 칸으로 돌아갈 샘의 뒷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금요일 밤 펍에서의 맥주 한 잔, 차곡차곡 쌓이는 통장 잔고와 인스타그램 예약을 확인하며 그는 이 비싼 도시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새 손질이 다 끝났다. 깔끔하게 정돈된 뒷머리를 쓰다듬다가 나는 살짝 부끄러운 마음이 되었다. 단 하나의 의자 위에서 정직하게 가위를 쥐는 청년의 손끝 앞에서, 더 많이 가지지 못해 누군가를 미워하고 세상의 야박함만 탓했던 서울에서의 내 모습이 거울 너머로 겹쳐졌기 때문이다.
다음 예약 손님을 준비하는 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스물여섯의 샘도, 미련하게 성공을 쫓던 나도, 결국 저마다의 작은 의자 위에서 각자의 삶을 버텨내야 하는 고독한 이방인일 것이다. 도망치듯 떠나온 나의 여행에서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할 이유가 짧게 쳐올려진 뒷머리처럼 명확해지고 있었다.
밖은 붉은 벽돌 골목 너머로 런던의 해가 낮게 기울고 있었다. 어제를 너무 많이 털어낸 것은 아닌지. 헛헛한 마음에 길가에 구르던 빈 페트병을 걷어찼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얻으려 끊임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방금 떠나온 해크니의 낡은 이발소 의자가, 묵직한 여운을 담아 답해오는 듯했다.
"삶이란 대단한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아니야. 그건 내게 허락된 작은 의자 하나를 온전히 지켜내는 일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