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라는 답장을 여섯 번 받았다.

검증받으러 갔는데, 서류에서 멈췄다

by산에태양

창업을 하기로 한 건 하반기였다.

예비창업자 지원 프로그램부터 찾았다. 그런데 찾을수록 이상했다. 눈에 띄는 공고는 대부분 접수가 끝나 있었다. 중장년 대상 프로그램은 특히 그랬다. 상반기에 공고가 나고, 하반기에 들어서면 이미 선발까지 끝난 곳이 많았다. 결심은 늦었고, 프로그램은 먼저 닫혀 있었다.

그래도 찾았다. 공고를 열고, 마감이 지난 곳을 지우고, 남은 곳을 따로 적었다. 찾고 또 찾아서 여섯 군데에 지원했다.

지원서에는 신분을 적는 칸이 있었다. 예비창업자. 대표이사라고 적어온 자리에 그 단어를 적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손이 한 번 멈췄다.

아이디어는 세 가지를 준비했다.

첫 번째는 중소·중견기업이 어렵게 느끼는 통합 리포트 플랫폼이었다. 두 번째는 중년을 위한 모자이크 사업이었다. 세 번째는 중소·중견 제조기업을 위한 AI 기반 에너지 효율 플랫폼이었다.

첫 번째 답장은 짧았다.

"죄송합니다."

선정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떨어질 때마다 고쳤다. 아이디어를 손보기도 했고, 아예 다른 아이디어로 바꿔서 지원하기도 했다. 사업계획서를 쓰는 일은 낯설지 않았다. 27년 동안 쓰기도 했고, 판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는 같았다. 죄송합니다, 라는 답장이 또 왔다.

마지막으로 지원한 곳이 수원시 창업지원 프로그램이었다. 에너지 효율 플랫폼이었다.

이 내용은 이미 다른 국가 과제 제안서에서 통과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창업 지원서 형식에 맞게 대폭 고쳐서 다시 정리했다. 기후테크, 에너지 관리 분야였다. 이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메일 한 통으로 끝났다. "아쉽게도"로 시작하는 메일이었다. 이유는 역시 없었다. 지원자가 많았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쯤 되니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디어가 문제인지, 문서가 문제인지, 나라는 사람이 문제인지. 서류에서 떨어지는 데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걸 이력서로 한 번 겪었는데, 같은 일이 다른 모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마지막 탈락 뒤에, 창업지원 사업에 내는 서류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치는 교육을 신청했다.

솔직히 자존심이 약간 상했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판단해온 사람이 사업계획서 쓰는 법을 배우러 간다는 게 그랬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들었다.

강사는 여러 창업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먼저 경쟁률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리 낮아도 수백 대 일이라고 했다. 이름난 프로그램은 천 대 일이 넘는다고도 했다.

나는 그 숫자 앞에서 당황했다.

그다음에 나온 말이 더 오래 남았다.

심사위원은 아이디어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실현 가능한 대상과 숫자를 본다고 했다. 떨어지는 계획서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시장이 크다'로 끝나는 시장 분석, '혁신적이다'로 끝나는 기술 설명, '점차 확대될 것이다'로 끝나는 매출 계획. 세 가지가 전부 막연하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 떨어질 때마다 아이디어를 고쳤다. 아이디어가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심사위원은 애초에 아이디어를 보고 있지 않았다.

강사는 강의 내내 한 문장을 칠판처럼 띄워놓고, 섹션이 끝날 때마다 빈칸을 하나씩 채워갔다.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까지, 얼마에 팔 수 있나.

그가 든 예는 30조 원 규모의 시장이었다. 그 숫자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한 동네의 필요한 사람 1,200명, 그중 이번 달 만날 수 있는 스무 명을 말해야 한다고 했다. 심사위원의 속마음은 늘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중 당신 몫이 얼마죠?"

'불편하다', '비효율적이다' 같은 말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고도 했다. 심사위원은 몇 분이 몇 분으로 줄어드는지를 묻는다는 것이다.

몇 명이 붙습니까. 며칠 동안 합니까. 산정 근거가 무엇입니까.

내가 외주 견적서를 받아놓고 늘 물어온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받는 쪽이었다.

가격 이야기에서는 또 한 번 멈췄다.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사람은 많은데, 가격표까지 만든 사람은 소수라고 했다. 25화의 2주가 떠올랐다. 일주일 만에 답을 알았는데, 값을 어떻게 매겨야 할지 몰라 시간으로 채우던 나였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낸 서류를 열었다.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까지, 얼마에.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칸이 있었다. “1인이 운영하는 중소 제조사 전력 절감·설비 이상탐지 AI 에이전트 서비스”

그 문장을 읽다가 26화가 떠올랐다. 홈페이지 첫 화면을 만들며 "이건 과거의 나를 자랑하는 문장이다"라고 지웠던 때였다. 서류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력서에는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가 적혀 있고, 사업계획서에는 누가 돈을 낼지가 적혀 있어야 하는데, 나는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했다.

27년 동안 나는 읽는 쪽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읽히는 쪽이었다. 수백 장 중 한 장으로.

27화에서 나는 검증받으며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검증받기도 전에, 서류 한 장 단계에서 걸러지고 있었다.

결국 내가 쓴 것은 사업 계획이 아니라 내 이력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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