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받지 못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종이에는 다섯 줄이 적혀 있었다. 다섯 번째 줄, 내 이름으로 직접 판다에는 동그라미를 치지 못했다.
계속 판단을 받는 쪽으로 가는 게 맞는지, 내가 나를 브랜드로 세워 창업하는 게 맞는지. 낮에는 한쪽으로 기울었고 밤에는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밤새 붙잡고 있던 건 길의 문제가 아니었다. 돈의 문제였다.
나는 그때까지 움켜쥐고 지키려는 쪽이었다. 가진 자산을 줄이지 않는 것이 먼저였고, 길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려는 길은 시간이 필요한 길이었다. 얼마나 필요한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불안하지 않게 버틸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같은 계산을 몇 번이고 다시 했다. 일주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다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짐 캐리가 나오는 〈트루먼 쇼〉였다.
왜 하필 그 영화였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그 무렵의 내 하루를 적어 보면 이랬다.
아침에 일어난다. 같은 시간에 운동을 나간다. 비슷한 시간에 담배를 피운다. 비슷한 시간에 햇볕을 쬐러 나간다.
그 시간의 풍경도 늘 같았다. 아저씨는 공용 운동기구에서 열심히 몸을 흔들고, 아주머니는 허리를 돌리고 있다. 할아버지는 운동기구 앞에 앉아 라디오를 듣는다. 경비 아저씨는 그때쯤 청소를 하고, 어린이집 아이들은 선생님과 빈 농구장으로 와서 논다.
어제도 그랬고, 그저께도 그랬다.
그러다 문득 내가 사는 세상이 세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곳. 나도 그 안에서 같은 시간에 나가고 같은 시간에 돌아와, 다음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 속 그 사람은 결국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문이 어디 있는지 찾지도 않았다.
그날 나는 내 이름을 걸고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1인용 브랜드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었다.
법인은 만들지 않았다. 자본금도 등기도 없었고, 대표이사라는 직함도 없었다. 27년 동안 직함이 하던 일을 이번에는 이름이 하기로 했다. 나를 브랜드로 세우는 1인 사업자. 그렇게 정했다.
정하기 전에 확인한 것은 하나였다. 1년이었다. 1년 동안 내 일을 해 볼 수 있다는 판단. 그 1년을 불안하지 않게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서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무모하게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정하기 전에 확인한 것은 하나였다.
멈추는 기준선은 정하지 않았다. 1년 뒤에 그때 가서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무서워한 건 창업의 실패가 아니었다. 선택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여섯 번의 서류는 모두 같은 자리에서 시작했다. 나를 읽을 사람 앞에 내가 놓이는 자리. 지원서를 낼 때마다 그 두려움은 조금씩 커졌다. 이름을 걸고 나니 그 자리에서 내려와 있었다. 고객이 나를 고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그 답을 서류함 앞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검증은 받기로 했었다.
심사위원이 아니라, 내 일을 쓰게 될 사람에게 받기로 했다.
그날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