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엄마의 예고 입시 관찰기
돌아보면 딸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오감이 유난히 예민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랐고, 옷 끝에 달린 거친 라벨 하나도 견디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참 예민한 아이가 태어났구나' 하며 육아의 고단함만을 탓했던 것 같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관찰, 도우미 이모님의 조언,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시선이 모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이는 단순히 까탈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상의 여러 감각을 남들보다 훨씬 섬세하게 인식하는 기질을 타고났다는 것을.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나중에 예술을 하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요"라며 넌지시 미래를 점치기도 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 내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그저 '설마'라는 인색한 단어였다.
오랜 기간 엔지니어로 살며 숫자가 주는 명확한 안정감에 갇혀 있던 내게, 예술이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머나먼 은하계의 이야기였으므로. 나는 그렇게 아이의 기질을 슬그머니 외면했다.
그런 아이가 자라 중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 불쑥 폭탄선언을 던졌다.
"엄마, 나 미술 해야겠어. 그걸 제대로 하려면 예고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이가 자라면서 장래희망은 수시로 바뀌었지만, 이번만큼은 눈빛의 밀도가 달랐다.
무엇인가 확신에 찬 아이의 모습 앞에서, 오히려 내 심장이 먼저 덜컥 내려앉았다.
'예술을 하면 밥 벌어먹기 힘들다던데...'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이기 전, 본능적인 불안감이 파도처럼 엄습했다.
방으로 돌아와 홀린 듯 PC를 켜고 검색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엔지니어로 사용했던 뇌가 '리스크 분석'을 위해 풀가동되는 순간이었다. 지금 시작해서 예고에 입학할 수 있는 확률, 소요되는 비용, 그리고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기회비용까지. 머릿속의 냉정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인터넷 속 입시 미술의 세계는 냉혹했다. 빠른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붓을 잡았고, 이미 엘리트 코스라 불리는 예중이나 예원학교 출신들이 탄탄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다. 게다가 예고에 어렵사리 입학하고 나서도 문제였다. 전국에서 날고 기는 천재들 사이에서 끝없는 비교를 당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좌절하고 무너진다는 우려 섞인 글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장 현실적인 벽은 돈이었다. 전문 미술 입시학원의 문턱을 넘는 순간, 매월 수백만 원씩 쏟아부어야 하는 경제적 압박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범한 온라인 게임인 부부의 가계부가 감당하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무게였다. 이 도전을 정말 시작해도 되는 걸까, 손가락이 무거워지던 그때 뜻밖의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미술은 다른 예체능(음악, 체육, 무용)에 비하면 숨통이 트이는 편이에요. 악기 값이나 레슨비에 비하면 너무 싸죠."
악기 하나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음악 입시에 비하면 4B 연필과 물감 값은 양반이라는, 어느 선배 엄마의 눈물겨운 조언이었다. 그 글을 보며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다' 하고 안도감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매월 수백만 원이 나갈 판국에 겨우 상대적인 금액을 비교하며 위안을 얻다니. 참 웃프고도 서글픈 학부모의 현실 자각 타임이었다.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빛을 보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출발선, 불투명한 합격 확률, 그리고 휘청거릴 가계부까지. 계산기의 결괏값은 온통 빨간색 경고등뿐이었다.
하지만 숫자로 가득 찬 화면 너머로,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미술을 하겠다'던 중학교 2학년 딸아이의 단단한 얼굴이 겹쳐 보였다. 성공 확률이 낮다고 해서,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서 인생의 첫 번째 열정을 마주한 아이의 손을 기성세대의 계산법으로 꺾어도 되는 걸까.
나는 조용히 PC의 전원을 껐다. 확률을 계산하는 냉정한 엔지니어 엄마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정답이 없는 도화지 위로 외로운 레이스를 시작할 딸을 위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고 현실적인 페이스메이커가 되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통장 잔고는 조금 가벼워질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