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엄마의 예고 입시 관찰기
남편은 대입 수능을 고작 몇 개월 코앞에 두고 아버님을 여의었다. 고3 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시기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이별.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슬픔 속에서도 남편은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공부해 명문 공대에 진학했다. 철이 일찍 들어버린 남편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홀 어머니 혼자서 본인과 남은 두 동생의 학비, 그리고 네 식구의 살림을 바카라임져야 한다는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욕망이나 슬픔을 돌볼 겨를 없이, 남편은 그저 악착 같이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엔지니어의 세계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간 남편은, 사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리 좋았다.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드는 눈썰미도 뛰어났고, 색을 다채롭게 조합하는 감각도 탁월했다. 학창 시절 남편의 손을 거쳐 간 과제물이나 소품들은 언제나 주변의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빛을 보지 못했을 뿐, 남편의 안에는 아주 단단하고 아름다운 예술적 세포가 숨 쉬고 있었다.
그랬던 남편이었기에, 딸아이가 미술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반응은 나와는 사뭇 달랐다.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던 나의 걱정 어린 시선과 달리, 남편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실패를 하더라도 괜찮으니 무조건 도전해 보라"며 아이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이성적인 엔지니어의 회로가 켜진 나는 남편에게 앞으로 아이가 겪어야 할 험난한 입시 과정과 만만치 않은 비용, 그리고 미래의 불투명함 같은 현실적인 걱정거리들을 한 아름 털어놓았다. 당장 매달 나갈 학원비 계산서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남편은 "이것 또한 아이가 성장하는 값진 과정"이라며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속이 타 들어 가는 나로서는 그저 속 편한 부처님 같은 소리로만 들렸다.
그런데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새벽 거실을 지나다 뜻밖의 풍경을 목격했다.
식탁 조명 하나만 나직하게 켜진 거실, 남편이 홀로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딸아이가 학원에서 상담을 받으며 끄적여온 거친 연필 스케치와 두꺼운 입시 자료집이 놓여 있었다. 남편은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채,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딸아이의 스케치북 면을 가만히 쓸어 내리고 있었다. 거친 4B 연필 가루가 묻어 나는 도화지를 만지는 남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본 순간,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걸 수 없었다. 그것은 딸아이의 재능을 기특해하는 아빠의 시선만은 아니었다. 30년 전, 지독한 형편 때문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가슴 깊은 곳에 묻어야 했던 한 소년의 서글픈 동경이 그 눈에 고스란히 고여 있었다.
어머니의 희생을 보며 감히 미술을 하고 싶다는 철없는 소리를 삼켜야 했던 열아홉살의 남편. 취업이 잘되는 공대에 가 하루빨리 장남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 유일한 도리라 믿었던 그 소년이, 지금 딸아이의 도화지 위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남편은 자신이 차마 열어보지 못했던 문을 거침없이 열고 나아가는 딸의 용기를 보며, 비로소 오랜 결핍과 위로를 동시에 받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왜 그토록 대바카라 없이 아이의 꿈을 환영했는지, 왜 현실적인 내 걱정 앞에서도 허허 웃으며 부처 같은 소리만 늘어놓았는지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남편에게 이것은 단순한 '아이의 입시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다 펴보지 못하고 묻었던 오랜 예술에 대한 열망이, 딸아이의 손끝을 빌려 다시 세상 밖으로 숨을 쉬기 시작한 이어 달리기였다.
내가 두드렸던 차가운 계산기는 남편의 묻어둔 마음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묵묵히 숫자의 세계를 버텨온 남편의 삶 뒤편에서, 가장 따뜻한 예술의 유산이 아이에게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지독한 현실에 막혀 피지 못했던 아빠의 꿈이 이제 딸아이의 손끝에서 피어날 차례였다. 나는 거실의 작은 불빛 아래에서 두 사람의 꿈을 이제는 의심 없이 단단하게 지켜주겠노라 조용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