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조지아, 작은 나라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유라시아 기행 트빌리시

by김별


터키 북동쪽에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3나라를 흔히 코카서스 3국이라 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코카서스(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지역)의 나라 조지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는 15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고도이자 과거 실크로드의 교역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있다.


5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아제르바이잔이 터키처럼 이슬람국임에 반하여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4세기부터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오래되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교회들이 많다.


트빌리시 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강한 나라만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끝내 살아남은 나라도 역사를 만든다.

조지아의 트빌리시는 이름부터 따뜻하다.

조지아어 '트빌리(Tbili)'는 '따뜻한'이라는 뜻이다.

도시 곳곳에서 솟는 유황온천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며칠 동안 이 도시를 걸으며 내가 느낀 따뜻함은 온천보다 사람들이었다.

그 따뜻함은 수천 년 동안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간직한 온기처럼 느껴졌다.



제국들이 반드시 지나가야 했던 땅


조지아를 이해하려면 먼저 지도를 펼쳐야 한다.

코카서스산맥 남쪽.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북쪽에는 러시아, 남쪽에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동쪽에는 아제르바이잔이 자리한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길목.

실크로드가 지나던 관문이다.


이 지리 덕분에 조지아는 오래전부터 동서 문명이 오가던 통로가 되었다.

그러나 축복이었던 위치는 동시에 운명이기도 했다.


페르시아가 지나갔다.

로마가 지나갔다.

아랍과 몽골이 지나갔다.

오스만과 러시아도 이 땅을 차지하려 했다.


강대국에게 조지아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서 이 나라는 역사 내내 국경이 아니라 전쟁터에 더 가까웠다.



끝내 사라지지 않은 나라


1801년 조지아는 러시아 제국에 병합되었다.

1918년 잠시 독립했지만 곧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되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다시 독립을 되찾았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분쟁.

2008년 러시아와의 전쟁.


지금도 국토 일부는 사실상 러시아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그런데도 조지아는 끝내 조지아로 남았다.

나라를 지킨 것은 군사력이 아니었다.

자신들만의 문자였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독자적인 조지아 문자.

그리고 정교회 신앙이었다.


외세가 바뀔 때마다 왕조는 무너졌지만 언어와 신앙은 무너지지 않았다.

문화가 나라를 지켜 낸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도시


청소와 친절을 보고 택한 숙소는 평화의 다리 근처였다.

가방을 던져주고 바로 나가 보니 구비치는 쿠라강물 위로

파란 곡선의 다리가 눈에 들어오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럽의 붉은 지붕의 구시가지가 이어졌다.


구소련의 회색 도시를 상상했다면 완전히 빗나간 예상이다.

트빌리시는 오랜 골목과 유라시아의 정취,

그리고 소비에트의 흔적이 한 도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곳이었다.

반질반질한 돌 자갈이 박힌 구 도로를 걸으며 광장의 길거리 음악을 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세운 도시


트빌리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나리칼라 요새다.

4세기 페르시아인들이 처음 세운 이 요새는 이후 아랍과 조지아 왕조가 차례로 확장했다.

절벽 아래로 쿠라강이 흐르고,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올라서니 왜 수많은 제국이 이 온천 도시를 차지하려 했는지 이해되었다.


요새에는 '조지아의 어머니'가 도시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왼손에는 와인잔.

오른손에는 칼.

친구에게는 와인을 내어주고 침략자에게는 칼을 든다는 뜻이다.

이 한 조각상 안에 조지아의 역사가 모두 담겨 있었다.


환대와 저항.

평화와 생존.

이 나라는 두 가지를 함께 배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신앙이 나라를 지키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곳은 '조지아 연대기'였다.

거대한 기둥마다 왕들과 영웅들이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성경이야기, 그리스도의 생애가 새겨졌다.

마치 돌로 만든 역사바카라 같았다.


조지아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 가운데 하나다.

수많은 외세가 왕조를 바꾸었지만 정교회만큼은 민족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었다.

교회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껴졌다.

잠시잠간이라도 그냥 휘리릭 들어왔다가 나가는 게 아니라

성화에 손을 대고 입 맞춤을 하며 진심어린 그들의 모습에서

이들에게 신앙은 종교가 아니라 애국, 애민, 애족,

그리고 가족과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 그 자체인 듯한 모습이었다.



따뜻한 사람들


숙소 주인 부부도 잊히지 않는다.

아침마다 여주인 마야는 직접 만든 꽃 장식을 보여 주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자 따뜻한 차부터 내어주었다.


며칠 뒤 옮긴 숙소에서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노부부가

밤늦게 와서 난방이 잘 되는지 확인하고 갔다.

나중에는 말이 통하지 않자 영어를 하는 딸까지 데려와서 그 마음이 충분히 전해졌다.

개인 사람이든 나라든 민족이든

상처를 견딘 삶 일수록 친절은 더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은 시간을 담는다


조지아를 이야기하면서 와인을 빼놓을 수 없다.

"물보다 와인에 빠져 죽는 사람이 더 많다."

농담같은 그들의 속담에 자부심이 담겨 있다.

조지아는 약 8천 년 전부터 와인을 빚어 온 나라다.


거대한 항아리를 땅속에 묻고 포도껍질과 줄기까지 함께 숙성시키는 방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와이너리 탐방을 한 카헤티 지방에서 마신 와인맛은 화려하다기 보다는 깊었다.

긴 시간을 견뎌야만 얻을 수 있는 맛.

어쩌면 조지아의 역사와 닮아 있는 맛인지도 모른다.



따뜻한 도시의 진짜 의미


예상보다 길게 열흘을 머물게 된 트빌리시를 떠나는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도시'라는 이름은 유황온천 때문에 붙었다지만 내가 만난 따뜻함은 땅속에서 솟는 온천이 아니었다.

페르시아와 로마, 몽골과 오스만, 러시아까지 수많은 제국의 침략을 견디면서도 사람의 온기와 그들 고유의 문화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강대국 사이 소국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된 우리와 겹치는 동병상련이랄까


강한 나라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잃지 않는 나라가 살아남는다.





유라시아의 역사는 거대한 제국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거대한 물결 속에서도 끝내 언어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고, 문화를 지켜 낸 작은 나라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처음에는 조지아가 여행 가성비가 좋고 친절한 나라로만 알고 찾아갔었다. 그런데 정말 일견을 하고 보니 조지아는 코카서스의 산맥처럼 묵묵히 버텨 온 나라였고, 그 긴 생존의 역사 끝에서도 사람의 따뜻함을 잃지 않은 도시였다.


서유럽의 종교가 제국주의와 함께하며 온실 속 화초처럼 안일해졌다면, 동유럽의 신앙은 핍박받는 황무지에서 도리어 강인한 생명력을 얻었다.


택시 투어 중 들렀던 교회에서 기사 아저씨가 잠간만 하며 촛불을 켜며 기도할 때, 나는 그들이 신앙을 어떻게 일상의 버팀목으로 삼고 있는지 피부로 느꼈다.


조지아 인구의 두 배나 되는 800만 명의 여행객이 이 작은 나라를 찾는 비결은, 결국 그 척박한 역사를 견뎌낸 단단한 정신력과 그를 보듬은 문화유산에 있다 보여진다.

역사 속에서 강대국에 끊임없이 공격당하며 처자식을 보호해야 했던 조지아 남자들에게서 느껴지는 다소 마초적 기질 역시, 실상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한 고단한 보호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니 연민이 일었다. 예정보다 두 배나 긴 시간을 머물렀지만, 떠나는 순간 가장 먼저 다시 돌아오고 싶어진 곳도 트빌리시였다.

러시아에서는 오랫동안 '그루지아'라 불렸고, 오늘날 세계는 '조지아'라 부르지만,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내게 이 나라는 코카서스의 산맥처럼 묵묵한 강인함과 사람의 온기를 함께 간직한 곳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여주인 마야의 드라이플라워 작품이 있는 숙소 레스토랑


여기서 혼밥을 먹어도 골목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이 재밌있었다


어딜 가도 음식은 안 가리지만 국물녀라 스프를 잘 시켜 먹었다


10년전 만든 평화의 다리는 트빌리시의 트레이드 마크다.


터키,아제르바즈안 3국으로 흐르는 쿠라강은 이 곳이 상류라 급물살이다



석류 과일쥬스가 진짜 맛있다


조지아 알파벳

소세지 처럼 생긴 견과류,포도즙,밀가루가 들어간 조지아식 간식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해서 아들이 걱정했지만 내가 여행했던 22년 5월에 전쟁난민들은 들어와도 여행하는데는 안전했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트빌리시 자유의 광장


카즈베기산 정상을 배경으로 5월인데도 눈이 있었다


러시아 통치하의 지명은 카즈베기였으나 현재는 본래의 지명인 스테판츠민다를 되찾았다. 조지아 최고의 절경으로, 그리스신화에서 불을 훔쳐 달아난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형벌을 받았던 산이다. 3개국에 걸쳐있는 코카서스 산맥은 이국적인 풍경과 독특한 지형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트래킹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가이드가 조지아식 고기만두 킹갈리 먹는 법을 가르쳐준다. 끝을 깨물어 국물을 먼저 쪼옥 빨아먹어야 만두 속 육수가 튀지않는다.


말로 부족하면 이리로 들어오시라~~역시 와인의 나라 조지아답다


황금색 지붕의 성삼위일체성당 비교적 현대건물이지만 안에는 엄청난 보석,금장식들도 많다.


조지아 정교회의 사제와 수사~ 이야기하는 모습이 멋져서 뒤에서 찰칵~!


프랭크 시나트라 명언간판 ~알콜은 남자의 원수일 지 모르나 성경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 ㅎㅎ



그리스 정교회는 여자의 머리를 가려야한다. 수선한 벽 자국이 오랜세월을 보여주는 메테키 교회


메테키 교회광장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늑대투구왕 -고르가살리

그는 조지아 정교회를 재조직하고 수도 트빌리시를 설립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언덕위의 조지아 연대기 입구- 왕과 영웅들, 그 아래 예수님이 조각되어있다.


자유의 광장 꼭대기 Saint Georgie상~ 성 조지에서 조지아란 이름이 나왔지 않나 싶다.


요새위에서 본 트빌리시 황금색 지붕의 성삼위일체성당과 평화의 다리가 보인다.


한 손엔 칼, 한 손엔 빵을 든 조지아 어머니상 ~ 뒷모습에서도 강인한 힘이 느껴진다.


그리스 정교도시지만 유대 시나고그, 모스크, 아르메니아교회등이 모두 공존하는 올드 트빌리시


여행지에서 만나 함께 스파를 갔던 러시아 아줌마 타냐, 섬세하고 배려심이 많은 분으로 느껴졌다. 여행 좋아하는데 이제 나이드니 옮겨다니는 거 게을러진다면서도 그 무거운 와인쇼핑한 걸 들고 택시도 안 타고 한참을 걸어가는 걸 보니 강인함도 느껴졌다. 스파는 개인욕실방으로 이뤄져있고 욕조탕과 샤워부스가 같이 되어있어 편리하고 깨끗했다.


모스크처럼 생겼으나 사실 하맘이란 온천목욕탕이다


접시크기로 짐작되는 하차푸리가 혼자 먹긴 너무 크다. 양 끝을 뜯어서 안에 버터랑 계란,치즈를 빙빙돌려 찍어먹는다


이전에는 와인을 산양뿔에 따라 마셨다고 설명하는 와인 체험장 아들의 설명


재래식 화덕에서 빵 맛 보기


조지아 시그나기 풍경


조지아와인은 이런 이 황토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어 숙성시킨다.


견과류등으로 만드는 조지아의 대표간식 츄르츄켈라-몇 줄 사서 곶감 빼 먹듯하니 맛있었다.



다음 화에서는 실크로드의 심장부이자 찬란한 이슬람 건축의 꽃, 사마르칸트로 떠납니다.
흙먼지 날리는 대륙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어떤 문명의 흔적을 만나게 될까요?

트빌리시 평화의 다리와 공원 식당에서 연주 하시던 분들~~ 어디서나 여행지에서의 한 줄기 음악은 영혼를 적셔주는 단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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