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유라시아가 이어지는 알마티

실크로드와 일대일로가 다시 만나는 도시

by김별


길은 끝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면 다른 이름으로 다시 이어질 뿐이다.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기 전까지 알마티라는 도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마르칸트처럼 화려한 유적도 없고, 이스탄불처럼 세계사의 중심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도 아니다.

그러나 지도를 펼쳐 보면 이 도시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알마티는 천산산맥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으로는 중국 신장, 북쪽으로는 끝없는 카자흐 초원이 이어진다.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천산 북로의 관문.


실크로드의 대상들은 이 길을 따라 중국을 떠나 알마티를 지나 사마르칸트와 페르시아, 그리고 유럽으로 향했다.

초원의 유목민과 오아시스의 상인,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이곳에서 서로 길을 나누었다.

알마티는 거대한 제국의 수도는 아니었지만, 유라시아를 이어 주는 관문이었다.



초원 위에 세워진 도시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 걸쳐 있는 세계 최대의 내륙국이자, 세계에서 9번째로 면적이 넓은 국가다. 광활한 국토에 비해 인구 밀도가 매우 낮으며,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중앙아시아의 경제적 거인으로 불린다.


카자흐스탄의 국민구성은 카자흐족이 다수로 약 60% 정도를 차지하고 그 다음이 러시아인으로 27%를 차지한다. 그 외는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몽골, 독일, 중국, 고려인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1991년 독립 이후 수도는 아스타나로 옮겨졌지만, 알마티는 여전히 카자흐스탄 최대의 경제, 문화도시다.


오늘날 이곳에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지나가고, 러시아와 유럽의 물류가 모이며,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투자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중국이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집권 이후 제안한 거대 경제권 구축 전략으로, 과거 동서양의 교통로인 실크로드를 현대에 부활시켜 중국 중심의 유라시아 경제 공동체를 만들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일대는 중국 서부에서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실크로드요 일로는 중국 남부에서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해상 실크로드다.


중국 일대일로 정바카라지도


과거 대상들의 낙타 행렬이 지나던 길 위를 이제는 철도와 고속도로로 부활하니 실크로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유라시아 지중해편에 이어서 대륙편으로~!





숙소는 오페라하우스 맞은편 그 이름도 '알마티 호텔'이었다.

도심 한가운데라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넓은 가로수길과 작은 공원, 곳곳에 놓인 벤치가 여유로운 도시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계획도시답게 도로는 반듯하게 뻗어 있었고, 거리에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버스킹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도시 이름 '알마티'는 '사과의 도시'라는 뜻이다.

사과의 원산지 가운데 하나인 이곳 사람들은 지금도 사과를 도시의 상징처럼 사랑한다.



초원과 유목의 기억


질료니 바자르, 일명 그린마켓으로 향했다.

시장 안에는 견과류와 건과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육류시장이다.

소고기와 양고기, 말고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돼지고기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사마르칸트에서는 실크로드의 상업을 보았다면, 알마티에서는 유목문화를 만났다.

끝없는 초원에서 살아온 카자흐인들에게 말은 이동수단이었고, 가축은 삶 그 자체였다.

시장 풍경은 지금도 초원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낯선 땅에서 만난 가장 익숙한 맛


시장 한쪽에서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다.

고려인 4세 아주머니였다.

당근김치를 권하며 그 유래를 들려주었다.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배추와 무를 구하기 어려웠던 그들은 당근으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낯선 땅에서 태어난 새로운 음식이었다.


나는 고사리나물을 집어 들었다.

아주머니는 이것도 맛보라며 미역무침과 다른 나물들을 하나씩 건네주셨다.

돈을 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오히려 더 미안해 여러 가지를 함께 샀고, 점심때 일행들과 나누어 먹었다.


한 접시의 반찬에는 강제이주의 아픔과 끝내 사라지지 않은 삶의 기억이 함께 담겨 있었다.

오늘날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 슬롯에서 성실하고 교육열이 높은 공동체로 존경받고 있다.

역사는 사람을 떠나게 만들었지만, 사람은 다시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어 냈다.





제국의 흔적


판필로프 28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병사들을 기리는 기념공원이다.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 앞에서는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한다고 한다.


공원 옆에는 러시아 정교회의 젠코브 성당이 우뚝 서 있었다.

카자흐스탄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함께 살아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성당 가운데 하나인 이 건물은 1911년 대지진도 견뎌 냈다.

황금빛 성화 앞에 잠시 서서 나도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한 도시 안에서 이슬람과 정교회, 유목문화와 러시아 문화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이 알마티다운 풍경이었다.



천산산맥이 들려준 이야기


도시 어디에서나 천산산맥의 설산이 보였다.

케이블카를 갈아타며 심블락 스키장까지 올랐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신비롭던 설산이 가까이 다가가니 평범한 산처럼 보였다. 아름다움은 때로 적당한 거리에서 더 깊어지는 법이다.


콕토베 언덕에서는 도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LG 간판이었다. 한국 기업들의 간판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독립 직후 수교한 이후 에너지와 산업, 물류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이어 오고 있다.

과거 실크로드가 문명을 연결했다면, 오늘의 알마티는 경제와 기술, 사람이 만나는 새로운 연결점이 되고 있었다.





길은 계속 이어진다


사마르칸트에서 함께 여행하던 일행들과 헤어진 뒤 혼자 호텔 앞 공원을 걸었다.

벤치에 앉아 아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천산산맥 너머에 있어도 손안의 작은 화면 속에서는 바로 곁에 있는 듯했다.

실크로드 시대라면 몇 달이 걸렸을 거리다.

지금은 몇 초면 닿는다.

문명의 연결 방식만 달라졌을 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만나고 이어지기를 원한다.


저녁 무렵 오페라하우스에 들어갔더니 공연이 한창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표를 예매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아들과 함께 이 도시를 다시 찾고 싶다고.

버스킹이 흐르는 거리와 초록 공원, 천산산맥의 설경과 오래된 시장을 함께 걸으며 아들에게 이 도시의 매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


문명은 어느 한곳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길 위에서 서로를 만나며 자란다.

그래서 내게 알마티는 중앙아시아의 가장 현대적인 도시이면서도, 가장 오래된 길을 품고 있는 도시였다.


유라시아는 과거의 지명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연결망이라는 사실을, 알마티가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고려인 이주


1800년대 중반 무렵 우리나라의 함경도에 살던 가난한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 조선의 국경을 넘어 지금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 살게 되었다.
그 지역이 러시아 영토가 되고 한참 뒤인 1920년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더 많은 사람이 러시아로 넘어갔다.
러시아 관리와 경찰은 1937년부터 1939년 사이 일본 첩자를 모두 쫓아낸다는 구실로
그 지역에 살던 우리나라 사람 17만 2,000명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을 고려인이라고 한다.고려인은 한겨울에 8,0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춥고 건조한 초원지대에 내려졌던 그들은 현지 카자흐족의 도움을 받으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고려인은 숫자는 적지만 카자흐스탄에서 경제·문화·학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민족이 되었다.




박물관 앞 사과모양


판필로프 공원입구


일행이었던 말레이지아 친구들과 젠코브 성당앞에서


화려한 금색내부와 평화의 기도


판필로프 28인 동상~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카자흐병사들이 2차 대전때 러시아를 위해 싸운 것은 본인들의 가족과 땅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심블락 스키장~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큰 스키장으로 두 세번 케이블카를 바꿔타고 해발 3000미터 이상까지 오른다.


콕토베의 비틀즈 동상- 지금은 방탄소년단이 세계적 월드 스타다 ㅎㅎ

판필로프 28인 동상


등받이가 튼튼한 이런 벤취가 길에 많아 좋았다


손주들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의 현지인은 러시아계도 많이 눈에 띈다


아르바트거리에서 아이들과 산바카라하는 아빠들


분수대 주변의 물을 즐기는 아이들

공원에 바카라을 두고 읽을 수 있다

길 거리 판매 그림전시


묶었던 알마티 호텔

몽골로 가기 위해 알마티 공항으로



다음 여정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초원의 바람을 따라 칭기즈 칸의 발자취를 만나러 간다.


#알마티 #카자흐스탄 #실크로드 #유라시아기행 #중앙아시아#일대일로

화요일 연재
이전 12화9화 사마르칸트, 문명은 무엇을 교환하며 성장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