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문명의 융합 이스탄불

유라시아 기행 서에서 동으로

by김별


이스탄불은 비잔티움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기독교 제국이었다.
스스로를 '로마인'이라고 간주했다. 그 후 오스만제국은 동방정교회의 동로마 세계와 이슬람세계의 통일을 달성했다. 오스만제국 아래 그리스정교, 아르메니아 교회, 유대교와 기독교 등이 공존할 수 있었다.


두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비잔티움과 오스만, 기독교와 이슬람, 유럽과 아시아가 한 공간에서 겹쳐지는 곳이다. 동서 문명이 충돌하고 화해하며 서로를 바꾸어 온 시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도시다.


330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수도를 옮기면서 콘스탄티노플이 되었고, 이후 천 년 넘게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번영했다. 기독교 문명의 최후 보루이자, 그리스·로마의 고전 지식을 보존해 르네상스의 씨앗을 서유럽으로 전해 준 지혜의 저장고였다.


1453년 메흐메트 2세가 이 도시를 함락하면서 역사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 되었고, 이후 500년 동안 이슬람 세계의 중심으로 번영했다.

놀라운 것은 정복의 방식이었다.

오스만은 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었지만 건축 자체를 허물지 않았다.

성화를 회벽으로 덮고 그 위에 아라베스크와 캘리그래피를 더했다. 파괴가 아니라 덧입힘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하기아 소피아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하는, 마치 시간의 지층 같은 건축물이 되었다.


이스탄불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보스포루스 해협이다.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이 좁은 물길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세계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비단길의 종착지였고 해상무역의 중심이었으며, 수많은 상인과 학자, 군대와 종교가 이 다리를 건넜다.


비잔티움의 학자들은 이곳에서 서유럽으로 고전 지식을 옮겼고, 동양의 향신료와 비단은 서양의 금과 만났다. 이스탄불은 도시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문명의 교차로였다.


오스만은 '밀레트'를 통해 기독교인과 유대인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대신 종교적 자치를 허용했다.

오늘날의 평등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 이어지던 중세 유럽과 비교하면 여러 종교가 같은 거리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드문 공간이었다.


교회의 종소리와 모스크의 아잔이 같은 하늘 아래 울려 퍼지는 도시.

이스탄불은 그렇게 문명의 모자이크가 되었다.


문명은 언제나 새것이 옛것을 완전히 지우는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품을 때 더 오래 살아남았다.






내게는 두 번째 이스탄불행이었다.

첫 번째는 코로나19가 막 시작되던 2020년 겨울이었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오래 품어온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그리움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리고 2년 뒤, 이번에는 크루즈를 타고 다시 찾았다.

거대한 크루즈 터미널을 나와 익숙하게 트램에 올랐다. 골든혼을 건너자 예니 모스크가 보이고, 스파이스 바자르를 지나 그랜드 바자르가 이어졌다.

한 번 걸었던 길은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그랜드 바자르는 여전히 거대한 미로였다.

상인들은 달콤한 터키시 딜라이트를 내밀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하고 내 국적을 맞혀 보려 했다. 필리피노 하기전에 내가 먼저 "코리아."라고 말하자 모두 환하게 웃는다.

이 도시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트램에서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터키 여성을 만났다. 한국에서 유학하며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두 아이와 함께 친정을 방문한 길이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사람과 문화가 서로 스며드는 도시였던 이스탄불의 모습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야 소피아의 거대한 돔 아래에 서면 시간의 층이 한눈에 보인다.

회벽 아래 희미하게 드러나는 성화와 그 위를 장식한 이슬람 서예.

정복과 공존, 갈등과 화해가 한 건물 안에 함께 존재한다. 한때 박물관으로 쓰이다 지금은 다시 모스크로 쓰인다.


맞은편 블루 모스크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2만 장이 넘는 푸른 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을 얻은 이 건축물은 오스만 건축의 절정을 보여준다.

블루 모스크의 6개 미나렛이 빚어내는 풍경은 웅장하다. 미나렛의 숫자가 건축가의 실수로 4개에서 6개가 된 일화는 역사의 우연이 어떻게 새로운 전통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화려한 푸른 타일 사이로 남녀가 나뉘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이슬람이 보존해온 가치와 원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신 앞에 절대평등, 그래서 기도를 인도하는 자, 경전을 해석하는 자는 있어도 카톨릭처럼 성직자의 계급은 없다.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여성은 더 보호받고 사랑받기도 한다.


굴하네 공원을 지나 갈라타 다리로 걸었다.

다리 위에서는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아래로는 유람선이 끊임없이 오간다.

천 오백 년 동안 수도였던 도시답게, 일상마저도 역사와 함께 흐른다.


문득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다룬 영화가 떠올랐다.

골든혼을 가로막은 쇠사슬을 피하기 위해 오스만 군대가 배를 산 위로 끌어올려 바다 반대편으로 내려보냈던 대담한 전략. 그 승부 끝에 천 년 제국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제국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이스탄불은 여전히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세계도시다.

터키인, 쿠르드인, 시리아 난민, 유럽 여행자들이 같은 거리를 걷는다.


과거 제국이 수많은 민족을 품었던 것처럼 지금도 다양한 사람들이 이 도시를 살아가고 있다.

역대 이슬람 제국 중 가장 강력했던 오스만 투르크의 후예들,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보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큼성큼 걷는 그들의 큰 보폭이 마치 튀르크 전사의 기상을 보는 것 같았다.


유럽 최대도시로 인구 1,500만 명을 넘어 2,000만에 육박하는 거주민들이 이 거대한 도시를 채우고, 난민과 이주민들이 이방의 삶을 꾸려가는 이곳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곳보다 생동감이 넘친다


이스탄불의 뜻은 ‘그 도시(The City)’, 누구나 알지만,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도시란 뜻일까?


이스탄불을 걸을 때 떠 오른 생각이 있다.

문명은 서로를 이길 때보다 서로를 품을 때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

유라시아 역시 하나의 가치로 통합되는 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면서 이어지는 길이어야 하지 않을까.


보스포루스 해협 위를 바라보며 남북의 철길이 언젠가 이 길과 이어질 미래를 상상해 봤다.

이스탄불은 천 년 전에도 문명의 다리였고, 오늘도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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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렛과 돔의 모스크를 보니 반갑다, 다시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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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사수해온 성벽과 지나다니는 노랑택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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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 교역 상인들의 모습도 이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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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쓴 현지여인들, 그래도 다른 이슬람국에 비해서는 세속화되어 자유로운 터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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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바자르 천정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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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태양과 건조한 열기로 견과류의 천국이다


8_ed0Ud018svc1ihenk3jg177h_h3kbqd.jpg?type=e1920_std블루 모스크앞 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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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앞 광장 그늘 잔디밭에서 휴식하는 사람들 모습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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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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