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 읽기

다섯 권의 바카라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by윤여준 변호사의 성경보기

1. Overview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을 펼치면 '율법'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립니다.

지키기 힘든 조항들, 어기면 심판이 뒤따르는 규정들—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의 멍에'를 벗겨주셨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죠.

그런데 브루그만은 이 장에서 그 이해를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토라는 '규정집'이 아니라 '가르침'입니다. 더 정확히는, 나라를 잃고 낯선 땅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붙들었던 '살아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장의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토라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 답을 이해할 때, 우리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게 됩니다.


2. Summary & Commentary

토라가 '율법바카라'으로 불리게 된 오해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이 다섯 권을 히브리어로 '토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그리스어로 옮기면서 '노모스', 즉 '법'이 되었고, 그것이 다시 라틴어 '렉스'(lex), 영어 'law'가 되었습니다.

언어가 바뀌면서 의미도 조금씩 변하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어 토라의 본뜻은 '지시'(instruction) 혹은 '가르침'(teaching)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토라의 실제 내용을 보면 법 조항보다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창세기 전체, 출애굽기의 대부분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을 서술합니다.

시내산 명령들조차 "나는 너를 이집트 종살이에서 이끌어낸 너의 하나님이다"(출 20:2)라는 이야기의 맥락 위에서 주어집니다. 법 이전에 관계가 있고, 규정 이전에 역사가 있습니다.

브루그만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토라를 '지켜야 할 규정'으로만 읽는 것은, 마치 한 가족의 오랜 편지 다발을 뜯어서 거기 적힌 당부들만 목록으로 뽑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편지 한 장 한 장에 담긴 맥락, 관계, 감정은 다 사라지고 의무 조항만 남는 셈이죠.


포로기—토라가 최종 형태를 갖추게 된 결정적 순간

토라가 언제, 왜 이 형태로 완성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기원전 5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 해, 바벨론 제국이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습니다. 성전이 불탔고, 왕족과 지식층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땅도, 왕도, 성전도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정치적 재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왕이 다스리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앞에서 예배드린다"는 이스라엘 신앙의 세 기둥이 한꺼번에 무너진 사건이었습니다.

유배지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름한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우리가 여기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가?"

바로 이 절박한 물음 앞에서, 이스라엘의 이야기꾼들과 제사장들과 현자들은 흩어져 있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엮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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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세례를 받고 약 40년 기독교 신앙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신앙 유산으로 남기고 싶은 주제들을 글로 정리합니다. 글을 쓰다가 신대원까지 입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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