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여호수아서는 토라의 마지막 바카라인 신명기 바로 다음에 놓인, 전기 예언서의 첫 번째 바카라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역사서 아니냐는 의문은 잠시 접어두세요).
저자들은 이 장 첫머리에 "여호와께서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온 땅을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다"는 여호수아 21:43을 걸어 두었습니다.
여호수아서가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바카라을 승리의 기록으로만 읽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저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여호수아서가 그리는 '정복'이 실제 역사에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둘째,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간 세대에게 이 바카라이 어떤 의미로 다시 읽혔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을 오늘의 신앙인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질문입니다.
저자들은 여호수아서가 구약을 이해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중심축이라고 말하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바카라을 읽고 사용할 때 뜻하지 않은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벅찬 고백과 성경이 스스로 감추지 않는 불편한 질문을 함께 붙들고 읽자는 것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
만나가 그친 날: 리더십 교체
신명기에서 여호수아서로 넘어가는 것은 지도자가 모세에서 젊은 여호수아로 바뀌는 일이기도 합니다(신 31:1-8; 수 1:1-9).
그러나 저자들은 독자에게 그보다 훨씬 큰 도약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라는 인물이 중심에 서 있는 이스라엘의 기준 문헌인 토라를 떠나, 땅을 둘러싼 위기에 온통 몰두하는 전기 예언서로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규범을 제시하는 바카라에서 논쟁과 갈등이 가득한 바카라으로 넘어가는 셈입니다. 또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설레며 기대하던 자리에서, 다툼과 충돌을 거쳐 그 땅을 실제로 차지하는 자리로 옮겨 가게 됩니다.
이 큰 전환을 본문 스스로 보여 주는 구절이 여호수아 5:12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은 다음 날 만나가 그쳤고, 그해부터 백성은 가나안 땅의 곡식을 먹었다는 기록입니다. 출애굽기 16장부터 광야 생활 내내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시는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돌보심에 기대어 살 수 있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들어서자 그런 돌봄은 끝나고, 이스라엘은 직접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곧 자신들과 전혀 다른 신앙과 슬롯관을 가진 원주민들 사이에서, 땅 위의 삶이 안겨 주는 온갖 현실에 부딪혀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부모 곁에서 지내던 자녀가 독립해 처음으로 스스로 벌어 살아가기 시작하는 순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자들은 이 순간을 현대 미국 소설가 맥스 애플의 글로 풀어 줍니다. 한글본에는 그가 소설가라는 설명이 빠져 있는데, 학자의 논증이 아니라 작가의 문학적 통찰이라는 점을 알고 읽으시면 더 잘 이해됩니다.
애플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행동을 시작하는 순간 만나가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스로 싸울 수 있는 민족은 스스로 먹고살아야 하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잠시 보호받던 쉼의 시간은 끝나고, 어른의 삶이 주는 위험과 긴장이 시작됩니다. 신화가 아니라 정치가 지배하고 수많은 선택을 감당해야 하는 삶입니다.
가나안에 들어선 이스라엘 지파들은 다른 유목민들과 다를 바 없이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였습니다. 모세의 바카라은 끝나고 역사의 바카라이 시작되었으며, 이제부터 영웅은 군인이나 예언자, 사사나 왕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분의 임재는 예전만큼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애플은 신화가 무너지는 바로 그 비극적 순간을 살았던 여호수아를 '최초의 현대인'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행동하면 만나는 그치고 참혹한 전쟁이 시작되며, 지파들 사이의 다툼이 언약궤보다 더 큰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역사와 모세와 하나님의 신뢰를 저버리게 됩니다.
(이 대목에서 번역본은 원서의 '참혹한 전쟁이 시작된다'를 '혹독한 계절이 시작된다'로, '지파들의 다툼'을 '지파들의 흩어짐'으로 옮겼습니다. 애플이 말하려는 것은 막연한 시련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구체적인 현실과 공동체 안의 분열입니다).
여호수아서 전체를 관통하는 두 주제, 곧 폭력과 땅을 둘러싼 갈등을 미리 짚어 주는 대목이므로 정확하게 읽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요단을 건너 여리고로: 정복 이야기의 짜임새
여호수아서는 흔히 (1)두 개의 큰 본문 덩어리와, 그 앞뒤를 감싸며 신명기적 틀을 만들어 주는 (1)서론과 (2)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본문 첫 번째 큰 덩어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주민에게서 땅을 빼앗아 차지하는 과정을 그린 2-12장입니다.
원래는 각각 따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인 것으로 보이며, 내용도 매우 다채롭습니다.
3-4장은 요단강을 건너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들은 이 기사가 이스라엘이 땅에 들어간 신학적 드라마의 핵심 장면인 요단 도하를 예배 속에서 주기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지침처럼 짜여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요단 도하는 출애굽의 홍해 사건을 되풀이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훗날 자녀들이 "이 돌들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홍해를 마르게 하셨던 것처럼 요단 물도 마르게 하셔서 우리가 마른 땅을 밟고 건넜다고 알려 주라는 말씀(수 4:21-24)이 그 증거입니다.
기념의 돌을 세우고 다음 세대에게 이야기를 전하게 하는 방식 자체가 예배적 기억의 형식입니다.
이 두 장의 앞뒤를 여리고 이야기(2장과 6장)가 감싸고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 속에서 일어난 여리고 함락의 기적을 찬양합니다(6:16).
그런데 동시에 기생 라합과 따로 평화를 맺은 일도 꼼꼼하게 기록합니다(6:25). 이스라엘과 이방 주민의 관계가 결코 단순하거나 한 가지 색깔로만 칠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7장은 '아골 골짜기', 곧 '괴로움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한 이야기입니다.
아간의 범죄 때문에 공동체가 혹독하고 가차 없는 징계를 받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저자들은 이것을 위기에 처한 공동체에 대한 충성을 지키기 위한 신학적 징계로 이해합니다.
8장은 아이 성에서의 큰 승리를 다룹니다.
저자들은 이 승리가 앞서 나온 여리고 함락에 견줄 만한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9장은 기브온 사람들과 맺은 조약 이야기로, 2장과 6장의 라합 이야기처럼 땅에 살던 비이스라엘인과의 관계를 다룬 또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10-11장은 여호수아가 이끈 큰 승리들을, 12장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성공 전체를 정리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가나안 땅의 주요 지역을 점령했다는 것이 본문의 요지입니다.
저자들은 이 부분에 '자세히 읽기'라는 짧은 글상자를 덧붙여, 여호수아를 '절반의 모세'라고 부릅니다.
여호수아는 분명 모세의 자리를 이어받았고, 하나님은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으며(수 3:7), 그는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일을 해냈습니다. 그런데도 전승은 그를 모세만큼 위대한 인물로 그리지 않습니다.
모세는 홍해를 극적으로 가르고 백성을 이끌었지만, 여호수아는 그보다 덜 극적인 방식으로 요단을 건넙니다(출 14장과 수 4:19-24 비교).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똑같이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출 3:1-6과 수 5:13-15 비교).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반면, 여호수아는 천사 같은 존재인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 차이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장면이 물의 모습입니다. 홍해에서는 물이 백성의 좌우에 벽을 이루었지만(출 14:22), 요단에서는 물이 "한 곳에 쌓여" 섰습니다(수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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