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정복, 반복되는 부르짖음
사사기는 여호수아서 바로 다음에 놓인 전기 예언서의 두 번째 바카라입니다.
저자들은 이 장 첫머리에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는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을 걸어 두었습니다.
사사기는 무질서와 타협이 거듭 쌓여 가는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저자들은 먼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 사이에 모순처럼 보이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짚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정복이 완결되었다고 말하는데, 사사기는 싸움이 아직 한창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들은 정경이 두 바카라을 나란히 둔 것이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역설이라고 봅니다.
사사기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부분(1:1-2:5)은 약속의 땅에 여전히 남아 있는 '타자'의 문제를 다룹니다.
둘째 부분(2:6-16:31)은 드보라, 기드온, 삼손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죄, 징벌, 부르짖음, 구원"이라는 네 박자의 신학적 공식으로 엮어 냅니다.
마지막 부분(17-21장)은 왕이 없던 시대에 종교와 슬롯가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를 충격적인 이야기로 보여 줍니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이 공식이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된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시 읽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기에 적의 손에 넘겨졌지만, 우리가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들으시고 구원자를 보내 주신다."
사사기는 실패를 기록한 바카라이면서, 그 실패의 한복판에서도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붙드는 바카라입니다.
여호수아서 다음에 놓인 사사기: 의도된 역설
정경의 순서대로 여호수아서를 읽고 곧바로 사사기로 넘어가면 첫 구절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하고 묻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의 여호수아서는 가나안 사람들을 완전히 정복하고 땅을 차지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더 남아 있어서 싸운다는 말일까요?
또 여호수아서는 땅에 평화가 깃들고 지파들이 하나로 연합한 모습으로 끝나는데, 사사기는 지파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내전으로 끝납니다(삿 19-21장).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차이는 가나안 정착에 대해 서로 다른 전승이 겹쳐 전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정경이 두 바카라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서 분명히 의도된 역설이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땅을 차지하고 원주민을 몰아내는 일이 한편으로는 손쉽게 끝난 것처럼, 다른 한편으로는 끝없이 미뤄지는 것처럼 그려지는 역설입니다.
저자들은 여기서 기억을 둘러싼 윤리적 갈등을 봅니다.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다른 모든 민족처럼 자신들의 기원을 깨끗하고 분명한 이야기로 남기고 싶어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훨씬 지저분하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기원의 흔적도 그대로 보존합니다.
그 땅의 주민을 몰살하는 일이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는 흔적입니다. 집안의 자랑스러운 족보와 부끄러운 가족사를 함께 기억하는 어른들처럼, 성경도 영광스러운 이야기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한 바카라 안에 나란히 두었습니다.
저자들은 사사기를 전기 예언서의 일부, 곧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겪은 갈등의 삶을 하나님이라는 결정적인 현실에 비추어 '다시 그려 낸' 역사 이야기라고 규정합니다.
번역본은 이 말을 '재상상하는 이야기'라고 옮겼습니다. 앞 장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서 '상상'은 없는 일을 지어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승을 이어 온 사람들은 오래된 기억과, 땅 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로 기억되는 사실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는 기준에 따라 의미 있는 이야기로 새롭게 엮어 냈습니다. 그 작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학계의 지배적 가설에 따르면 사사기는 '신명기 역사'의 일부입니다. 신명기 역사는 이스라엘 왕정의 과거를 신학적으로 해설하는 큰 작품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땅을 어떻게 잃고 기원전 6세기에 뿌리 뽑힌 백성이 되었는지를 보여 주려고 쓰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 엄지가락을 자른 이야기와 되갚으시는 하나님
첫 번째 본문 단락은 1:1-2:5입니다.
이 단락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곧 위대한 전쟁 지도자이자 토라를 대변하던 인물을 잃은 뒤 땅에서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이 단락은 흔히 이스라엘이 땅에 정착하던 초기의 모습을 보여 주는 오래된 자료로 여겨집니다.
저자들은 실제로 오래된 자료일 수 있지만, 지금은 후대 전승 과정의 의도에 맞추어 기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자들은 이 단락에서 세 가지 강조점을 찾아냅니다.
첫째, 이야기는 여전히 약속의 땅을 빼앗아 차지하는 일에 몰두해 있습니다. 앞 장에서 소개한 정복 가설 가운데 어느 쪽을 따르든 마찬가지입니다.
외부 침략이었다면 가나안 원주민에게서, 내부의 슬롯 혁명이었다면 가나안 정치·경제 체제의 착취적 권력 구조에서 땅을 빼앗은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이스라엘은 전쟁의 모든 잔혹함에 깊이 관여합니다. 사사기 1:6은 이스라엘이 도망치는 아도니 베섹을 붙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랐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 잔혹함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로 이해됩니다(1:2).
저자들은 이 대목의 하나님을 '되갚아 주시는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도니 베섹은 자신이 전에 일흔 명의 왕들의 엄지를 잘라 자기 상 아래에서 음식을 주워 먹게 했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이 행한 대로 갚으셨다고 고백합니다(1:7).
저자들이 굳이 '갚으셨다'는 단어를 강조한 까닭은, 사사기 전체에 흐르는 '행한 대로 돌려받는다'는 원리가 여기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인식과 이념적 인식
둘째, 1:16-36은 새로 자리 잡은 민족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조차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그들 사이에서 살아야 했다고 보고합니다.
그래서 이 단락에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다"(1:29)는 말이 조금씩 형태를 바꾸어 후렴처럼 되풀이됩니다. 이 기록은 흔히 여호수아서의 과장된 정복 이야기를 바로잡는 현실적인 주석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전승 과정이 신학적 목적을 위해 봉사한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 본문을 반드시 사실을 전달하는 역사적 보고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이나 그와 나란히 쓰이는 '여부스 사람' 같은 말이 본래 민족이나 혈통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이념적인 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공유하지 않고, 그래서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꾸려 가는 '타자'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이라는 말을 쓸 때 특정 나라 사람을 가리키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삶의 방식을 가리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게 보면 이 단락이 말하려는 것은, 약속의 땅에 들어왔는데도 약속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약속을 거스르는 민족들'이 남아 있어서 그 약속이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들은 이 이념적 인식 때문에 이어지는 사사기의 이야기들은 두 가지를 끊임없이 보여 주게 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신앙을 타협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타자'가 이스라엘의 신앙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위협하는 모습입니다.
학계의 주된 가설처럼 이 본문의 최종 형태가 6세기에 완성되었다면, 이 본문은 포로가 된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동시에 유혹하는 '타자' 한가운데, 곧 바빌로니아라는 낯선 땅에서 신앙을 지켜 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요구, 모든 이야기를 푸는 열쇠
셋째, 이 위험한 '타자'의 도전은 첫 단락을 마무리하는 2:1-5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구절들은 흔히 약속의 땅에 '타자'가 계속 남아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본문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약속하셨으니 그들이 남아 있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남아 있는 까닭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설명 기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들은 언약의 요구를 양쪽이 짝을 이루는 대칭 형식으로 분명하게 제시하는데, 이것이 앞으로 펼쳐질 모든 이야기를 읽는 열쇠가 됩니다.
하나님은 "나는 너희와 맺은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않겠다. 너희는 이 땅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을 헐라"(2:1 b-2a)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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