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적 기억하기와 성경의 문학적 언어
공동저자인 브루그만과 리나펠트는 구약성경이 단순한 역사 기록물이 아니라, 수 세기에 걸친 신앙 공동체의 해석 과정을 통해 걸러진 '상상적 기억'의 산물이라고 진술합니다.
성경 본문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는 중립적 보고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하기 위해 특정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구성된 신학적 작품입니다.
이 같은 시각은 구약을 읽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독자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이 공동체는 무엇을 믿었고, 그 믿음을 어떻게 표현했는가'를 먼저 묻도록 이끕니다.
주의할 점은 브루그만이 사용한 단어들입니다. 신앙인들만 대상으로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브루그만은 일반적인 단어들을 사용하였는데, 그 단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개념을 내려놓고 새롭게 그 단어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야 혼동에 빠지지 않습니다.
'구약'이라는 이름부터 다시 생각하기
우리가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부르는 '구약성경'이라는 명칭 자체에 이미 중요한 신학적 판단이 담겨 있습니다. '구(舊)'라는 글자는 '오래되고 낡은 것'이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가 이 바카라을 신약성경의 '이전 버전' 혹은 '예비 단계'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바카라은 낡거나 대체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 있는 정경 그 자체입니다.
브루그만은 이 점에서 기독교가 구약을 읽을 때 빠지기 쉬운 위험을 조용히 경고합니다.
구약을 오직 예수님이 오시기 위한 '복선'으로만 읽거나, 신약이 나오면 자동으로 효력을 잃는 구식 계약으로 취급하는 태도가 그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대체주의'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하면 "신약이 구약을 완전히 대체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브루그만은 이 이름을 사용하되, 그 안에 담긴 한계를 늘 의식하며 읽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게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구약을 읽을 때 "이게 예수님 하고 무슨 관계가 있지?"라는 질문만 던진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의 풍부한 깊이를 놓치게 됩니다. 구약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님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 위에 신약의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구조입니다.
구약은 역사 교과서가 아니다
구약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홍해가 정말로 갈라졌을까?" "이스라엘 백성이 정말 40년을 광야에서 살았을까?"
이 질문들은 중요하지만, 브루그만은 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 공동체는 왜 이 사건을 이렇게 기억하기로 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구약성경은 과거의 사건을 카메라처럼 있는 그대로 찍어서 보관한 기록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을 경험한 신앙 공동체가 그 경험의 의미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성하고 해석한 증언에 가깝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신학적 해석이 함께 녹아 있는 것이 성경의 본질입니다.
이것을 한번 일상적인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6.25 전쟁을 직접 경험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그 시절을 견뎌낸 삶의 무게, 살아남은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손자가 다시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구약의 이야기들도 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경험하고, 그 의미를 품은 채 다음 세대에게 전달했습니다. 이것이 '상상적 기억하기'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상상'이라는 단어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우리말에서 '상상'은 종종 '꾸며낸 것', '현실에 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브루그만이 '상상적 기억'이라고 할 때 성경을 허구로 취급한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상상'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과거의 사건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 지닌 신학적 진실을 새로운 상황과 세대 앞에 살아있게 만드는 능동적 해석 행위가 바로 '상상적 기억하기'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허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이 수천 년을 넘어 지금 여기서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능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전승 과정: 상상, 이데올로기, 영감이 함께 작동하는 방식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전제 사실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늘에서 어느 날 뚝딱하고 주어진 바카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처음부터 활자로 기록된 바카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단편적으로 기록이 되었으며, 그 뒤에 취합되어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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