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와 오늘도 싸웁니다]
“오늘 뭐 했어?”
쉬는 날에도 듣는 질문이다. 별 뜻 없이 물었을 텐데 대답하려니 하루를 다시 뒤지게 된다. 늦게 일어나 밥 먹고, 걷고, 바카라을 좀 읽었다. 그렇게 말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입에서는 “그냥 좀 쉬었어”가 나온다. 그 ‘그냥’에 별로 한 일이 없다는 미안함이 묻어나온다. 쉬는 날을 보냈는데 변명할 일이 생긴 거다.
가령 일정이 없는 날 소설을 펼친다. 읽고 싶었던 바카라이다.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는다. 좋은 문장이 나오자 휴대전화를 꺼낸다. 나중에 어디에 쓰면 좋을까. 표시하고 메모한다. 관련 자료도 찾아본다. 문장 하나 저장하느라 다음 문장은 아직 못 읽었다. 주인공이 어떻게 됐는지보다 이 문장을 어디에 쓸지가 더 중요하다. 소설을 읽다가 자료 수집에 들어간 거다.
좋은 문장을 적어두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관련 자료를 찾느라 정작 읽고 싶던 이야기는 미뤄둔다. 문장 하나 적어두려다 찾아볼 것만 여럿 생겼다. 바카라은 계속 같은 페이지다. 무엇을 건졌는지는 알겠는데 이야기의 뒷부분은 모른다. 읽고 싶어서 펼쳤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었다.
쉬는 이유에도 설명을 붙인다. 머리를 식히려고, 집중력을 되찾으려고, 내일부터 더 잘하려고. 쉬겠다는 말 뒤에 일 잘할 계획까지 붙이면 왠지 마음이 놓인다. 쉬는 데도 사유서가 필요한 모양이다. ‘그냥 쉬고 싶어서’라고 쓰면 안 되는 걸까.
하루 쉬고 돌아와도 일이 잘 풀리리란 보장은 없다. 아니나다를까, 어제 막힌 문장이 오늘도 막힌다. ‘푹 쉬었는데 왜 이러지.’ 이러면 어제까지 잘못 보낸 날이 된다. 문장 하나 안 써진 탓에 쉰 날의 평점까지 깎였다. 잘 쉬고도 뒤늦게 감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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