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작은 기업 전략]
한 남자가 자기 키보다 큰 나무판 뒤에 섰다. 나무판 넘어 두 팔만 앞으로 뻗었다. 손끝이 닿는 곳까지 선을 그었다. 닿지 않는 곳은 비워두었다. 그 빈 공간은 실패가 아니었다. 자신의 몸이 가진 한계를 정확히 보여주는 실험미술이었다.
기업에도 몸이 있다. 자본과 인력, 기술과 공정, 고객과 유통망이 그 몸을 만든다. 문제는 작은 몸이 아니다. 자기 몸을 모르면서 남의 동작을 따라 하는 일이다. 매출은 늘었는데 왜 이익은 사라질까. 기술은 뛰어난데 왜 고객은 가격만 따질까. 수많은 경험이 왜 조직의 지혜로 남지 않을까.
이건용의 실험미술에서 세 가지 경영 질문을 꺼냈다. 우리의 팔은 어디까지 닿는가. 우리는 어디에 서서 가치를 보고 있는가. 오늘의 판단은 내일 무엇으로 남는가.
모든 면을 채우려는 기업은 결국 무너진다. 무엇을 비워둘지 아는 기업만 자기 몸으로 성장한다. 작은 기업의 전략은 그 여백에서 시작된다.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1976년. 이건용은 자신의 키보다 큰 나무판 뒤에 섰다. 그림을 보지 않았다. 두 팔만 판 앞으로 넘겼다. 손에 쥔 펜이 닿는 곳까지 선을 그었다. 어깨가 돌아가는 각도, 팔꿈치가 접히는 범위, 손끝이 겨우 미치는 거리. 그 바깥은 비어 있었다. <신체 드로잉 76-1>이다.
이건용은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이끌었다. 오늘날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다. 그에게 그림은 머릿속 이미지를 화폭에 옮기는 결과물이 아니었다. 몸이 세계와 만나는 과정이었다. 먼저 조건과 순서를 정했다. 몸은 그 규칙 안에서 움직였다. 그림은 그 움직임이 남긴 흔적이자 결과였다.
전통적인 회화는 화가가 화면을 보며 손으로 무언가를 그리는 일이었다. 이건용은 그 형식을 뒤집었다. 화면을 보지 않았다. 몸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몸에 주어진 조건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확인했다. 몸과 조건을 바라보는 이런 시선은 기업 경영과도 맞닿는다. 전략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는 일이 아니라서다. 지금 가진 몸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판단하는 일이라서다.
기업에도 몸이 있다. 자본, 인력, 기술, 공정, 유통망, 고객 관계가 그 몸을 만든다. 몸이 다르면 움직임도 달라야 한다. 대기업이 제품군을 넓힌다고 품목을 따라 늘릴 이유는 없다. 글로벌 기업이 직급을 없앴다고 호칭을 따라 바꿀 이유도 없다. 자본력이 큰 플랫폼이 무료로 시장을 흔든다고 가격을 따라 낮출 이유는 더더욱 없다.
문제는 규모가 아니다. 자기 몸을 모른 채 남의 동작을 따라 하는 데 있다. 골격이 다른데 타인의 동작을 흉내 내면 관절에 무리가 간다. 자기 몸부터 알아야 하는 건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업을 경영의 언어로 옮기면 세 가지 질문이 남는다. 우리 몸은 어디까지 닿는가. 어디에 서서 가치를 보고 있는가. 오늘의 판단은 내일 무엇으로 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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