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슬롯 혁신]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SNS에서 우연히 눈에 띈 김보미 후보의 민주당 당대표 정견 발표 영상. 민주당 지도부와 중진들이 앞줄에 앉아 있다. 그 앞에 서른여섯 살 여성 정치인이 섰다. 전남 강진군 의회 재선 의원, 전국 최연소 기초의회 의장을 지낸 정치인. 중앙정치 무대에서는 여전히 이름이 낯선 평당원이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민주당에 공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에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에 세대 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이 무척이나 싫어하는, 이른바 ‘내부 총질’이다. 문제가 있는 조직에서 문제를 말한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문제를 만든 구조는 사라지고, 문제를 드러낸 사람을 문제로 만드는 이름이다.
7분 가량의 이 연설을 끝까지 보게 된 이유? 발언의 내용만이 아니다. 발언의 위치 때문이다. 권력이 약한 사람이 권력이 강한 사람들 앞에서 그 권력의 작동 방식을 비판했다. 청년을 배려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자리 하나를 달라고 읍소하지 않았다. 규칙이 공정한지 물었다. 경쟁의 문이 실제로 열려 있는지 따졌다.
“가만히 있어라. 가방 들어라. 순번 기다려라. 나서면 끝장이다.” 그가 13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다는 말이다. 한국 정치가 청년을 길들이는 방식이 이 네 문장에 담겨 있다. 젊은 얼굴은 환영한다. 젊은 질문은 불편해한다. 행사장에는 세운다. 결정권은 주지 않는다. 충성하면 미래 인재라 부르고, 문제를 제기하면 철없다고 밀어낸다. 청년 정치인은 성장하기 전에 순응부터 배운다. 그 결과? 젊은 정치인은 남는다. 청년 정치는 사라진다.
세대 비판 대목은 더 거칠었다. "386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었습니다. 깊이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 정치를 40년, 50년 독점해야 할 권한은 없습니다." "AI 3대 강국에 진입해야 할 우리 대한민국에 화염병과 짱돌 들고 싸우시던 분들이 아직도 주이라는 점 이게 진짜 맞는지 한 번쯤은 고민해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686을 지나 786, 886까지 갈 것이 아니라 이제는 멋진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낡음은 나이보다 태도에 가깝다. 젊은 사람도 권력을 움켜쥐면 낡는다. 나이 든 사람도 권한을 넘기고 새로운 질문을 받아들이면 젊다. 그럼에도 이 문제 제기는 피하기 어렵다. 과거의 공로가 미래의 독점권이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를 만든 세대라면 권력을 넘기는 일까지 완성해야 한다. 혁신은 새 사람을 앞줄에 세우는 일이 아니다. 오래된 규칙을 다시 묻는 일이다.
“지금 제가 하는 마지막 연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도전이 비록 3일 천하에 끝나더라도 끝까지 민주당의 미래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이 문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정치적 생존보다 문제 제기를 앞세운 사람의 말이어서다.
청년 정치의 반대말은 노인 정치가 아니다. 순번 정치다. 미래 정치의 반대말 역시 과거 정치가 아니다. 질문을 막는 정치다. “청년이 없는데 미래가 있을 턱이 있습니까?” 김보미 후보의 이 질문은 민주당만을 향하지 않는다. 청년을 미래라고 부르면서 권력은 내놓지 않는 모든 조직을 향한다. 우리 슬롯 전체를 향한다.
미래는 젊은 얼굴을 앞세운다고 오지 않는다. 순번을 기다리지 않는 질문이 낡은 질서의 문을 두드릴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런 야성의 질문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반가울 따름이다.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