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문학주간 - 초연결 시대의 문학 비평 1부

곁눈질과 크로스토크

by부소유

평일 오후 세 시에 대학로에 앉아 있는 일은 내 일정표에서 드문 항목이다. 나는 인공지능 업계의 제조 쪽에서 15년간 같은 것을 여러 번 재고 그 값이 규격 안에 들어오는지 확인하는 일로 밥을 벌어왔다. 문학주간2026의 주제어는 ‘곁눈질’이었고, 그날 첫 세션의 제목은 ‘무한 스크롤 시대의 비평’이었다. 슬롯자는 이번 포럼의 대주제가 초연결 시대의 문학과 비평이라고 소개했다. 무대에는 이소, 송현지, 전승민 세 평론가가 앉았다. 스크립트를 따로 공유하지 않고 각자 무슨 이야기를 할지만 정한 채 왔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공장에서 그런 식으로 회의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나는 조금 긴장했고 조금 부러웠다.


먼저 말문을 연 이소 평론가는 ‘곁눈질’이 주최 측의 생각과 달리 자기에게는 꽤 추상적인 말로 들렸다고 했다. 곁눈질은 옆을 보는 일이니 수평적이다. 그런데 같은 동작이 시선 경쟁이기도 하다. 평등을 향한 마음과 과도한 경쟁이 한국 슬롯에서 묘하게 포개지면서 해석 경쟁이 벌어진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었다. 문학 독자는 적은데 문학을 다루는 유튜브 영상은 많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 곧장 해석을 찾아본다. 그 해석이 내 느낌과 비슷하면 저 사람은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다르면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된다. 어려운 글을 해독하려는 노력은 줄고 내가 이미 느낀 것을 조금 더 세련되게 말해주는 사람을 찾는 일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해석이 상품처럼 돌고 그 주위에 취향의 공동체가 생긴다. 공동체라고 부르지만 실은 진영에 가깝고 문학에서는 팬덤에 가깝다.


그는 비평가의 계보를 셋으로 나눴다. 백낙청과 김현으로 대표되는 지식인 비평가, 1990년대 후반부터 자기 문체를 앞세운 작가 비평가, 그리고 지금의 큐레이터 비평가. 자료가 너무 많아 누군가 골라주지 않으면 그냥 쓰레기더미가 되는 시대라 큐레이션 요구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그는 인정했다. 다만 곁눈질의 방식으로는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배움에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성분이 있고 누군가 타자성을 밀어넣어 주어야 하는데, 수평만 추구하면 그 성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내 쪽 언어가 먼저 떠올랐다. 공장에서 쓰는 계측기는 옆 계측기와 값을 맞춘다고 해서 정확해지지 않는다. 서로를 기준 삼아 비교만 하면 열 대가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틀어진다. 그래서 주기마다 상위 표준기에 걸어 교정한다. 그 표준기는 내 옆에 없고 내 편도 아니다. 이소가 말한 타자성이란 결국 내 옆에 없는 기준을 견디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문학에는 국가표준이 없다. 없어서 곤란한데, 없어서 문학이기도 하다.


송현지 평론가는 질문 하나를 던지며 시작했다. 추천이 부족했던 시대의 비평과 추천이 넘쳐나는 시대의 비평이 같을 수 있는가, 같아야 하는가. 그가 든 사례는 셋이었다. 최근 새 시집 시리즈가 연달아 나오고 있다. 시집 뒤편에 관습처럼 붙던 평론가의 해설 자리에는 시인의 산문이 들어가거나 같은 시리즈의 다른 시인이 저자를 인터뷰한 대화가 실린다. 올해 1월 알라딘이 발표한 ‘내일의 젊은 시인’은 현업 시인 여든 명과 시 편집자 열네 명의 추천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아흔네 명 안에 평론가의 자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관여하는 문예지는 지난해 시집 리뷰 지면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 회의에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고 한다. 평론가가 문예지에 쓰는 리뷰와 다른 채널의 리뷰는 무엇이 다른가. 나는 그 차이를 실제로 만들어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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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와 어문계를 오가며 공부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15년 차 엔지니어이자, 소설을 쓰는 에세이스트입니다. 읽기와 쓰기, 기술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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