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독서모임 후기

여섯 걸음 앞으로, 여섯 걸음 뒤로

by부소유

늦여름 독서모임 바카라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였다. 1985년에 나온 헝가리 소설이고, 벨라 타르 감독이 일곱 시간짜리 영화로 옮긴 그 작품이다. 네 사람이 모여 한 시간 반을 이야기했는데, 바카라 한 권을 두고 이렇게 오래 붙들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날이 있다. 이번이 그랬다.


먼저 민준 님이 줄거리를 꼼꼼하게 풀어주었다. 망해버린 집단 농장, 떠나지도 못하고 남은 사람들, 죽었다던 이리미아시의 귀환. 그는 사람들을 모아 연설하고 돈을 걷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결국 마을 사람들을 여기저기 흩뿌려 놓는다. 흥미로웠던 건 민준 님의 시선이었다. 분명 착취하는 인물인데,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잠자리를 붙여준 셈 아니냐고 했다. 나쁜 사람인 줄 알면서도 단칼에 미워하기 어려운 인물, 그 양가감정을 붙잡은 대목이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헝가리는 대부분이 평지라 농사짓기 좋은 땅인데 그 좋은 땅에서 말아먹은 사람들이라는 지적에서는 다들 웃었다.


상징을 읽어내는 재미도 컸다. 민준 님은 술집 장면에서 말파리가 팔(8) 자를 그리며 도는 대목을 짚었다. 그게 팔자인지, 옆으로 눕힌 무한 기호인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나지 않는 순환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 했다. 아무도 실물을 본 적 없는 술집의 거미줄은 보이지 않는 불안이 형태를 얻은 것 아니겠냐는 해석도 나왔다. 하은 님은 내내 그치지 않는 비를 두고, 사람들을 농장 밖으로 못 나가게 붙잡아두고 나약하게 만드는 장치 같다고 했다. 나는 종소리에 마음이 갔다. 무너져 없어진 종인데 의사만 자꾸 듣는다. 열두 장 가운데 여섯 장은 앞으로, 여섯 장은 뒤로 가고 마지막 문장이 첫 문장과 맞물리는 구조까지 보고 나니, 작가가 처음부터 설계도를 그려놓고 썼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400페이지를 그렇게 밀고 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말도 했다. 나는 절반이면 충분했겠다 싶었는데, 하은 님 생각은 달랐다. 짧은 것에만 익숙해진 우리 쪽 문제일 수도 있고, 제목과 전개의 완성도를 보면 길게 쓴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서연 님은 같은 주제라도 이야기가 늘어지며 확장되는 맛이 장편에만 있다고 거들었다. 반론이 오가는 자리가 늘 제일 좋다.


발제는 자연스럽게 우리 이야기로 넘어왔다. 희망했다 실망했다 오간 경험을 하나씩 꺼내보자고 했더니 서연 님이 결혼 생활을 꼽았다. 신혼의 좋은 시절, 아이 낳고 지친 암흑기, 아이들이 크면서 다시 숨통이 트인 지금. 소설의 리듬이 그대로 있었다. 민준 님은 몇 해째 기다린 제도가 딱 자기 다음 기수부터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주식 이야기를 했다. 짧게 재미를 보고 스스로 선수인 줄 알았다가 고점에 물려 3주째 로그인을 안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을 흉볼 처지가 아니었다. 하은 님의 구분이 특히 오래 남았다. 이루어질 법한 것에 거는 게 기대라면, 희망은 확률이 희박한 쪽에 거는 마음이라고 했다.


서연 님은 지금 내 자리가 우물 안인지 밖인지 물었다. 회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새벽 출근하는 날에는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 아침을 챙기고 머리를 말려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물의 크기를 조금씩 넓히는 방법이 그런 것이겠다 싶었다. 하은 님은 근무를 하며 퇴화하는 느낌이 들었을 때 취미와 자기 계발 시간을 만들었고, 은퇴 생각은 아예 없다고 했다. 민준 님은 정년까지 다니되 그 안에서 다음 수익 구조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몇 년째 이어온 글쓰기를 이야기했다. 회사는 정년이 있지만 쓰는 일은 건강만 하면 일흔에도 여든에도 할 수 있으니, 나에게는 그쪽이 우물 밖이다.


마지막 발제는 하은 님이 냈다. 이 소설의 밑바닥에 깔린 감정이 결국 불안이라면, 우리는 그 불안을 어떻게 넘기느냐는 물음이었다. 하은 님은 지금 느끼는 감정의 이름을 알기 위해 관련된 바카라을 찾아 읽는다고 했고, 서연 님은 왜 불안한지 객관화한 다음 좋은 쪽으로 생각을 돌리고 그래도 안 되면 나가서 걷는다고 했다. 민준 님은 시간으로 희석시키거나 시선을 다른 데로 옮긴다고 했다. 나는 쓴다. 아팠던 기억을 에세이로 한 번 꺼내고, 그것을 다시 소설로 형상화한다. 이건 나중에 소재로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안이 재료로 바뀐다.


메시아를 기다리다 속고 또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여러 번 웃었지만, 웃을 때마다 조금씩 찔렸다. 그래도 우리는 여섯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바카라을 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뒤로 갔다 앞으로 오는 춤이라도, 함께 추면 제자리는 아닐 것이다. 다음 모임이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