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주간 ‘곁눈질’ - 초연결 시대의 문학 비평 2부

물탱크를 두드리는 소리

by부소유

십오 분 휴식은 짧았다. 뒤쪽에 마련된 다과를 사람들이 들고 돌아오는 사이 두 번째 세션이 시작됐다. 두 번째 주제는 AI 시대에 읽고 쓰는 몸이었고 앞에는 전기화, 김보경, 오은교 세 평론가가 앉았다. 앞 세션과 달리 이번에는 순서대로 발표한 뒤, 앞사람의 이야기에 짧게 코멘트를 붙이고 마지막에 서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나는 인공지능 업계에서 가속을 만드는 일을 한다. 읽고 쓰는 몸이라는 제목 아래 앉아 있기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직업일 것이다.


전기화 평론가는 자기 취미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바카라을 읽고 나면 그 바카라에 대한 독자 리뷰를 찾아 읽고 재미있으면 쓴 사람의 계정까지 들어가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AI가 일반화된 뒤로 그 취미가 예전 같지 않아졌다고 했다. 자기 생각을 쓴 글이 줄고 상당 부분이 대체되다 보니 읽는 재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동료 독자의 얼굴을 보려고 들어간 자리에서 기계의 문장을 보게 되는 경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증상이다. 읽기와 쓰기라는 우리의 행위에 AI라는 행위자가 이미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진단이 거기서 나왔다.


그가 올 상반기 소설들을 살피며 특이하게 느낀 지점은, 몸을 다루는 소설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었다. 문학은 언제나 몸을 다뤄왔고 돌봄, 장애, 퀴어 담론이 흐를 때마다 몸은 주제로 올라왔지만 지금 국면은 좀 다르다고 했다. AI에 대한 불안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굴러가는 산업 한복판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문학은 느리게 가라고 요청하는 쪽에 가깝다고 그는 말했다. 인간의 몸은 그렇게 효율적일 수 없다. 일정 시간 자야 하고 일정량 먹어야 하고 애써 돌봐야 겨우 굴러가는 유기체라는 것이 인간의 근본 조건이다.


그가 가져온 작품은 김기태의 소설 두 편이었다. 하나는 문화일보 연재 기획 ‘소설, 한국을 말하다’에 실린 <진취적 시민을 위한 15분 읽기>로, 작가에게 주어진 키워드는 효율이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작가다. 효율의 시대에 수백 장짜리 소설을 다 읽을 필요는 없으니, 내가 줄거리를 요약해주겠다고 하고 평론가가 굳이 있어야 하느냐며 주제 해설까지 직접 해준다. 그러고 나면, 작가는 회의에 빠진다. 내가 이걸 굳이 썼어야 했나, 처음부터 AI가 쓰면 되지 않았나. 후회를 나열하는 것조차 비효율이니 여기서 멈추겠다며, AI가 써준 서평을 참고해 리뷰에 쓰라는 말로 소설이 끝난다. 읽고 나면 한 대 맞은 기분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이 소설이 하는 일은 압축이라고 그는 정리했다. 작가가 문장 하나하나에 기울인 공력, 독자가 음미하고 해석하려 애쓰는 시간, 평론가가 설 자리까지 전부 눌러 담아 없애버린다. 극강의 효율을 구현한 결과물을 막상 읽고 나면, 독자는 내가 이걸 경험하려고 이 소설을 읽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쪽 언어로 옮기면 손실 압축이다. 우리는 데이터를 줄일 때, 버려도 되는 성분을 먼저 버린다. 문제는 무엇이 버려도 되는 성분인지 정하는 기준이 압축하는 쪽에 있다는 점이다. 줄거리만 남기는 압축에서 버려지는 것은 잡음이 아니라 신호였다.


다른 한 편은 <창작과비평> 여름호 중편 특집에 실린 <퇴행>이었다. 앞의 실험적인 초단편과 대조적으로 아주 전통적인 소설이고 아픈 몸을 가진 두 사람의 이야기다. 사십 대에 들어서면,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고 그 몸의 문제가 관계에 계속 침투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아픈 몸 덕분에 시작되고 깊어진 관계이기도 하다. 그가 꼽은 장면은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한 두 사람이 서로의 발톱을 깎아주는 대목이었다. 몸을 굽힐 수 없으니, 무릎 위에 상대의 발을 올려놓고 서툴러서 아야 소리를 내가며 깎는다. 성인이 된 뒤에 누군가의 발톱을 깎는 일은 드물다. 이 로맨스에는 피부가 있고 털이 있고 구멍이 있어 땀도 나고 냄새도 난다고 그는 표현했다. 누군가에게는 비루해 보일 수 있지만 자기 눈에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읽혔다고 했다.


그가 더 중요하게 말한 것은 이 소설을 읽은 체험 쪽이었다. 분량이 길어서 문장 하나하나를 통과해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 통과가 느리고 비효율적인 행위로 느껴진다. 그렇게 느리게 도달한 곳에, 두 사람에 대한 연결감이 있었다. 그 감각은 AI가 요약해준 문장으로는 도달하기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밑줄을 긋고 어떤 장면에서 눈물이 비치는 신체 반응까지 포함해 소설의 느린 리듬에 올라타는 일,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문학적인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경험이라고 했다.


나는 회의실에서 지난 분기 대비 얼마나 많은 양을 더 계측 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가속은 내 일이고 내 성과지표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퇴근길에 소설을 펼쳐 느림에 올라탄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짓처럼 보이지만, 앞뒤가 맞지 않아서 겨우 견디는 것일 수도 있다. 문학이 요구하는 속도에 기꺼이 탑승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만드는 속도와 내가 찾아다니는 속도가 같은 사람 안에서 매일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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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와 어문계를 오가며 공부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15년 차 엔지니어이자, 소설을 쓰는 에세이스트입니다. 읽기와 쓰기, 기술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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