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
여름 밤에 지역 도서관 주관으로 진행된 변호사의 북토크. 기다렸던 건 사실 법 이야기가 아니었다. 변호사 명함 뒤에 소설가라는 이름을 겹쳐 놓은 사람이 어떤 얼굴로 말하는지 보고 싶었다. 서류와 조서만 만지던 손이 어떻게 문장을 만드는지, 그 이중생활의 접합부에 뭐가 있는지가 궁금했다.
정재민 변호사는 무대에 올라 자기 이력을 짧게 훑었다. 23년 공무원, 절반은 판사, 나머지는 방위사업청과 법무부. 군함을 만들고 법을 썼다고 했다. 만 나이 통일법도, 구하라법도 자기 손으로 썼다고. 그런데 그가 정작 오래 붙들고 이야기한 건 매주 토요일이었다. 15년, 20년쯤 혼자 읽거나 쓰면서 보낸 토요일. 골프를 안 치는 이유를 설명하다가 슬쩍 흘린 말이었는데, 나는 거기가 두 직업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은 남는 시간에 쓰이는 게 아니라 지켜낸 시간에 쓰인다.
강연 제목은 믿음이었다. 나는 그 단어에 걸려서 이 자리에 왔다. 최근에 사람에게 크게 데인 뒤로, 믿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든다. 잘 아는 사람에게 아주 익숙한 방식으로 뒤통수를 맞으면, 배신 자체보다 그때까지의 나의 판단 전부가 우스워지는 게 더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 강연에 답을 얻으러 온 게 아니라 반증을 얻으러 왔다. 저 사람도 못 믿는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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