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심비우스와 공존
어느 초여름 저녁, 나는 도서관 강연장 뒷줄에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환경이라는 주제로 두시간 남짓 되는 시간을 앉아 있을 자신이 없었다. 분리수거는 하지만 그건 관리사무소가 요일을 정해주기 때문이고, 텀블러는 몇 번 쓰다가 싱크대 구석에 세워둔 지 오래다. 기후 위기라는 말은 뉴스에서 자막으로 지나갈 때 잠깐 눈에 들어왔다가 다음 꼭지로 넘어가면 함께 사라졌다. 내게 환경은 늘 남의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쁜 일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 그러니까 어디선가 산불이 났다더라, 어느 나라가 물에 잠겼다더라, 하는 식으로 접수되는 소식이었다. 최재천 교수는 강연 초반에 바로 그 지점을 짚었다. 환경 문제는 언제나 국지적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남의 일이었다고. 나는 그 문장에서 잠깐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 게으름의 알리바이를 강연자가 먼저 말해버린 셈이었다.
그가 박쥐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강연장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열대에만 살던 박쥐가 여권도 없이 국경 개념도 모른 채 여기도 살 만하네, 여기도 살 만하네 하면서 슬금슬금 온대로 올라오고 있다는 대목이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조금씩 오르니 박쥐의 지도가 조금씩 넓어진다. 중국 남부 지역으로 지난 백 년 동안 열대 박쥐 마흔 종가량이 건너와 정착했고, 한 종이 평균 두세 종의 코로나바이러스를 지니고 있으니 단순한 곱셈만으로도 백 종이 넘는 바이러스가 그 지역에 새로 들어왔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백 종 가운데 하필 한 놈이 우리와 궁합이 너무 잘 맞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스크를 쓰고 살던 몇 해가 통째로 다시 떠올랐다. 나에게 코로나는 재수 없는 사고였다.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 같은 것. 그런데 강연자는 그것이 벼락이 아니라 우리가 여러 해에 걸쳐 쌓아 올린 계산서의 첫 장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벼락은 피할 수 없지만 계산서는 반드시 다시 온다. 그 차이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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