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위의 존재
도서전 한복판. 사방으로 소리가 새어나가는 열린 공간이었다.
나는 인공지능 세미나에 지쳤다. 지겨움의 정체는 이렇다. 어떤 강연을 가도 결론이 같다. AI는 놀랍고, 인간은 그래도 특별하며, 그러니 우리는 질문하는 인간이 되자.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사례만 갈아끼운다. 이번에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슬롯자는 발표 사이사이 체화된 인지, 확장된 마음, 행동주의 같은 용어를 정확히 배치했는데, 그 정확함이 오히려 미리 열어둔 서랍처럼 보였다.
그런데 서랍 하나가 열리지 않았다.
진화생물학자는 신경세포 300개짜리 예쁜꼬마선충 이야기를 했다. 시드니 브레너가 1960년대부터 20년에 걸쳐 벌레를 딱딱한 블록에 넣고 살라미처럼 얇게 썰어 단면마다 전자현미경으로 찍고, 색칠해가며 신경세포를 이어붙여 만든 지도. 논문 제목은 <The Mind of a Worm>이고 분량은 300페이지였다. 벌레 한 마리의 마음을 그리는 데 300페이지가 들었다. 발표자는 그 지도와 인공신경망 도식을 나란히 놓았다. 닮았다. 당연하다. 후자는 전자를 보고 만들었으니까. 여기서 나는 하품을 참았다. AI가 뇌를 닮았다는 말은 이제 관광버스 안내방송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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