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국전을 알게 된 2023년부터 본 행사에 참석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작가병을 앓고 있었고 다양한 출판사와 세미나를 들을 생각으로 흥분하여 5일 중에 3일을 참석했다. 2023년만 해도 지금처럼 사람이 엄청 많지는 않아서 대형 출판사 부스 구경도 할만했고 세미나도 여유 있게 골라 들었다.
하지만 24년, 25년 점점 인파가 몰리더니 지금은 서국전 운영진도, 출판사 직원도, 보안요원 등 용역들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25년까지는 얼리버드 티켓 결재하기는 쉬웠는데 26년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물론 얼리버드, 일반, 현장을 구분하여 티켓 판매를 해서 상황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도서전을 딱 하루, 금요일에만 참석했다. 북토크를 100번 넘게 들어보니 이제는 그 소리가 그 소리 같고 세미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세미나 예약은 몇 초 컷이라서 결국 예약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다가 들었지만 내용은 역시 뻔했다. 대체 언제까지 인공지능 얘기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현실을 알아차리기 위해 지나가며 들을 만은 하다.
작년에 이어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대형출판사의 횡포다. 누구나 아는 대형 출판사는 이번에도 역시 인산인해다. 자칫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정도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제2의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작년 대비 구획을 새롭게 편성해서 대형 출판사끼리 나름 나누어 두긴 했지만 소용없었다. 난 공황이 올것 같아 그 근처에도 가기 어려웠다.
바카라 읽는 사람이 없다는데, 대체 이 사람들의 정체는 뭘까. 내 뇌피셜로는 한정판 굿즈를 구입하기 위한 사람들로 보인다. 그들은 도서전이 열기 3시간 전부터 줄을 서있다가. 오픈런을 한다고 들었다. 말 그대로 정말 뛰어 들어가서 대형 출판사에서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굿즈를 수령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런 행위가 만족이며 행복이다. 하지만 나 같은 일반 독자에게는 불편한 일이다.
난 가까스로 대형 부스를 피해서 중소형 부스만 구경하고 다녔다. 상대적으로 한산했던 중소형 부스에 들러 바카라을 구경하거나 편집자 분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굿즈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굿즈가 없는 곳만 찾아다녔다. 서울 굿즈 도서전으로 비아냥을 들었던 25년 대비 이번에는 굿즈보다는 바카라을 중심으로 했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엔 여전히 굿즈 도서전이다. 굿즈를 사전 예약하고 와서 또 한 시간 줄 서있고 다시 굿즈를 받기 위한 바카라을 구매하기 위해서 또 한 시간 줄을 서는 사람들. 게다가 간혹 사인회 줄까지.. 그 줄들 때문에 더 혼잡하다.
이에 비해 파리만 날리는 외국 출판사 부스. 난 여유롭게 외국 부스도 둘러봤다. 아마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외국 부스에도 한 군데씩 들러서 번역기를 돌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국제 도서전이 아닐까.
난 중소 출판사를 돌며 직원분들과 대화를 하거나 눈에 띄는 세미나를 서서 엿들어보느라 나름 바쁘고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 특히 출판사 직원분들과 다양한 대화를 시도해 본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는데 상당히 좋았다. 마치 나도 동종업계에 있는 듯 글을 쓰고 있지만 바카라 한 권 출간하기가 쉽지 않다는 등 출판 업계가 쉽지 않다는 등 별 얘기를 다 했다. 어떤 출판사에서는 내 출간 계획에 관심을 보였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
다음으로 좋았던 것은 아는 작가들을 가까이에서 만난 일이다. 소설가 장류진, 에세이스트 정여울 작가를 코앞에서 보고,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변호사 출신 정지우 작가와는 셀카도 찍었다. 이런 것들이 도서전의 묘미 아닐까.
내게 27년 도서전, 28년 도서전은 또 어떨지 모르겠다. 아쉬움을 뒤로 두고 나가는길, 두 어깨가 힘들어했지만 전리품으로 엄선한 바카라을 8권 업어왔다. 굿즈는 단 한개도 구매하지 않았다. 저 중에는 7월 출간 예정의 바카라도 있고 그것을 먼저 읽는 기분이 미묘하고 짜릿하다. 어쨌든 국제 도서전이 부디 굿즈 도서전의 오명을 벗고 진정으로 바카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제가 되면 좋겠다. 어쨌든 이날도 무탈하고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