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에서 내려서 지하철역으로 가기 전에 흙길이 있다.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조금 경사진 흙길이다.
조금이라도 흙길을 밟으려고 그 길로 올라간다.
그 길에는 항상 비둘기가 모이를 쪼고 있다.
많을 때는 12마리, 적을 때는 8마리 정도가 있다.
매일 세는 게 습관이 되었다.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을 때가 많고 몇 마리 푸드덕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날아온다.
오늘 아침에는 비둘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걷다가도 새들을 보면 사진을 찍는다.
백로, 왜가리, 오리, 원앙이, 해오라기, 거위, 멧비둘기, 박새, 참새, 직박구리, 곤줄박이, 물까치, 까치, 까마귀, 초상권 있는 앵무새 등......
움직이는 것들을 보면 그냥 갈 수가 없다.
저 새들은 찍으라고 가만히 기다려 주지 않지만 비둘기는 마냥 기다려준다.
통통한 것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무언가를 쪼고 있으면 귀엽기는 하지만 너무 흔한 비둘기라 지나칠 때가 많다.
귀엽다고 하는 순간 큰딸이 미간을 찌푸리며 항의하는 소리가 들린다.
큰딸은 비둘기를 무서워한다. 비둘기뿐 아니라 깃털 달린 날짐승을 다 무서워한다.
처음에는 비둘기만 무서워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새도 닭도 무서워한다.
내가 새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면 몸서리를 칠 것이다.
이른바 조류공포증이다.
2, 30대 젊은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숲을 걷다가 깃털이 예쁜 곤줄박이를 겨우 찍어서 보여줬더니 소리를 지르며 치우라고 했다.
특히 비둘기와 닭을 무서워한다.
길을 가다가 비둘기라도 보면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난다.
같이 가던 사람이 혼비백산하고, 뭐 이런 병이 다 있나 하고 의심을 하게 만든다.
큰딸 말로는 언젠가 교통사고를 당한 비둘기를 목격한 이후로 공포증이 생겼다고 한다.
돌팔이 내 의견은 공포의 대상에 직면해야 해소된다고 하는데 도대체 말을 듣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
강아지 산바카라을 시킬 때는 비둘기 없는 장소를 택하거나 비둘기가 다리 밑에서 쉬는 저녁 무렵에 나간다.
강아지를 앞세워서 쫒으며 다니라고 하는데 닐아가는 모습도 일단 봐야 하니까 소용이 없다.
온라인카지노 작가 설애님이 소개한 바 있는,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비둘기’라는 소설을 읽었다.
한 남자가 비둘기 때문에 공포를 느끼고 삶이 불행해지는 내용이다.
딸은 그 정도로 삶이 피폐하지는 않지만 늘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생활에 불편함을 느낀다.
연말마다 어쩔수 없이 보는 영화 ‘나 홀로 집에’를 보고 있었다.
비둘기 아줌마는 ‘남을 위해 무슨 중요한 일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렴. 그리고 그걸 실천하면 돼. 네 마음의 별을 따라가면 된단다.’고 비둘기를 어깨에 앉히고 가슴 따뜻한 말을 케빈에게 건넸지만 큰딸은 어서 다른 채널로 돌리라고 성화다.
큰딸은 쌀이나 과자를 뿌리는 비둘기 아줌마, 아저씨라도 보이면 ‘왜 저래?’하고 눈을 흘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지 말라고 하지만 길거리에 쌀이나 잡곡이 뿌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에 먹을 것이 많은데도 마구 뿌려주니 통통하게 살이 쪄서 뒤뚱뒤뚱하고 다닌다.
한강변을 걸으면 비둘기 배설물과 날리는 깃털 때문에 코와 입을 막아야 한다.
막내는 치킨 양념반 프라이드반을 잘 시켜 먹는다.
한 달에 한 번만 먹는 게 어떠냐고 해도 한 달에 두어 번은 시켜 먹는다.
언니 있는 데서 먹지 말라고 했는데 어느 날 큰딸이 치킨 먹는 것을 봤다.
주섬주섬 치우고 있는데 큰딸이 다가오더니 닭다리를 집었다.
너 닭 무서워하잖아?
그건 살아있는 닭이고 이건 치킨이잖아.
먹어도 돼?
응, 치킨은 안 무서워.
살아있는 닭과 비둘기가 무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