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체 모른 체

byAnima

5월 1일 개장에 맞추어 서울숲에서 열리는 국제정원박람회장을 찾았다.

개장 첫날이라 후문으로 들어갈 때부터 인파가 많았다.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는 날에 관계없이 행선지를 서울숲으로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개장 첫날이다.

은행나무 숲에서는 포켓몬 30주년 행사가 열려서 입장하려는 줄이 어림잡아도 100m는 돼보였다.

서울숲 안쪽으로 더 들어가는데 수만 명의 인파가 너무 몰려서 행사를 중단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흙길에 먼지 일으키며 사람들이 몰려들어 혼란 중에 길벗들과 헤어질까 봐 각자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이런 북새통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났다.

바로 앞에서 오는 사람은 요즘은 잘 안 나오지만 초기에는 몇 번 나온 사람이다.

점점 다가와 코앞이라 눈이 마주치면 아는 체하려고 했더니 웬 남자와 같이 오면서 절대 내쪽에 눈길조차 주지 않아 나도 그냥 지나쳐버렸다.


조금 가다가 누가 아가씨, 아가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지만 나는 절대 아니라 지나치려는데 내 팔을 잡으며 또, 아가씨! 해서 돌아보니 내 길에 몇 번 나온 남자 길벗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봐야지 이름을 외우는데 이 사람은 잊을만하면 나오기에 기억하지 못한다.

‘자주 못 만나서 기억을 못 하는데 누구신지요?’ 하니 이름을 말해 준다.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지 친근감의 표현인지, 아가씨가 무어람......

다음 길에서 보자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걷다 보면 우리 걷기 카페에도 잘 나오지만 다른 카페 무리에 섞여 있는 길벗들을 만나게 된다.

거의 눈앞에서 지나쳐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반갑게 인사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냥 가버리면 굳이 따라가서 아는 체 할 필요는 없다.

우리 카페만 다니란 법이 없는데 여러 카페에 다니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가는 것이 뭐 어떻다고 모른 체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코앞에서 손을 흔들면서 이름을 불러야 그제야 당황한 듯 알아챈다.

몇 번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어, 아는 사람이다!’하고 혼잣말처럼 하고 지나간다.

오늘 옆을 스치면서도 모른 체하고 가는 길벗과 굳이 불러 세우는 길벗을 보니 옛일이 생각난다.

재직 중에 학생들 데리고 한미교류 행사에 참가했다가 한 미군 장교를 알게 되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회를 보고 근처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포도주 한 잔을 곁들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 젊은 종업원이 나를 유심히 보며 유난히 친절하게 대했다.

외국인과 같이 온 사람 처음 보나, ‘잘생긴 청년이 친절도 하구만’ 생각하고 있는데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 다가오더니 아는 체를 하는 것이다.


아니마 선생님이시죠?


네? 맞는데요......


저 ㅇㅇ고등학교 졸업생이에요.

선생님이 옆 반 담임선생님이셨고 저희 반 수업에도 들어오셨어요.

아, 그래요? 나는 몰라보겠네! 여기서 일해요?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먼저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이름도 모르는 청년이 먼저 아는 체하고 인사 하니 고맙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다.

한 번은 잠실 근처를 지나다가 누군가 불러서 뒤를 돌아보니 젊은이 두 명이다.

이 젊은이들은 나를 알아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불러서 인사를 했다.

역시 우리 반은 아니어서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이었지만 아는 체해주니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나는 못 알아봐도 이제는 다 큰 제자들이 어디선가 보고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조심스러워진다.

모른 체하고 아는 체하는 것이 나이의 영향인지 성향의 차이인지 모르겠다.

옛날 애인이라도 길에서 만나면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