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 단톡방은 대부분 저의 아침 인사로 시작합니다.
"굿모닝" 혹은 "좋은 아침이에요"
다음은 회사에 출근한 남편의 인사가 이어집니다. 제 휴대폰에 ‘나의 hero’라고 저장되어 있는 남편은 보통 핥거나 껴안는 것 같은 과한 애정 표현의 이모지로 아침 인사를 대신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전에 있는 아들이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햄스터 아라찌 이모지로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아들의 이름은 ‘나의 sunshine’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이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은 저희 식구만의 아침 루틴입니다. 보통은 평화롭게 서로 밤새 안녕을 주고받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가끔은 행방이 묘연한 아들을 찾느라 분주한 아침이 되기도 합니다. 단톡방의 ‘1’이 사라지지 않는 것 때문에 불안한 아침, 대부분은 ‘잠’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단톡방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저희가 아무리 길게 대화를 끌어내도 아들의 대답은 늘 ‘네, 넹, 넴, 넵’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관찰해 보니 평소에는 '넹'을 가장 많이 씁니다. 공적인 일에는 '넵', 귀찮을 때는 '네', 긴 대화가 이어지면 '넴'으로 마무리됩니다. 언뜻 다 비슷해 보여도, 이제 저희는 그 한 글자만으로도 아들의 상황과 기분을 척 보면 아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물론 아들도 나름 긴 문장을 단톡방에 올리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부탁해야 할 때 말입니다.
“아빠, 생수가 떨어졌어요.”
“아빠, 휴대폰이 고장 났어요.”
가끔은 개인톡이 오기도 합니다.
“엄마, 이 선크림 좋은 것 같죠?”
네, 맞습니다. 아빠 몰래 사줬으면 하는 아들의 꼼수인 거 저도 압니다. 하지만 '네, 넹, 넴, 넵'만 하던 아들에게서 이런 다정한 톡이 날아오면 저도 모르게 홀린 듯 지갑을 열게 됩니다. 그러면서 안부도 묻고, 일상을 알게 되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 단톡방에 새로운 이모지가 등장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일명 ‘GREAT’ 이모지.
해외 직구로 원서 교재를 사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미성년자라 아직까지 해외 결제 경험이 없다 보니 개인통관고유부호 발급부터 해외 결제까지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한 겁니다. 당황한 아들은 저희에게 SOS를 쳤고, 저희는 아들이 준 정보로 인터넷 검색을 하며 교수님께서 원한다는 교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남편이 찾아 무사히 결제를 완료했습니다.
그날 'GREAT!!' 이모지가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남편은 아들의 GREAT에 기분이 좋았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에 그렇게 목을 맬 줄은 몰랐습니다. 이후에도 아들로부터 다양한 요청이 들어왔고, 그걸 들어주었지만 GREAT 이모지는 더 이상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오늘 GREAT 나오겠지?”
내심 기대하던 남편은 매번 “감사합니다”라는 간단한 아들의 인사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때로는 “아들, 이번 거는 GREAT 줄 거야?”라며 대놓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아들은 GREAT 이모지 보내는 것에 인색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GREAT은 아들이 정말 고마울 때, 진짜 감동했을 때만 주는 이모지였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GREAT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GREAT 이모지의 희소성을 알게 된 남편은 급기야 셀프 GREAT 이모지를 만들었습니다. 집에 있는 아라찌 인형을 모델로 해서 만든 허접하기 짝이 없는 그 이미지를, 아들에게서 GREAT을 받고 싶을 때 스스로 투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면 단톡방이 아들의 “ㅋㅋㅋㅋ”로 도배되었습니다.
GREAT, 그게 뭐라고.
남편은 마치 아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압니다. 그 모습은 성인이 되어가는 아들과 친하게 지내보려는 남편의 노력이자, 아들을 어른처럼 대하려는 배려인 것을 말입니다.
이제 저희 가족 단톡방에는 예전과 다른 대화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구글이 요즘 떨어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논문 투고 전 마지막 검토 중입니다. 한번 봐주시겠어요?”
어느새 저희 가족 단톡방에는 ‘네, 넹, 넴, 넵’만 오가던 시간이 지나고, 연구와 주식 같은 세상 사는 이야기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금씩 어른들의 대화가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죠.
여전히 아들의 대답은 간결하지만, 그 짧은 답장 속에서 아들이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